이제 곧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다. 바쁜 일상에 쫓겨 한 자리에 모이지 못하던 가족·친지들이 함께 할 모처럼의 시간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에 화사한 덕담도 오간다.
그러기를 잠시, 곧 정적이 흐른다. 해야 할 이야기가 있지만 정작 꺼내기 어렵다. 무슨 이야기이기에 그리 어려울까. 점차 연로하고 쇠약해지는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다. 40대를 넘어서며 누구에게나 현실로 다가오는 문제다.
하지만 누군가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서로 눈 맞추기를 주저한다. 이야기가 시작되어도 흐지부지 결론 없이 마무리되는 경우도 많다.
가족 … 문화가 바뀌고 있다
자칫 감정 섞인 말이 오가기도 한다. 부모부양이나 재산문제로 부모와 자식 간 또는 형제들 간 싸움이 벌어지고 법정까지 가는 일도 허다하다. 이런 우려로 해야 할 이야기는 또 한 번 상 주변을 맴돌게 된다.
과거엔 부모를 외면하는 자식은 멍석말이를 당할 정도로 효에 대한 생각은 절대적이었다. 태어난 곳에서 큰 변화 없이, 가족이 다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한 때라 ‘부모를 모신다’기 보다 ‘함께 산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최근 핵가족이 되면서 부모 모시기에 대한 생각이 변했다. 직장이나 학업 등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는 ‘분가’가 늘고 있어 이후 부모가 고령이 될 때 부양에 대한 부분이 드러나는 것.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 것도 한 원인이다. 부모를 부양하며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여성, 하지만 여성의 사회활동으로 가정에서의 시간이 줄며 부모를 보살필 수 없는 가정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피할 수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우리네 사는 모습이다. 불편할 지라도 꼭 필요한 현실은 어디에든 있다. 어쩌면 함께 모여 대소사를 의논할 수 있어 이번 추석이 의미 있을 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형제와 친지들이 만나는 자리, 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더 가깝고 살가워지는 명절을 마련할 수 있다. 그래서 한가위 보름달은 유난히 밝다.
경제적인 이유도 큰 원인
많은 가정에서 부모 부양에 관한 부분이 이야기될 때 가장 큰 화제는 ‘경제적인 부분’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쇠약해지고 의료비 지출이 늘어난다는 이야기. 이에 대한 부담도 부모 부양에 선뜻 나설 수 없게 한다.
이와 함께 재산 상속에 관한 부분도 이유다. 부모에게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경우 그것이 누구에게 상속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이에 대해 속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지 못하며 오해가 쌓여 가족 간의 불화가 생기기도 한다.
권혁술 법무사는 “대부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상속에 관한 부분을 접하기 때문에 잘 모르는 상태에서 급하게 처리하게 된다”며 “상을 치르고 바로 현실적인 부분을 처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자식이 먼저 부모에게 상속에 관한 부분을 이야기하기보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노후와 함께 의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화목해지는 계기 될 수 있어야
모두가 즐거워야 할 명절, 좋은 자리에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꺼릴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가족 모두가 속 깊은 이야기를 하며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
이 모(50·서구 둔산동)씨는 2남 2녀의 차남이다. 이씨는 몇 년 전 명절에 형제들이 모여 홀로 계식 노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오랜 이야기를 통해 결정한 것은 자신은 어머니를 모실 테니 제사는 형이 지내도록 하자는 것. 그리고 나머지 형제들은 어머니의 용돈을 책임지기로 했다. 그날 이후 이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모두 배 아파 낳고 고생해 키운 자식인데 한 명에게만 부담을 지울 수 있나요. 이제는 자식들이 장성했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무엇보다 이를 계기로 형제 사이가 더 돈독해진 것이 가장 좋은 점이라고. 바쁘다는 이유로 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자세히 몰랐는데 그날을 계기로 서로의 사는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이씨는 쉽지 않은 일인데 말없이 따라준 아내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부모는 장남이 모셔야 한다는 법 있어?”
“부모는 장남이 모셔야 한다.”
이는 모든 장남의 굴레다. 대부분 이 말을 법에 조항이라도 있다는 듯 당연하다고 여긴다. 실제로 많은 가정에서 장남이 부모 부양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김 모(52)씨는 이에 대해 할 말이 있다. 김씨는 팔순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있다. 어머니는 기력이 약해졌을 뿐 특별한 질환은 없어 큰 어려움 없이 모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편한 마음은 아니다. 드러내 말하지는 못해도 늘 가슴이 답답하다.
더욱이 장남이라는 이유로 부모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맡기고 모르는 체 하는 동생들이 야속하다. “저라고 왜 어려운 게 없겠습니까. 사는 건 다들 비슷비슷한데 어머니 용돈마저도 모른 체 하는 동생들이 솔직히 섭섭합니다. 그런데 한 번씩 다녀가면 어머니의 하소연만 듣고 좋지 않은 표정으로 가네요. 자식이니 어머니를 모시는 건 당연하지만 장남만 자식은 아니잖아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이 모(43)씨는 맏며느리가 아니다. 얼마 전 어머님이 수술을 받으신 후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합가 이야기가 나왔다.
문제는 형님이 직장생활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 “부모님께서 나이 드시면 당연히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죠. 제가 모신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이씨는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장남만 부모를 모시느냐”며 “장남이 아니어도 상황에 따라 부모님을 모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부모님을 모신다면 부모님 재산은 저희가 받아야지요. 재산은 장남이 받고 모시는 것만 하라고 하면 그건 못해요.”
김 모(80)씨는 대전 근교의 시골집에서 혼자 산다. 김씨는 특별한 질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령이라 기력이 좋지 않다. 하지만 자식들의 서로 다른 주장 때문에 혼자 살기로 결정했다. “둘째가 집에 들어와 살겠다고 하는데 다른 애들이 반대하고 있어. 둘째가 함께 살면 논과 밭, 과수원, 시골집을 줄까 봐 그런 거지.” 김씨 역시 둘째와 함께 살고 싶지만 형제들 불화 때문에 포기했다. 김씨는 현재 하루 4시간씩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내가 왜 자식이랑 같이 살아!”
경제력을 갖춘 경우 굳이 자식과 함께 살지 않으려는 부모도 많다. 노 모(40)씨는 독자다. 부모부양에 대해 의논할 형제가 없다. 게다가 아직은 부모님께서 젊으셔서 부양은 아직 먼 이야기다. 부모님 역시 “너에게 기대지 않고 알아서 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연로하셔서 누군가 옆에 있는 것이 필요할 때는 함께 하는 것이 자식의 당연한 도리로 여긴다. “저야 혼자니까 약간 부담이지요. 하지만 형제가 있다면 큰 아들, 작은 아들, 딸 등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경제력이 있거나 형편이 좀 더 나은 자식이 모시고 사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자식들이 많으면 돌아가면서 모시는 방법 등도 있지 않을까요.”
박 모(72)씨는 “왜 자식과 함께 사느냐”고 반문한다. 오히려 따로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다. 박씨는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를 대신해 손자 2명을 키운다. 맞벌이를 해야 하니 아이를 돌봐 달라는 아들의 부탁을 끝내 뿌리치지 못해서였다.
남편은 시골에서 혼자 생활하고 박씨는 아들 집에서 산다. 은행에 근무하는 며느리를 대신해 살림까지 도맡아 한다. “예쁜 손자 놈 보는 재미도 좋지만 혼자 지내는 남편과 같이 있지 못하는 것도 걸리고 솔직히 이제는 아이들 돌보는 것도 힘에 부쳐요.”
“딸은 자식이 아니야?”
박 모(48)씨는 “부모부양에 관해 딸은 큰 소리를 낼 수 없어 속상하다”고 말했다. “요즘은 아들 딸 모두 소중하게 키우는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딸은 출가외인이라고 친정 일에는 신경을 못 쓰니 속상해요. 시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면 친정에는 그 반이라도 드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네요. 친정부모를 모시려고 생각해도 우선 시댁어른들 눈치부터 보게 되니까요.” 더욱이 박씨는 딸만 둘을 두고 있다. 앞으로 아이들에게 노후를 기댈 생각은 없지만 지금과 같은 문화가 계속 될까 봐 그것이 걱정이다.
장 모(57)씨는 얼마 전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서 노인성 질환에 걸려 계속 누군가 곁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장씨 부부는 맞벌이인 데다가 설령 같이 있는다 하더라도 별달리 해드릴 게 없다는 생각에 요양병원을 생각했다. “처음에는 부모님을 모른 척 하는 것 같아 고민이었는데 때마침 지난 설에 형제들이 모였을 때 의논을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알아보고 모셨어요. 의료진이 늘 보살피고 요양보호사가 잘 챙겨주니 집에 혼자 계실 때보다 더 좋아지신 것 같아요.”
요양병원,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장씨의 경우처럼 노인병원이나 요양원 등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2008년 장기요양보호법이 실시되면서 비용이 지원되는 것도 이용인구를 늘리는 데 한 몫 했다. 특히 친지들이 모이는 명절이 지나면 노인병원이나 시설에 문의전화가 급증한다.
이로 인해 최근 노인병원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전국 요양병원은 최근 10년(2000~2010년)간 19곳에서 867곳으로 4400%가 증가했다.
대전의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장기요양보호법이 실시된 이후 해마다 장기요양제도 만족도 조사를 하는데 인식도 달라지고 삶의 질 부분이 크게 개선되었다고 답한 의견이 많다”며 “전문인력이 어르신들에게 맞는 진료나 처방, 치료계획을 정확하게 세우고 적절한 물리치료나 재활서비스 등을 하기 때문에 집에 혼자 계실 때보다 더 나은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요양병원을 선택할 때는 반드시 직접 방문해서 서비스가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알아보아야 한다”며 “이때 어르신들 표정을 보면 분위기를 가장 빨리 알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요양시설의 경우 비용은 본인부담금과 비급여 포함 50만~60만원 정도다.
김나영 리포터
Tip.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은 뭐가 다를까? 요양병원은 노인성질환이나 만성질환, 수술 또는 상해 후 회복을 위해 요양이 필요한 환자에게 치료 중심의 의료를 실시하는 병원으로 건강보험에서 일부 치료비를 보조한다. 요양시설은 치매 또는 노인성질환 등의 사유로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게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지원을 목적으로 운영된다. 의료기관에 해당하지 않으며 환자의 상태에 따라 장기요양보험에서 일부 비용을 보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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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를 잠시, 곧 정적이 흐른다. 해야 할 이야기가 있지만 정작 꺼내기 어렵다. 무슨 이야기이기에 그리 어려울까. 점차 연로하고 쇠약해지는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다. 40대를 넘어서며 누구에게나 현실로 다가오는 문제다.
하지만 누군가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서로 눈 맞추기를 주저한다. 이야기가 시작되어도 흐지부지 결론 없이 마무리되는 경우도 많다.
가족 … 문화가 바뀌고 있다
자칫 감정 섞인 말이 오가기도 한다. 부모부양이나 재산문제로 부모와 자식 간 또는 형제들 간 싸움이 벌어지고 법정까지 가는 일도 허다하다. 이런 우려로 해야 할 이야기는 또 한 번 상 주변을 맴돌게 된다.
과거엔 부모를 외면하는 자식은 멍석말이를 당할 정도로 효에 대한 생각은 절대적이었다. 태어난 곳에서 큰 변화 없이, 가족이 다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한 때라 ‘부모를 모신다’기 보다 ‘함께 산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최근 핵가족이 되면서 부모 모시기에 대한 생각이 변했다. 직장이나 학업 등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는 ‘분가’가 늘고 있어 이후 부모가 고령이 될 때 부양에 대한 부분이 드러나는 것.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 것도 한 원인이다. 부모를 부양하며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여성, 하지만 여성의 사회활동으로 가정에서의 시간이 줄며 부모를 보살필 수 없는 가정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피할 수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우리네 사는 모습이다. 불편할 지라도 꼭 필요한 현실은 어디에든 있다. 어쩌면 함께 모여 대소사를 의논할 수 있어 이번 추석이 의미 있을 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형제와 친지들이 만나는 자리, 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더 가깝고 살가워지는 명절을 마련할 수 있다. 그래서 한가위 보름달은 유난히 밝다.
경제적인 이유도 큰 원인
많은 가정에서 부모 부양에 관한 부분이 이야기될 때 가장 큰 화제는 ‘경제적인 부분’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쇠약해지고 의료비 지출이 늘어난다는 이야기. 이에 대한 부담도 부모 부양에 선뜻 나설 수 없게 한다.
이와 함께 재산 상속에 관한 부분도 이유다. 부모에게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경우 그것이 누구에게 상속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이에 대해 속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지 못하며 오해가 쌓여 가족 간의 불화가 생기기도 한다.
권혁술 법무사는 “대부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상속에 관한 부분을 접하기 때문에 잘 모르는 상태에서 급하게 처리하게 된다”며 “상을 치르고 바로 현실적인 부분을 처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자식이 먼저 부모에게 상속에 관한 부분을 이야기하기보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노후와 함께 의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화목해지는 계기 될 수 있어야
모두가 즐거워야 할 명절, 좋은 자리에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꺼릴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가족 모두가 속 깊은 이야기를 하며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
이 모(50·서구 둔산동)씨는 2남 2녀의 차남이다. 이씨는 몇 년 전 명절에 형제들이 모여 홀로 계식 노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오랜 이야기를 통해 결정한 것은 자신은 어머니를 모실 테니 제사는 형이 지내도록 하자는 것. 그리고 나머지 형제들은 어머니의 용돈을 책임지기로 했다. 그날 이후 이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모두 배 아파 낳고 고생해 키운 자식인데 한 명에게만 부담을 지울 수 있나요. 이제는 자식들이 장성했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무엇보다 이를 계기로 형제 사이가 더 돈독해진 것이 가장 좋은 점이라고. 바쁘다는 이유로 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자세히 몰랐는데 그날을 계기로 서로의 사는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이씨는 쉽지 않은 일인데 말없이 따라준 아내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부모는 장남이 모셔야 한다는 법 있어?”
“부모는 장남이 모셔야 한다.”
이는 모든 장남의 굴레다. 대부분 이 말을 법에 조항이라도 있다는 듯 당연하다고 여긴다. 실제로 많은 가정에서 장남이 부모 부양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김 모(52)씨는 이에 대해 할 말이 있다. 김씨는 팔순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있다. 어머니는 기력이 약해졌을 뿐 특별한 질환은 없어 큰 어려움 없이 모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편한 마음은 아니다. 드러내 말하지는 못해도 늘 가슴이 답답하다.
더욱이 장남이라는 이유로 부모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맡기고 모르는 체 하는 동생들이 야속하다. “저라고 왜 어려운 게 없겠습니까. 사는 건 다들 비슷비슷한데 어머니 용돈마저도 모른 체 하는 동생들이 솔직히 섭섭합니다. 그런데 한 번씩 다녀가면 어머니의 하소연만 듣고 좋지 않은 표정으로 가네요. 자식이니 어머니를 모시는 건 당연하지만 장남만 자식은 아니잖아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이 모(43)씨는 맏며느리가 아니다. 얼마 전 어머님이 수술을 받으신 후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합가 이야기가 나왔다.
문제는 형님이 직장생활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 “부모님께서 나이 드시면 당연히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죠. 제가 모신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이씨는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장남만 부모를 모시느냐”며 “장남이 아니어도 상황에 따라 부모님을 모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부모님을 모신다면 부모님 재산은 저희가 받아야지요. 재산은 장남이 받고 모시는 것만 하라고 하면 그건 못해요.”
김 모(80)씨는 대전 근교의 시골집에서 혼자 산다. 김씨는 특별한 질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령이라 기력이 좋지 않다. 하지만 자식들의 서로 다른 주장 때문에 혼자 살기로 결정했다. “둘째가 집에 들어와 살겠다고 하는데 다른 애들이 반대하고 있어. 둘째가 함께 살면 논과 밭, 과수원, 시골집을 줄까 봐 그런 거지.” 김씨 역시 둘째와 함께 살고 싶지만 형제들 불화 때문에 포기했다. 김씨는 현재 하루 4시간씩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내가 왜 자식이랑 같이 살아!”
경제력을 갖춘 경우 굳이 자식과 함께 살지 않으려는 부모도 많다. 노 모(40)씨는 독자다. 부모부양에 대해 의논할 형제가 없다. 게다가 아직은 부모님께서 젊으셔서 부양은 아직 먼 이야기다. 부모님 역시 “너에게 기대지 않고 알아서 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연로하셔서 누군가 옆에 있는 것이 필요할 때는 함께 하는 것이 자식의 당연한 도리로 여긴다. “저야 혼자니까 약간 부담이지요. 하지만 형제가 있다면 큰 아들, 작은 아들, 딸 등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경제력이 있거나 형편이 좀 더 나은 자식이 모시고 사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자식들이 많으면 돌아가면서 모시는 방법 등도 있지 않을까요.”
박 모(72)씨는 “왜 자식과 함께 사느냐”고 반문한다. 오히려 따로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다. 박씨는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를 대신해 손자 2명을 키운다. 맞벌이를 해야 하니 아이를 돌봐 달라는 아들의 부탁을 끝내 뿌리치지 못해서였다.
남편은 시골에서 혼자 생활하고 박씨는 아들 집에서 산다. 은행에 근무하는 며느리를 대신해 살림까지 도맡아 한다. “예쁜 손자 놈 보는 재미도 좋지만 혼자 지내는 남편과 같이 있지 못하는 것도 걸리고 솔직히 이제는 아이들 돌보는 것도 힘에 부쳐요.”
“딸은 자식이 아니야?”
박 모(48)씨는 “부모부양에 관해 딸은 큰 소리를 낼 수 없어 속상하다”고 말했다. “요즘은 아들 딸 모두 소중하게 키우는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딸은 출가외인이라고 친정 일에는 신경을 못 쓰니 속상해요. 시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면 친정에는 그 반이라도 드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네요. 친정부모를 모시려고 생각해도 우선 시댁어른들 눈치부터 보게 되니까요.” 더욱이 박씨는 딸만 둘을 두고 있다. 앞으로 아이들에게 노후를 기댈 생각은 없지만 지금과 같은 문화가 계속 될까 봐 그것이 걱정이다.
장 모(57)씨는 얼마 전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서 노인성 질환에 걸려 계속 누군가 곁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장씨 부부는 맞벌이인 데다가 설령 같이 있는다 하더라도 별달리 해드릴 게 없다는 생각에 요양병원을 생각했다. “처음에는 부모님을 모른 척 하는 것 같아 고민이었는데 때마침 지난 설에 형제들이 모였을 때 의논을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알아보고 모셨어요. 의료진이 늘 보살피고 요양보호사가 잘 챙겨주니 집에 혼자 계실 때보다 더 좋아지신 것 같아요.”
요양병원,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장씨의 경우처럼 노인병원이나 요양원 등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2008년 장기요양보호법이 실시되면서 비용이 지원되는 것도 이용인구를 늘리는 데 한 몫 했다. 특히 친지들이 모이는 명절이 지나면 노인병원이나 시설에 문의전화가 급증한다.
이로 인해 최근 노인병원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전국 요양병원은 최근 10년(2000~2010년)간 19곳에서 867곳으로 4400%가 증가했다.
대전의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장기요양보호법이 실시된 이후 해마다 장기요양제도 만족도 조사를 하는데 인식도 달라지고 삶의 질 부분이 크게 개선되었다고 답한 의견이 많다”며 “전문인력이 어르신들에게 맞는 진료나 처방, 치료계획을 정확하게 세우고 적절한 물리치료나 재활서비스 등을 하기 때문에 집에 혼자 계실 때보다 더 나은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요양병원을 선택할 때는 반드시 직접 방문해서 서비스가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알아보아야 한다”며 “이때 어르신들 표정을 보면 분위기를 가장 빨리 알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요양시설의 경우 비용은 본인부담금과 비급여 포함 50만~60만원 정도다.
김나영 리포터
Tip.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은 뭐가 다를까? 요양병원은 노인성질환이나 만성질환, 수술 또는 상해 후 회복을 위해 요양이 필요한 환자에게 치료 중심의 의료를 실시하는 병원으로 건강보험에서 일부 치료비를 보조한다. 요양시설은 치매 또는 노인성질환 등의 사유로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게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지원을 목적으로 운영된다. 의료기관에 해당하지 않으며 환자의 상태에 따라 장기요양보험에서 일부 비용을 보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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