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과 교사들의 전폭적 지지와 도움
지난 19일 오후 4시, 강동고등학교(교장 안미정) 6층 강당. 강당을 꽉 메운 학생들의 술렁임 사이로 무대 위 학생들이 뮤지컬 시작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발표를 앞두고 있는 영어 뮤지컬 동아리 ''브로드웨이(Broadway)'' 학생들이다. 오늘 이들이 무대에 올린 영어뮤지컬은 ‘Music is Medicine’. 뮤지컬의 기획자, 배우, 소품·의상·음향 등의 스텝까지 모두 동아리 회원들이다. 여기에 영어교사와 동아리 담당교사가 협력하여 40분 뮤지컬을 완성했다.
김대훈 교감은 “학생들 스스로가 주축이 되어 이뤄진 공연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며 “여기에 영어중점학교로서의 학교 지원이 더해져 인문계 고등학교로서는 드물게 영어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게 됐다”고 설명한다.
열정과 땀의 결정체, 40분의 감동
“다른 학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공연입니다. 재미와 감동을 함께 선사해 줄 강동고의 자랑, 영어뮤지컬을 시작하겠습니다.”
사회를 맡은 학생들의 안내와 함께 뮤지컬 막이 오른다. 병원 구급차 사이렌 소리로 정신병동의 모습이 그려진다. 3명의 환자가 오늘의 주인공. 바다에 빠져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하는 할머니, 팬들의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팝스타, 자신이 제조한 알약을 먹고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학생. 모두 학생들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주인공들이다.
영어로 대사를 주고받는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영어의 발음과 고저(Intonation)가 원어민과 흡사하다.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 또한 많이 어색하지 않다. 전문가만큼 세련되진 않지만 주어진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는 진지함은 전문가 못지않다.
40분 내내 학생들의 숨겨진 끼와 에너지가 그대로 발산된다. 뮤지컬을 지켜보는 학생들 또한 무대 위 학생들과 호흡을 같이 한다. 재즈가수가 노래 부르며 춤추는 장면이나 댄서들이 춤추는 장면, 또 간호사 역을 맡은 학생이 열정적으로 노래 부르는 장면에선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환호성도 터져 나왔다.
‘서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아픈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는 마지막 장면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 뒤에서 맡은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는 스텝 학생들의 헌신과 배려 또한 느낄 수 있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무대였다.
학생들, 자기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실행
영어동아리 ‘브로드웨이’가 탄생하게 된 것은 올해 초. 지난해 처음으로 영어뮤지컬을 선보인 권예진(2년)양과 곽재원(2년)군이 의기투합해 만든 동아리이다. 특별활동으로 진행한 지난해와 달리 본격적인 ‘동아리’활동을 통해 ‘제대로 된’ 영어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고 싶어서이다.
직접 주연배우로도 활약한 이들은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는 영어뮤지컬에 참여하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영어를 잘 하는 학생들이 주축이 되는 동아리가 아니라, 영어와 뮤지컬에 열정이 있는 학생들이 모여 뮤지컬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34명으로 구성된 이들 동아리 회원들은 지난 3월부터 뮤지컬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기획을 하고,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줄거리를 만들어 적합한 배역분담까지 모두 학생들 스스로 진행해나갔다. 방학동안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간 이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모여 각자 역할에 빠져들었다.
영어뮤지컬을 준비하며 영어실력도 부쩍 향상됐다. 동아리 회원 상당수의 학생이 영어 성적이 향상됐고, 영어말하기 부담도 많이 줄어들어 실생활에서 영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됐다.
‘팝스타’ 역을 맡은 이지원(2년)양은 뮤지컬을 준비하며 실제로 학교영어수업 B반에서 A반으로 오른 경우. 이양은 “영어를 그냥 읽는 게 아니라 감정을 실어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대사나 노래를 외우며 영어의 참맛을 알게 됐다”며 “영어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으로 영어를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뮤지컬 준비를 하며 학생들 모두가 얻은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자신감이다. ‘학생’ 역을 맡은 이대은(2년)군은 “뮤지컬을 하기 전에는 쑥스러움이 많아 자신 있게 의사전달을 잘 하지 못했는데, 뮤지컬을 하며 성격이 변할 정도로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고 했다.
교사들, 학생들의 열정을 읽다
학생들이 뮤지컬 전반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면, 교사들은 그들에게 성공적인 공연을 위한 탄탄한 실력을 제공했다. 가장 중요한 영어 대사와 노래는 원어민 강사와 3~4명의 영어교사가 담당했다. 영어중점학교의 목표에 맞는 ‘실용영어의 활성화’와 ‘학교 자원’을 최대로 활용한 것이다.
연기를 복수전공한 조나단(Jonathan Boehm) 영어강사와 뮤지컬 경험이 있는 송슬 영어교사는 준비 기간 내내 학생들에게 지도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조나단 강사는 학생 개개인의 대사를 빠짐없이 체크하고 발음교정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또 송슬 교사는 영어는 물론 연기와 무대 위에서의 동선체크 등 학생들의 경험이 전혀 없는 부분에 큰 도움을 줬다.
서주연 동아리 담당교사는 “영어중점학교인 우리학교만의 특징과 장점을 장 살린 공연이었다”며 “몇 달을 연습해 1회 공연으로 마치는 게 아쉬울 정도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많은 노력을 기울인 공연”이라고 전했다.
송슬 교사는 “스스로 자신의 일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자기주도학습이 뭔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울러 스스로 세운 목표를 최선을 다해 이루었을 때의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또 “공부에만 찌들려 웃음을 잃어버린 학생들에게 뮤지컬을 준비하는 동안이나마 웃음을 찾아줄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고 감회를 밝혔다.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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