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업·로컬푸드'' 4년만에 전국모델 만든 전북 완주군 임정엽 군수
"농촌 혁신? 겉만 보고 덤볐다간 농업귀족만 배불린다"
정부 농촌정책, 마을공동체 이해 없인 ''밑 빠진 독에 물붓기''
기업유치 목메지만 늙고 힘없는 고령농민은 여전히 소외
잘하는 것 찾아 일자리로 묶어 주는 것이 농촌복지정책
"농촌을 살려보겠다고 120조 원 이상의 재원을 투자했습니다. 그런데도 농촌은 붕괴직전이라고 합니다. 농촌에 대한 투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이 서슴없이 나옵니다. 머잖아 세계 46개국과 FTA가 체결될 전망인데 농촌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경쟁력 높여야 한다고 하는데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65세 넘은 노인이 청년회장 노릇을 해야 하는 현실에서 뭘 할 수 있을까요."
임정엽 군수는 역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광역지자체인 전북도는 물론이고 인근 충남도에서도 완주군의 농업·농촌정책을 벤치마킹 하고, 대통령 주재 고용정책회의 의제로 채택된 사례를 듣고 싶다''는 질문을 채 던지기도 전이다. 대뜸 "농촌공동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기존의 관행농 지원중심의 농업정책으로는 우리나라 1년 예산을 다 쏟아 부어도 실패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농''자를 달고 다니는 기득권층, 농업귀족 배만 불리고 만다"고 역설했다.
- 매년 천문학적인 돈이 농촌에 투입되는데 왜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정책이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연결되는지를 봐야 하는데 이걸 안한다. 정부 지원금이 어떻게 나가는지 자세히 봐라. 정부가 요구한 자료를 맞출 수 있는 농가는 한정돼 있다. 이른바 ''스펙''을 잘 갖춘 농가가 표준이 돼서 올라간다. 이들이 대부분이 받아간다. 지원대상이 되려면 3㏊ 이상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하는데 결국 기계 사주고 시설을 많이 지어줘야 한다는 소리 밖에 안된다. 농가 보조예산 70%가 10%의 유력가들에게 지원된다. 한 사람이 3~4번 중복해서 받아가는 일이 해마다 반복된다. 돈이 투입되지만 목소리 큰 대농한테만 돌아가고 노인들이 대부분인 90%의 소농은 소외된다. 수입개방에 대비한다면서 지원하는 정부 예산에서 농민 대다수가 소외되는데 농촌에 무슨 경쟁력이 있고 지속가능성이 있겠는가.
- 지자체가 자체 기준을 세워서 잘하면 되지 않느냐.
말처럼 쉽지가 않다. 선거직이 되다보니 표를 의식하게 된다. 지역을 무리 없이 관리하면 다음 선거에 유리하다는 인식도 팽배해 있다. 농산물 판매를 목적으로 열던 축제가 14년간 개최했는데 실제 판매액은 2000만원도 안됐다. 이런 축제를 왜 하나. 투우 한다고 몇몇 농가에 소를 사주고 훈련시설까지 보조해 준다. 화훼판매장 짓는다고 지원금 받아 건물 지어놓고 1년도 안돼 팔아버린다. 80% 보조로 구입해 준 콤바인이 포장지 하나 안 뜯고 창고에 보관돼 있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다시 팔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 이런 부조리를 먼저 없애야 했다. 2007년 군수에 취임해서 대농 중심으로 지원되던 농업보조금 비율을 70%에서 50%로 낮췄다. 중복 지원도 없앴다. 30억원 정도 예산이 절감돼 소외된 농가에 고루 배정했다. 축제를 없앴더니 그동안 예산을 지원 받았던 인사들이 행사장에서 소똥을 뿌리기도 했다.
- 농촌이 모두 이런 식이라면 희망이 없는 것 아니냐.
그래서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절대다수의 소규모 농가가 중심이 돼서 이들이 양심적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이 소비하고 도시에 판매하는 것. 이것이 마을단위 공동체 복원이고 이걸 모은 것이 로컬푸드사업이다. 행정이 왜 있겠나. 안 도와줘도 살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은 줄이고 혼자 서기 힘든 농가를 돕자는 것 아니냐. 그렇다고 대농처럼 일하라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예전에 잘 했던 일을, 그 분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비즈니스 방식을 도입해 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이다. 적은 소득이라도 꾸준히 지역에 떨어지면 농촌에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는 것이다. 농촌의 소농, 고령농을 복지의 대상이 아닌 생산의 주체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농촌에서 최고의 복지는 이들에게 적절한 역할과 일거리를 주는 것이다.
- 마을기업과 로컬푸드 사업이 전국 지자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마을 수준에 맞게 ''돈을 타 내기 위한 사업''이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마을''로 바꿔 가는데 주력했다. 제일 먼저 ''희망제작소''와 함께 완주군에 대한 지역자산 조사를 1년간 벌였다. 농산물, 풍습 등 수백 개를 발굴해서 사업을 할 수 있는 것 60개를 가려냈다. 이걸 책자로 묶어 공무원과 주민들이 나눠 공부했다. 처음엔 마을에 100만원을 지원해서 ''멋있는 마을'' 만들어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주민들이 함께 일해서 깨끗하고 멋있는 마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다. 그 다음엔 ''참 살기 좋은 마을''로 넘어가고, 음식을 만드는 ''맛있는 마을''로 확대했다. 많게는 1억 원까지 지원 받는 마을이 생겨났다. 로컬푸드사업은 얼굴 있는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전달체계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주민들이 중심이 된 마을기업에서 농산물을 생산해 이를 꾸러미에 담아 지역과 도시 소비자에게 배달하는 것이다. 현재 2500여명의 회원에게 배달하는데 2만 명으로 늘어나면 두부 하나만으로도 10개 이상의 마을회사 운영이 가능하다.
- 이런 사업들이 지역에 변화를 가져왔나.
처음에는 ''늙은 우리가 뭔 회사를 만드느냐''고 포기했던 마을 어르신들이 재미를 붙였다. 건강을 주제로 찜질방과 음식점 등을 운영하는 안덕마을 파워빌리지가 자극을 줬다. 마을결산을 통해 수익금을 배당하고 사업에 재투자를 한다. 채소 등을 생산하는 소양 인덕마을 두레농장 한 할머니는 300만 원 정도 배당을 받아서 손자한테 컴퓨터도 사주고 용돈도 줬다고 그렇게 좋아했다. 할아버지 몇 분은 팀을 짜서 사료 말고 쇠죽을 끓여 먹이는 ''화식우'' 사업을 해 보고 싶다고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시골노인들이 작은 일이지만 역할을 찾고 거기서 자긍심을 갖는다. 어떤 분들은 1주일에 서너 번 물리치료 받으러 다녔는데 지금은 일거리가 있으니 병원 갈 일도 없다고 말한다. 중앙정부의 특색사업에도 우리군의 사례가 모델이 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주민들은 간사나 총무, 회계 담당을 맡아서 주민들을 돕는다.
- 마을기업 등이 실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나. 그래도 기업유치가 핵심이라고 여기는 지자체가 많은데.
최근 한 방송사에서 마을기업 취재를 와서 ''그래도 기업유치가 지역경제 활성화의 첫 번째 방법 아니냐''고 묻더라. 틀린 말은 아니다. 인구 8만4000명인 완주군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2007년)은 3217만원으로 인구 64만 명인 전주시보다 3배나 높다. 기업도 적잖이 유치했다. 그런데 이런 일자리는 사실 젊고 일정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의 몫이다. 고령인 원주민들의 실질적 삶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70세 된 노인에게 R&D 시설이나 기계부품 공장은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통계에 의한 수치가 아니라 실제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이 ''살 맛 난다''며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더 급하다. 기업유치를 왜 하느냐. 궁극적으로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 아닌가. 기업을 유치하는 것만큼 사회적 약자들이 일을 찾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 행정조직에도 적잖은 변화와 있었을 텐데. 아무리 군수라지만 공무원들의 생각까지 좌우하기는 어렵잖은가.
서울 강남에 정미소를 지어서 완주군 쌀을 1주일에 1번씩 배달하는 계획을 세웠었는데 공무원들이 ''어렵다''면서 반대를 하더라. 결국 못했다. 마을기업, 로컬푸드 사업, 소농중심 농업정책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기존 정부에서 요구한 것만 한다면 똘똘한 직원 몇 명이서 자료만 잘 모아도 할 수 있다. 반면 새로 하려는 일은 한 번도 안 해본 일이니 어려워라 했다. 연찬은 기본이고 NGO에 능력 인정 받는 젊은 직원을 파견해 배우도록 했다. 해외출장 갈 때도 비서 대신 해당 실무자와 함께 가서 비행기에서부터 토론하고 매일 밤 평가회 가졌다. 읍·면 담당급(6급) 보직을 없애고 실무자로 일하도록 했다. 성과급도 나눠주기식에서 정확한 업무평가 기준으로 차등 뒀다. 무엇보다 마을 현장을 자주 찾도록 했다. 지금은 공모사업 따오는 ''귀신''들이 됐다. 중앙부처에 거리낌 없이 찾아간다. 민선 5기에만 공모사업과 신규사업으로 171개 사업 1997억 원을 확보했다.
- 지금이야 군수가 강력하게 지원하니까 이런 정책이 추진되지만 군수 바뀌면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겠나.
현재 완주군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4년 동안 실패한 것, 성공한 것 평가하면서 고쳐나가고 있다. 이제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는 단계이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을 막기 위해 제도화 하고 가능한 주민들 손에 넘기는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전국에서 처음 행정과 마을주민 사이 가교 역할을 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센터''를 열었다. 행정과 주민의 중간에 중간지원조직을 만들어서 일정부문 돌아갈 때까지 보살펴 주는 것이다. 우리 마을은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하면 함께 방향을 찾고, 문제점이 나타나면 해결방법을 찾아 도와주는 조직이다. 더 결정적인 것은 주민들이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라고 느끼고 참여하는 순간 그 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주민들이 먼저 안다.
완주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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