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 빠져 사는 행복한 우리집 이야기
황인옥 씨는 서양화를 그리는 화가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서예가, 어머니는 동양화가, 딸은 조각가, 거기에 남편은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가족 모두가 전통과 현대감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세게를 보여주는 양천구 토박이 화가 3대의 가족 이야기가 참 흥미롭다.
어머니는 언제나 나의 좋은 스승
오랜 세월 예술과 함께한 집안의 행복한 이야기가 작품에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이 집안의 유난한 미술사랑은 권오순(78세) 여사와 딸 황인옥 씨를 거쳐 손녀 진아 씨에게 이어져 왔는데, 황 씨가 기억하는 유년의 풍경에는 늘 그림이 있었다. 그녀에게 어머니는 좋은 스승이었다. 늘 붓을 손에서 놓지 않고 동양화를 그리던 어머니의 그림에 대한 애착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황인옥 씨의 어머니 권오순 여사는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문인화와 사군자를 즐겨 그린다. 일산에 거주하며 일산종합복지관의 서화전에 2회 출품한 권 여사는 지난 6월 78세에 딸과 손녀와 함께 작품 전시회를 가졌다. 동양화가인 권 여사는 평생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딸과 손녀에게 영향을 주어 딸은 서양화를 그리고 손녀 진아(27세)는 이화여대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손녀 진아가 기억 하는 할머니는 언제나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한번 붓을 드시면 끝을 봐야 잠자리에 드셨어요. 지금까지도 그림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셔서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많이 자극을 받아요. 할머니도 정말 열심히 그리고 또 그리시는데 제가 오히려 나태한 것 같거든요.”
11차례 국내 개인전을 비롯해 100여 회의 단체전에 참가한 중견 화가인 황인옥 씨와 수차례 전시회를 가져 온 권오순 여사는 수많은 전시회를 기획하고 개최하면서 그림 그리는 일 외의 다른 일엔 거의 관심을 두지 못했다. 권오순 여사는 한때 가족 모두가 그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으니 가족 중 손녀 진아는 음악가로 키우고 싶어 했다. 어려서부터 익혀온 피아노가 수준급인 진아 씨는 할머니의 바람대로 음대 진학을 꿈꾸었지만 그림에 끌리는 유전자가 있었는지 진명여고 재학 시절 갑자기 미술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리고 그 이후 할머니와 어머니의 든든한 후원을 받으며 조소를 전공했다.
20년 동안 강의를 해온 억척 아줌마
이제 50을 넘긴 황인옥 씨는 11번의 개인전 이력을 가진 중견화가지만 자신의 작품 활동은 이제부터가 진짜란다. 딸과 아들 모두 대학을 졸업했으니 어깨가 가벼워 마음 놓고 작품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인옥 씨는 20년 동안 각종 문화센터에서 미술 강의를 해온 억척 커리어 우먼이다. 먹고 살기 위해 강의를 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위해 필요한 물감을 사기 위해 강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녀가 다시 보이는 것은 나이보다 한참 어리게 보이는 그녀의 얼굴보다, 검은 원피스가 어울리는 세련된 그녀의 모습보다 친근함이 느껴져서다.
얼마 전 어머니와 딸과 함께 가족 전시회를 열었던 황인옥 씨가 보여주는 색은 보랏빛 무지개를 닮았다. 크림트의 생명의 나무를 닮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요즘 자신의 마음을 담아낸 ‘너 어디가니’ 시리즈는 이제부터 보여줄 그녀의 작품세계를 암시하는 연작들이다.
화가보다 엄마가 먼저였기 때문에 정말 어렵게 작가의 길을 고수 할 수 있었다는 그녀는 무엇보다 그녀를 이해해주고 인정해준 남편이 고맙고, 자신에게 항상 격려와 모범을 보여준 어머니가 존경스럽고,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고 잘 따라와 준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자신의 작업실을 가지게 된 것이 정말 무엇보다 행복하다는 그녀는 작업실에서 우아하게 와인 잔에 타먹는 아이스커피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 후 작업실 주변의 시장에서 부추 한단을 사들고 집으로 향할 땐 저녁 반찬을 걱정하는 아줌마로 돌아간다. 그녀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을 거라며 황인옥 씨는 우리 모녀 3대의 공통점은 억척스러울 정도로 미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림밖에 모르는 바보 3대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조소 공부를 하고 있는 진아 씨는 자신의 작품 활동에 큰 영향을 준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작품 ‘My mother’를 통해서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때 모델인 어머니는 작품의 컨셉과 디테일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작가의 길이 얼마나 힘든지 너무 잘 아는 황인옥 씨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딸의 멘토가 되어 화가의 삶을 살면서 느꼈던 많은 것을 조언해 준다.
서로 인정하고 힘을 주는 동지적 관계인 황인옥 씨 모녀 3대는 서로가 인정하는 바보들이다. 하나 같이 작품 활동에만 미쳐 사는 게 재미있어 서로가 바보라고 놀린다. 그리고 그 말이 싫지 않으니 정말 바보 같다고 웃는다. 그림이 있어 행복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인생이 정말 행복하다는 황인옥 씨가 만들어 내는 색을 보면 정말 그녀가 행복하다고 느껴진다. 그녀의 붓은 무지개 마술 봉 같다. 연두색도 보라색도 정말 환하게 캔버스에 담겨져 빛을 발한다.
어머니 권오순 여사와 딸 진아 그리고 황인옥, 온 가족이 하나의 관심사로 묶여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이 가족이 만들어내는 무지개처럼 밝고 아름다운 작품과 행복한 이야기들이 현대 미술사에 또 다른 색깔로 덧칠해져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유창림 리포터 yumus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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