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지에 그린 인생 - 작곡가 최종혁씨

지역내일 2011-08-20 (수정 2011-08-20 오후 8:54:09)

오선지에 그린 인생 - 작곡가 최종혁씨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저와 최백호에게 운명 같은 곡이죠


 


최종혁(65·광주시 초월읍)씨는 수많은 가요명곡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윤시내의 ‘열애’ ‘DJ에게’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유열의 ‘이별이래’ 김종찬의 ‘당신도 울고 있네요’ 등 제목만 들어도 감탄이 쏟아질 정도. 이선희와 정수라, 김추자와 정훈희까지 거쳐 간 가수 도 수십 명에 이른다.
동시에 그는 동요가이자 뮤지컬 작곡가다. ‘내 동생 곱슬머리’ 등 그가 만든 동요는 100곡이 넘고 뮤지컬과의 인연은 어느새 20년이 되었다. 삶의 화두가 온통 ‘음악’이었음에도 스스로 “‘창작의 고통’이란 표현이 사치스러운 ‘쟁이’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그. 한 차원 높은 경지가 느껴졌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원래 화가가 꿈이었다는 그는 교회에서 웅장한 성가를 접했던 그 순간이 ‘내안의 음악성이 태동했던 때’라고 회고한다. 그 시절에도 아버지는 집에 유성기를 들여 놓고 요한스트라우스와 왈츠에 대해 종종 얘기할 만큼 음악을 사랑했다. 어머니 역시 범부로 살았지만 문학적 소향이 풍부했던 분. 돌아보면 음악은 운명의 길이 아니었나 싶다.
“화성학과 음악통론을 보며 독학했어요. 어린 나이였는데도 어렵다는 생각이 안 들고 흥미로웠죠. 피아노 역시 어깨 너머로 익힌 게 전부예요.”
아무도 모르게 작곡했던 헌신성가가 교회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고교 졸업 무렵에 참가한 ‘가요콩쿠르’에서 기라성 같은 밴드 곡들을 제치고 입상하던 순간, 비로소 ‘나에게 음악적인 재능이 있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입대 전에 연습곡 몇 곡으로 디스크를 냈는데 군대 가니까 그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식판 닦으며 듣는데 기분이 아주 묘했죠. 그때는 잘난 척 해도 맞았을 때라 끝까지 아닌 척 쉬쉬했어요.(웃음)”
3년이란 세월은 재능 있던 젊은이가 잊히기에 충분했다. 요즘 연예인들도 제대 후 복귀가 만만치 않은데 오죽했을까. 꼬박 10년을 변방의 연주자로 연연했지만 창작 에너지는 더 할 나위 없이 충만하던 때였다.


“그 시절에 최백호를 만났어요. 첫 인상은 음…, 가수 아닌 것 같은 가수였달까.(웃음) 그렇지만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자신이 있었죠.” 술집에서 건네받은 노랫말을 호주머니에 휙 집어넣고는 며칠 뒤에 만나 노래로 불러줬다. 최백호씨는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어느 날인가 선생님께서 비에 쫄딱 젖은 채, 제가 일하던 업소로 찾아오셨어요. 피아노를 치면서 불러주는데 ‘아, 이 노래, 패티김 급이 아닌가’ ‘드디어 천재적인 음악가를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운명처럼 부르게 됐죠.”
그는 녹음실에서조차 가수의 노래에 관여하지 않는다. 곡 해석만 들려줄 뿐 간섭하지 말아야 생명력이 더 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 또 당시에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던 독백을 넣고 클래식 악기도 도입했다. 장대한 스타일의 그의 노래가 각종 국제 가요제에서 각광받은 건 당연지사. ‘가요가 클래식해졌다’ ‘품격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등 호평이 쏟아졌다. “난 원래 어린애처럼 철이 안 들고 웃긴 성격이에요. 지루한 것도 참 싫어하죠. 뭘 가미해서 성공 했다기보다 내 하고픈 대로 했던 게 장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작곡가가 왠지 품격 있을 거라고 생각들 하는데 제 입장에서 보면 좋은 오해를 받고 있는 셈이죠. 허허.”
“잘 나갈 때도 욕심 낼 줄 몰라 실속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10개가 있으면 5개만 내보이는 여유로움’ ‘즐기는 자는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다’는 철학적 신조. 그것이 작곡가 최종혁이 주는 음악적 힘이다.

넘치는 창작열, 발휘할 기회 좀 더 많았으면
허허벌판에 아파트만 덜렁하던 10년 전부터 광주는 그에게 참 좋은 곳이다. “네온 불빛 아래에서 평생을 살다보니 시골스러움이 좋았다”는 그는 인근의 도평초 아이들과 한글 동요를 만들며 어울린다. 훈민정음 창제 원리에 따라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인 두 개의 동요집이 이곳에서 그의 손길을 거쳤다. 가끔은 그가 쓴 곡이 리메이크 되는 뮤지컬 공연장으로 나들이도 간다. 최근의 뮤지컬 붐을 보면서, 척박했던 뮤지컬계에 일조했다는 뿌듯함에 대해 말하던 그의 말에 살포시 아쉬움이 베인다. “한국최초의 창작 뮤지컬 ‘동승동 연가’를 만든 게 93년도에요. 주변에서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게 안타깝다고 말하죠. 하지만 저는 제 인생에 대해 후회가 없어요. 다만 ‘내 삶이 이렇게 끝나는 가’에 대한 아쉬움은 있죠. 아직도 습관처럼 매일 1곡을 써야 일과가 끝난 거 같은데 말에요.”
박신영 리포터 jump1042@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