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상 받은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앞으로도 변함없이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고 효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황인화(64·효지도사협회 공동회장)씨는 지난 1일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성, 효도회를 통한 독거노인 돌보기와 장학사업, 효문화 정착 운동 등을 벌인 공로를 인정받아 제9회 대전여성상(훌륭한 어머니 부문)을 수상했다.
다섯 분의 부모님을 모시다
효를 몸으로 직접 실천하며 40여년을 살아온 황씨. 그는 다섯 분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금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영정 앞에서 문안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한다.
22살에 결혼한 황씨는 결혼과 동시에 두 명의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모셔야했다. 주사가 심한 시아버지 때문에 늦은 밤 아이들과 피신을 해야 하는 날도 많았지만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도리어 시아버지의 밤참을 위해 매일 누룽지를 만들었고, 생신날에는 동네 어르신들을 초청해 음식을 대접했다. 또 관절에 이상이 생겨 제대로 걷지 못하는 시어머니도 대소변을 받아내며 극진히 모셨다.
그 바쁜 와중에도 동네 노인정과 독거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청소를 해주고 음식을 나누기도 했다. 1998년부터 황씨는 친정부모까지 모셔야 했다. 황씨의 남편은 흔쾌히 동의했다. 그동안 시부모를 헌신적으로 모셨던 아내가 고마웠기 때문이다.
황씨는 다섯 분의 부모님을 모시면서 힘들어하거나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
황씨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했다면 다섯 분의 부모님을 모시지 못했을 것”이라며 “부모님을 모시는 일은 내겐 행복이었다.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면 바보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바보같이 살아온 삶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효 실천,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황씨는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는 모습을 지켜보던 동네 노인회장의 추천으로 1989년 대전시로부터 효행상을 받았다. 그 후 효행상 수상자들을 모아 ‘대전효도회’를 설립(1990년)했고 경로효친·효도장학·상부상조사업을 펼쳐 나갔다.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회비로 가정형편은 어렵지만 효행심이 깊은 학생들을 선정해 장학금을 전달했다. 독거노인들과 양로원을 찾아다니며 청소와 빨래를 해 주고 위안잔치도 열었다. 또 초·중·고교를 ‘효’가 무엇인지, 효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황씨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효행집을 발간해 전국의 학교에 무료로 배포하며 효문화확산을 위해 노력했다.
15년 동안 대전효도회 회장을 지낸 황씨는 2004년부터 한국효행수상자효도회 중앙회장직을 맡게 됐다. 황씨는 2005년 대전 뿌리공원 입구에 많은 사람들에게 효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효행선양비’를 세웠다. 또 대전시의회 효행장려법 조례안 통과에도 큰 공헌을 했다.
황씨는 다섯 분의 부모님을 모시며 효를 몸으로 직접 실천하고 효문화확산을 위해 공헌한 노력을 인정받아 삼성재단 효행상, 아산재단 경로효친상, 대통령상, 국민훈장 목련장 등의 상도 수상했다.
효도회 회장 임기를 마친 황씨는 요즘은 초·중·고교, 사회복지시설, 평생교육기관, 군부대 등을 다니며 ‘효’에 대한 강의를 하며 ‘효지도사’의 길을 걷고 있다.
“효는 거창하지도 큰 실천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마음,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김진숙 리포터 kjs997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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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화(64·효지도사협회 공동회장)씨는 지난 1일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성, 효도회를 통한 독거노인 돌보기와 장학사업, 효문화 정착 운동 등을 벌인 공로를 인정받아 제9회 대전여성상(훌륭한 어머니 부문)을 수상했다.
다섯 분의 부모님을 모시다
효를 몸으로 직접 실천하며 40여년을 살아온 황씨. 그는 다섯 분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금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영정 앞에서 문안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한다.
22살에 결혼한 황씨는 결혼과 동시에 두 명의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모셔야했다. 주사가 심한 시아버지 때문에 늦은 밤 아이들과 피신을 해야 하는 날도 많았지만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도리어 시아버지의 밤참을 위해 매일 누룽지를 만들었고, 생신날에는 동네 어르신들을 초청해 음식을 대접했다. 또 관절에 이상이 생겨 제대로 걷지 못하는 시어머니도 대소변을 받아내며 극진히 모셨다.
그 바쁜 와중에도 동네 노인정과 독거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청소를 해주고 음식을 나누기도 했다. 1998년부터 황씨는 친정부모까지 모셔야 했다. 황씨의 남편은 흔쾌히 동의했다. 그동안 시부모를 헌신적으로 모셨던 아내가 고마웠기 때문이다.
황씨는 다섯 분의 부모님을 모시면서 힘들어하거나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
황씨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했다면 다섯 분의 부모님을 모시지 못했을 것”이라며 “부모님을 모시는 일은 내겐 행복이었다.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면 바보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바보같이 살아온 삶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효 실천,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황씨는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는 모습을 지켜보던 동네 노인회장의 추천으로 1989년 대전시로부터 효행상을 받았다. 그 후 효행상 수상자들을 모아 ‘대전효도회’를 설립(1990년)했고 경로효친·효도장학·상부상조사업을 펼쳐 나갔다.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회비로 가정형편은 어렵지만 효행심이 깊은 학생들을 선정해 장학금을 전달했다. 독거노인들과 양로원을 찾아다니며 청소와 빨래를 해 주고 위안잔치도 열었다. 또 초·중·고교를 ‘효’가 무엇인지, 효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황씨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효행집을 발간해 전국의 학교에 무료로 배포하며 효문화확산을 위해 노력했다.
15년 동안 대전효도회 회장을 지낸 황씨는 2004년부터 한국효행수상자효도회 중앙회장직을 맡게 됐다. 황씨는 2005년 대전 뿌리공원 입구에 많은 사람들에게 효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효행선양비’를 세웠다. 또 대전시의회 효행장려법 조례안 통과에도 큰 공헌을 했다.
황씨는 다섯 분의 부모님을 모시며 효를 몸으로 직접 실천하고 효문화확산을 위해 공헌한 노력을 인정받아 삼성재단 효행상, 아산재단 경로효친상, 대통령상, 국민훈장 목련장 등의 상도 수상했다.
효도회 회장 임기를 마친 황씨는 요즘은 초·중·고교, 사회복지시설, 평생교육기관, 군부대 등을 다니며 ‘효’에 대한 강의를 하며 ‘효지도사’의 길을 걷고 있다.
“효는 거창하지도 큰 실천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마음,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김진숙 리포터 kjs997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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