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전문의, 수필가, 의학박사
남호탁
언젠가 이런 기막힌 글을 읽은 적이 있다. ‘2005 외국인 노동자 축제’가 5월 1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렸는데, 마침 그 행사에 한국어 퀴즈대회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마음결 고운 한 여성이 베트남에서 온 노동자를 도울 요량으로 미리 문제를 뽑아 모의퀴즈를 연습했다는 건데, 모의질문 중에는 ‘똥’이 정답인 질문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한데, 한국말도 어눌한 베트남인의 입에서 ‘똥’ 대신 ‘대변’이라는 대답이 나왔다는 거다. 이런 내용의 글을 인터넷을 통해 읽고 있던 나는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똥’은 순우리말일뿐더러 발음 역시 여간 살가운 게 아니다. ‘똥’하고 발음하면 나는 반들반들한 차돌맹이가 퐁당하고 앙증맞은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이 연상되곤 한다. ‘똥’이란 발음 그 어디에도 날카롭게 각이 세워졌다거나 까칠한 구석이라곤 없다. 한데, 이토록 아름답고 푸근하기만 한 ‘똥’이란 순우리말이 있음에도 여간해선 사람들이 입에 담기조차 꺼려하는 것이니 나로선 여간 안타깝고 의아한 게 아니다.
‘대변’이란 놈의 뜻풀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똥을 점잖게 이르는 말’이란다. 똥의 일본식 한자어인 ‘대변’이 순우리말인 ‘똥’보다 점잖게 이르는 말이라니, 망발도 이런 망발이 없다. 굳이 사대주의니 속물근성이니 하는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뭔가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만은 떨쳐버리기 어렵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대변’ 그거 발음도 영 아니다. 발음만으로 따져 봐도 ‘똥’에는 명함조차 내밀 수 없을 만큼 밋밋하고 건조하기만 하다.
아름답고 앙증맞은 발음 뿐 아니라 순우리말인 ‘똥’ 속에는 우리네 조상님들의 깊고 심오한 철학이 담겨져 있는 것만 같다. 과거 인류는 자신을 비쳐보는 거울을 ‘동’으로 만들어 사용해왔다. 혹여 우리네 조상님들은 ‘똥’이야말로 인간의 건강을 비쳐주는 거울이란 의미에서 ‘똥’을 ‘동’과 발음이 닮은 ‘똥’이라 부르게 된 것은 아닐는지.
아름다운 순우리말인 ‘똥’이 있음에도 굳이 대변이니 뭐니 하는 표현을 쓸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다. 나는 외국인들의 입에서도 순우리말인 ‘똥’이란 단어가 거침없이 흘러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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