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음악카페 딱정벌레. 이곳은 성명진(57)씨의 음악 사랑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된 곳이다. 한쪽 벽면을 꽉 채운 1만장이 넘는 LP와 2000여장에 달하는 CD는 더 이상의 인테리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턴테이블을 자유자재로 만져가며 진지하게 음악해설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연륜이 묻어나는 DJ’ 그 자체다.
라디오 감성에 푹 빠진 라디오키드
그가 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라디오. TV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초등학교 시절, 라디오는 그가 음악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올 때마다 가사를 받아쓰고, 가사가 전하는 그 감정에 완전히 몰입했다.
“요즘은 컴퓨터에 노래 제목만 치면 단번에 가사 전체를 볼 수 있지만, 우리 때는 직접 받아써야 했죠. 한곡 가사를 다 받아쓰려면 같은 노래를 몇 번이나 들어야만 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만든 가사책도 여러 권입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팝송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C.C.R과 비틀즈는 당대 최고의 그룹으로 그 노래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이어 이장희, 김세환, 조영남, 윤형주 등의 일명 세시봉 가수들이 등장했고, 그들의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를 들으며 DJ의 매력을 알게 됐다.
“이장희, 윤형주는 당시 최고의 라디오 DJ였죠. 그 분들이 진행하는 심야 라디오 방송을 들으려고 하루 종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요.”
차인태 전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 역시 그가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LP를 사기 위한 DJ 아르바이트
그가 소유하고 있는 1만장의 LP 중 가장 소중한 한 장을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장현’의 음반이라 답했다. 그가 산 최초의 레코드판이자, 만장의 LP를 모으게 된 시발점이었다.
“1973년 용돈을 모아 처음 산 LP가 바로 이 앨범이에요. 당시 코스모스 백화점에서 800원을 주고 구입했는데, 다른 음반보다 인기가 높다고 200원 정도 더 비싼 앨범이었죠.”
그때부터 그는 LP를 한 장 두 장 마련하기 시작한다. LP를 사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돈이 필요했다. 그러던 차 평소 그의 해박한 음악지식을 알고 있던 친구 누나가 분식점 DJ 아르바이트를 권했다.
대학생이던 77년, 그가 처음 DJ를 시작한 곳은 종로에 있는 한 분식점. 당시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분식점·떡볶이집 DJ가 있을 정도로 인기는 물론 벌이도 괜찮은 아르바이트였다.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해 LP를 모아가던 그는 늘어나는 LP의 수만큼 음악 지식 또한 점점 쌓아갔다.
“그 때는 발품을 팔아가며 일일이 제가 자료를 다 모았어요. 또 LP를 사러 갈 때마다 몇 시간씩 머물며 모든 음반을 다 뒤져보기도 하구요. 그렇게 하다 보니 음반 자켓만 봐도 이 음반이 어떤 장르의 음악인지 다 알게 되더라고요.”
이 세상의 음악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그에게 가장 의미가 있는 노래는 과연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는 “가슴 절절한 가사로 사춘기의 감성을 깨닫게 해 준 윤형주의 ‘우리들의 이야기’, 생활이 너무나 어려워 해답을 찾기 어려웠을 때 삶의 의욕을 다시 불어넣어준 ‘그레고리안 성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꼽았다.
음악, 사람, 추억을 위한 공간
자신만의 30~40대를 보낸 그가 다시 음악의 세계로 돌아온 것은 1990년 대 후반.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음악’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으면서부터다. 또 자신이 가진 LP라는 자산과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사람들에게 잊혀져가는 것들을 기억하게 해 주고 싶었다.
“음악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잊혀져가는 낭만을 사람들에게 되찾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예전 음악다방은 그 특유의 열기로 가득했는데....요즘은 그런 열기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없어 늘 안타까웠습니다.”
1998년 돈암동에 정통 음악다방을 재현한 음악카페 ‘싼타나’를 오픈했다. 몇 년 후 의정부로 자리를 옮겨 전원음악카페로 업그레이드시켰고, 방이동 딱정벌레는 2009년에 문을 열었다.
“이곳은 단지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시는 공간이 아닙니다. 음악을 들으며 그 음악과 연관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또 그 당시를 추억하는 일정의 타임머신같은 곳이지요.”
60대 부모가 40대 자식을 데리고 와 자신의 정서를 공유하고, 40대 부모가 20대 자녀를 데리고 와 그들은 잘 알지 못하는 아날로그 음악을 전해주는 곳, 딱정벌레는 그런 곳이다.
“누구든 이곳에 오면 자신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음악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에도 마찬가지구요. 음악이 좋아서 음악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고, 또 평생을 음악과 함께 할 것입니다.”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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