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전문의 남호탁
의학박사, 수필가
조선시대에는 왕의 똥을 ‘매화’라 불렀으며, 왕들은 ‘매화틀’이라고 하는 이동식 의자변기에 앉아 볼일을 봤다.
태양 같이 지체 높으신 분이 궁궐 한 귀퉁이에 마련된 화장실로 쪼르르 달려가 그것도 위엄 없이 잔뜩 쭈그리고 않아 똥을 눌 수는 없는 것이기에 그렇게 했으리라 일견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매화틀의 구조를 보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그릇된 편견인가를 대번에 알 게 된다.
왕의 의자변기인 ‘매화틀’ 아래에는 서랍처럼 생긴 구리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아무리 왕의 똥이라고 하더라도 더럽고 구리기는 일반 백성과 마찬가지일 테니까 갖다 버려야 하는 게 아니겠어’ 하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이 역시 뭘 몰라도 한참 모르고 하는 소리다. 구리그릇에 담겨진 왕의 똥은 버려지는 게 아니라 조심스레 내의원으로 보내져 어의가 똥의 모양이나 색깔, 두께 등을 면밀히 관찰하여 왕의 건강상태를 체크했다.
비단 내의원의 어의뿐 아니라 서양에서는 이미 기원전 400년경에 히포크라테스가 똥의 맛을 봤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의 선조들께서는 이미 조선시대에 똥의 중요성과 비밀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니, 선인들의 혜안에 그저 눈이 휘둥그레지고 놀랄 따름이다.
매화틀에서 볼 수 있듯이 푸세식이 아닌 수세식 양변기가 만들어진 원래 목적이 단순히 편리함 때문이 아니라 똥을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기 위함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거야 누가 되었든 하등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왕의 똥만 이런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긴 하다.
물론 일반 백성이야 밭이고 논이고 그저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라면 어디가 되었든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눌 수 있었을 테고 눈으로 확인도 할 수 있었겠지만, 어의가 하듯 그렇게 살핀 것 같지는 않기에 하는 말이다.
수세식 좌변기의 가장 큰 이점은 청결이니 편리니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배설한 똥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데 이 사실을 무시하고 일을 마치기 무섭게 물을 내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듯하다. 똥의 색깔이나 굵기 등을 살펴보지도 않고 말이다.
왕의 똥이건 무지렁이 백성의 똥이건, 똥은 하나같이 인체에 관한 많은 정보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게 과학적으로 입증된 명백한 사실이다. 조선시대 어의가 왕의 똥을 살피듯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똥을 살핀다면, 한결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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