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 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간신문 본 뒤…’ 현대의 도시문명을 ‘네모’로 일컬은 노래 가사다. (화이트의 ‘네모의 꿈’)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 산다면 노래에 그려진 ‘네모 상자 속 인생’을 피할 길은 없다. 그런데 요즘, 그 네모상자에서 탈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 필지에 두 가구의 집을 짓는 ‘땅콩집’이 검색어 순위에 진입한 지는 오래다.
‘3억으로 전원주택에 살자’는 광고도 예사로 흘러나오기에 이르렀다. 집을 둘러싼 문화가 바뀌고 있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를 벗어나 자기만의 독특한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난숙, 이향지 리포터
“10년 걸려 만든 100% 핸드메이드 집에 살아요”
성석동 최형경·김송숙 부부
최형경 씨는 어릴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점토로 코끼리를 만들어 칭찬을 받았던 기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한항공 기장으로 외국을 돌아다니며 예쁜 집들을 볼 기회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비행하고 남는 시간이면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등지를 돌아다니며 집을 구경했다. 구조가 똑같은 호텔 같은 아파트를 벗어나고 싶었다. 특별히 ‘웰빙’에 대한 지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잔디를 깔고 꽃을 가꿀 수 있는 집이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그는 직접 집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업자에게 맡기면 직접 짓는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눈썰미와 손재주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설계에서 인테리어까지 ‘내 손으로 직접’
1996년에 성석동의 전원마을에 땅을 구입하고 지하실을 짓기 시작했다. 당시 최형경 씨 가족은 가까운 마을에 전셋집을 구해 살고 있었는데, 2000년에 갑자기 주인이 전세를 비워달라고 했다. 고민 끝에 지하실만 있는 집으로 살림을 옮겼다.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땅은 잠겼어도 지하실 안으로 물 한 방울 새지 않았다.
“집은 과학이에요. 대충 대충 짓는 게 아니죠.”
조종사는 체계적인 일처리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절차를 거스르면 안전한 비행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순서대로 해서 비행기를 이착륙 시키듯, 그는 건축도 절차에 따라 했다.
“책만 봐서는 습득하기 힘들어요. 힘들 때는 공사 현장을 찾아갔어요.”
일산 시내에 한창 아파트와 단독주택을 짓던 시절이었다. 의문나는 공정을 진행하고 있는 건축 현장에서 어떻게 하는지 눈으로 보고 배워가며 만들었다. 2006년까지는 골조를 마무리하고 그 이후부터 가구, 싱크대 등을 만들었다. 설계는 물론 콘크리트 타설, 토목공사, 전기 및 상하수도 설비, 내부 도장,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100% 핸드메이드 집은 그렇게 탄생했다.
부인과 함께 10년 세월, 비용은 절반도 안 들어
집은 지층과 1, 2층으로 이루어졌다. 1층은 방 2개, 거실 2개, 화장실 2개와 식당과 주방이 있다. 2층은 방 2개와 거실, 화장실, 다용도실이 있다. 각각의 공간은 분리되기보다 부드럽게 연결되는 느낌이다. 공간을 나누더라도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해 동선이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전형적인 북미식 목조주택인데, 단열이 좋고 하자가 나더라도 쉽게 수리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20년만 살아도 새로 지어야 하는 콘크리트 건물과 달리, 수리를 하면서 새롭게 업그레이드되는 것이 목조주택의 매력이기도 하다. 관리만 잘 하면 200년도 쓸 수 있다고 한다.
집 짓는데 모두 2억 5천이 들었다. 내부 조명과 가재도구, 냉장고까지 포함된 가격이다. 업체에 맡겼으면 최소 6억 5천은 들었을 규모다. 인건비 절약도 한 몫 했고, 폐품 사용 등 자재를 알뜰하게 활용한 덕분이기도 하다.
세상에 하나뿐인, 집은 나의 애장품
간호장교 출신의 부인 김송숙 씨는 집짓는 남편을 차마 반대하지 못했다. 힘들고 귀찮은 일도 많지만, 친구들이 돌아가며 놀러오니 즐겁다.
“텃밭도 가꾸고 강아지 데리고 놀고. 아파트에서 못 하는 것 누릴 수 있죠. 특별한 건 없지만 마음이 편해요.”
‘큰 집 관리하려면 힘들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최 씨는 “좋아하면 피곤하지 않다”고 말한다.
“아침이면 감상을 하고 구상해요. 오늘은 저걸 고치자. 페인팅을 새로 하자. 작품처럼 말이에요.”
얼마나 공들여서 만든 집인가. 그에게 집은 곧 애장품이다. 주말이면 어디 멀리 놀러갈까 고민하는 일보다 집에서 수리할 곳 찾는 일이 더 즐거운 최형경 씨. 그는 다시 집짓기에 도전하기 위해 가까운 곳에 땅을 마련했다. “또 이 집처럼 하라면 못할 것 같다”고 하면서도 그의 눈빛은 기대감에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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