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만난 사람-맞춤양복 장인 김하룡

손바느질 고수하며 수트 짓는 양복장이

지역내일 2011-06-19 (수정 2011-06-20 오후 12:02:57)

 




남성들에게 양복은 자신을 표현하는 거울 노릇을 한다. 깔끔하고 몸에 딱 맞는 세련된 정장의 옷맵시는 남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멋과 개성을 중요시하는 멋쟁이들은 깐깐한 잣대로 양복을 선택하고 기성복 보다 맞춤 정장 혹은 명품 양복에 후한 점수를 준다.




양복장이 김하룡 씨는 40년간 양복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삼아 그를 찾는 손님들에게 최상의 옷을 선사한다. 예닐곱 평 남짓한 좁은 작업실에서 원단과 바늘, 실을 가지고 하루를 보내는 그에게 양복은 ‘신앙’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삶의 나침반 노릇을 해왔다. 김하룡 씨(57세/구의동)를 만나 맞춤 양복과 함께 해온 그의 인생사를 들어봤다.




 




배고픔 달래려고 뛰어든 양복장이의 길




김씨는 가정형편 탓에 고1때 학교를 그만두고 양복점 심부름꾼으로 취직하면서 양복과 첫 인연을 맺었다. 지인의 도움으로 들어간 조선호텔 내 양복점에서 1년6개월을 꼬박 잔심부름만 했다. “밥도 짖고 청소도 하고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었어요. 작은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꼬투리 잡혀서 맞기도 많이 맞았죠. 그 세월을 생각하면 참 바보스럽기도 하지만 월급도 받고 밥도 먹여주니 꾹 참고 버텼던 것 같아요.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리죠.”




세월이 약이라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바지 만드는 기술자 옆에서 보조로 일할 기회가 찾아왔다. 그렇게 어깨 넘어 터득한 기술로 선배들이 퇴근하면 버려진 천을 가지고 남몰래 바지를 만들었다. 김하룡표 바지는 시간과 함께 차츰 모양새를 갖춰갔다. 바지 기술을 연마한 후, 조끼, 수트 기술도 갈고 닦았다. 이후 광교 미조사양복점, 조선호텔 하비양복점, 하얏트 호텔 양복점 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양복점에 들어가 기술자로 일했다.




“70~80년대에는 광교, 종로, 명동 등지에 양복점들이 많이 있었고 대한민국 멋쟁이들은 다 찾아왔죠. 기술을 인정받은 후부터는 여기저기서 오라는 곳들이 많아 대접도 두둑했어요. 그렇게 돈을 모아 서른 살 즈음 종로에 제 양복점을 오픈했지요.”




첫 사업이었지만 기술자까지 10여명 두고 규모 있게 운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벌어온 돈을 남에게 빌려줬다가 받지 못하면서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나를 지키고 세워 준 양복 기술




방황 속에 시간을 보냈다. 지금의 자리인 구의동에 다시 양복점을 낸 것은 85년. 김씨는 개업 떡을 해서 주변에 돌릴 형편이 안 될 정도로 어려웠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초창기에는 한 달 동안 양복 한 벌이나 겨우 만들 정도로 열악했다. 이러다보니 배를 곯는 일도 다반사. 제 아무리 화려한 경력과 기술을 가진 양복 기술자라도 그의 진가를 알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아내와 자식들이 딸린 몸이라 그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생각을 바꿔 더욱더 기술을 연마해야겠다는 생각에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출전했다. 결과는 금상 수상. 맞춤양복을 고집해온 힘든 세월을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88올림픽이 열리면서 경기가 좋아졌고 차츰 양복을 맞추려는 사람들이 소개로 저희 집을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3년 정도 다시 신나게 양복 만들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모은 돈으로 지금 살고 있는 조그만 연립주택도 하나 장만했고 다시 꿈을 꾸면서 양복을 재단했죠.”(웃음)




맞춤 양복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이지만 그의 옷은 가치를 인정받아 꾸준히 찾는 사람들이 많다. 몇 년 전에는 도요타 자동차 이사, 박보희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의 양복을 짓기도 했다. 맞춤 양복 전성기였던 70, 80년대를 떠올려보면 유명 정치인부터 연예인, 기업인 등도 많이 대면했다. 차지철 경호실장, 정일권, 최희준, 길옥윤 씨 등 과거에 한 가락씩 했던 인사들이다.




 




몸의 굴곡 살리고자 손바느질 고수




그는 아직까지 수트를 만들 때만은 손바느질을 고집한다. 재봉질로는 불가능한 몸의 미세한 곡선을 잘 표현해야 맞춤 수트의 매력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 몸은 사방이 짝짝이에요. 어깨, 다리, 등짝은 물론이며 궁둥이까지 짝짝인 사람도 있어요. 가봉을 하면서 몸을 여기저기 만져보고 굴곡을 살릴 수 있게 작업하는데 그걸 기계화해서는 잘 맞아떨어진 옷을 만들어내기 어렵죠. 제 손에서 나온 양복은 바지랑 주머니 빼고는 모두 손바느질로 작업합니다.”




얘기를 듣다보니 그의 양복점이 건재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김씨는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옷 마니아들이고 내 옷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런 사람들의 옷을 만드는 당사자로서 대충 작업하는 일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못을 박았다.




김씨는 휴일도 없이 일한다. 주말에도 교회에 다녀오는 시간만 빼놓고 항상 가게 한쪽에 있는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침이면 여기저기 몸이 쑤시고 피곤하죠. 하지만 신기하게 가게 문을 열고 작업실에서 1시간 만 일하면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와요. 그런 걸 보면 나에게 양복일은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신앙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죠.”




돈은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만 벌면 된다고 얘기하는 김씨. 부지런함과 정직한 기술로 40년 이상 옷을 지어온 그의 인생사를 듣다보니 맞춤양복의 장인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았다.




 




김소정 리포터 bee4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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