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조각가 ‘율목(栗木)’ 이낙진

지역내일 2011-07-11

의도하지 않은, 나무결 그대로를 살린 환생작업

 원당중학교 뒤 나지막한 산자락에 둘러 싸여 섬처럼 들어앉은 공간, 길가에선 보이지 않는 그곳이 나무 조각가 이낙진 작가의 작업공간이다. 밤나무 조각가로 알려진 이낙진, 그의 작품들은 언뜻 장승처럼 보여 ‘장승조각가’로 오해하는 이도 있지만, 그의 나무 조각들은 장승이 아니다.
 “길가의 버려진 나무들을 보는 순간 처음엔 나무들이 나를 조소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마음을 비우니 나무의 결, 옹이 하나하나 그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지요. 나무속에 있는 표정을 볼 때마다 자연이 인간을 향한 조소라고 느껴졌어요. 100년도 못사는 인간들이 자연을 마구 베어버리고 훼손시키는데 대한 조소...” 

나무조각과 그림, 조소 등 모든 예술은 그에게 하나로 通한다
 이낙진 작가는 밤가시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밤나무가 많아서 ‘밤가시’라 불렸던 그곳에서  나무들을 보며 자란 그에게 지금의 조각 작업은 어쩌면 필연이 아니었는지. 그의 호 ‘율목(栗木)’도 밤나무를 깎고 조각하는 사람이란 의미를 담은 것이란다.
 “어릴 때부터 밤나무를 보고 자란 것도 있지만, 타고난 끼는 아마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일 것”이라는 작가. 그의 16대 조부 이무 선생은 조선시대에 세계최초로 제작된 세계지도로 알려진 ‘혼일강리 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를 제작한 이로, 주교동 원당중학교 앞에 이무 선생의 호 익평을 딴 익평로가 표시된 비석이 남아있다. 비석이 있는 곳에서 1km 남짓 들어가는 숲길이 “글 읽는 행렬이 길을 메웠다”는 뜻을 담은 ‘영글이길’이다. 그 들머리 위쪽에 이무 선생 성지가 있고, 그 길가 숲속에 작가의 작업실이 들어앉아있다.
 “밤가시 마을부터 익평로 일대, 그 너머까지 단양 이 씨 문중 땅이었지요. 신도시 개발 이전에는 밤나무가 무성했던 곳이 어느 날부터 개발의 바람이 불면서 조금씩 나무가 베어지고 베어진 나무는 그대로 버려지면서 땅의 모습은 차츰 변해가더군요. 전 15살 때 배운 것 없어도 12간지를 통했고 모든 것이 보였습니다. 그림 음악 조각, 이런 작업들이 모든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하나로 통했다고 할까요. 느낌이 떠오르는 대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조각을 하기도 합니다.”

뮤지션의 길을 접으면서 나무 조각에 몰입
 이낙진 작가는 신촌블루스 핑클 김범수 등 뮤지션들과 함께 음반 작업을 했던 뮤지션이었으며, 요절한 가수 김현식의 절친한 친구였다. 김현식이 세상을 뜨고 벽제화장터에서 그를 영원히 보내고 온 날, 그는 뮤지션의 길을 접고 본격적으로 나무 조각에 매달렸다.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진 못했지만, 누구보다 치열한 연습과 노력으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그런 과정들이 그리 녹록치는 않았다. “보여 지는 외형적인 것들로 평가하고 평가받는 그런 것들이 불편할 때가 많지요. 그런 일들이 어디 한 분야에만 그치는 것 입니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포장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성과를 보여 줌으로써 가치를 평가받는 것이 정당한 것 아닌가요?”
 묵묵히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목조각가로 한 길을 달려온 이십 여 년, 그의 나무 조각은 여러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 위안을 주고 있다. 작업실 한켠에 어깨를 맞대고 있는 작품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특유의 익살스런 표정, 우리 정서에 와 닿는 해학이 담긴 표정들에 슬몃 웃음이 배어나온다.
“나무를 보고 있으면 그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풍파에 패이고 옹이가 박힌 나무들, 저는 그것들을 거스르기보다 자연 그대로를 살려 내는 작업에 천착합니다. ‘더하기’가 아닌 ‘지우기’가 제 작업의 화두랄까. 사람마다 다 사연이 다르듯 나무도 각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 그대로 본연의 모습을 살려 내다보니 하나도 같은 표정이 나올 수가 없지요.”
 작가는 10년 가까이 꽃 박람회와 꽃 전시회에 참여했고, 2007년엔 아트페어 조각초대전, 2010년 아트페어 개인전을 했다. 2002년에는 한국 대표조각전에 초대받아 감독을 역임하며 상암월드컵경기장 평화공원에서 작품 300여 점으로 월드컵조각전을 가진 바가 있다. 그것을 계기로 풍동 애니골의 여러 곳에 나무 조형물 설치 작업을 맡았으며, 몇 년 전 화재로 없어진 통나무집 라이브 카페인 학골에는 작품 100여 점을 설치하기도 했다.
 장승과 비슷하지만, 그의 작품은 천하대장군이나 지하여장군에서 볼 수 있는 엄격함 대신 촌부의 푸근한 웃음, 눈을 지긋이 내리깔고 생각에 잠긴 표정, 유난히 큰 코를 벌렁거리는 익살스런 표정, 뻐드렁니를 그대로 드러낸 채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 심지어 튀어나올 듯 큰 눈을 부라리며 화를 내는 모습까지도 익살스런 해학이 담겨있다. 천의 얼굴을 지닌 나무 조각들은 하나가 아닌 여럿이 군상을 이뤄 기대어 섰을 때 비로소 완성이 된다. 
 마치 우리가 혼자서는 설 수 없고, 서로 어우러져야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는 것처럼...
전국 곳곳에, 또 해외에 전시된 그의 작품들을 보고 많은 이들이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작품을 의뢰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고양시보다 다른 지역에서 더 인기가 있다고(?) 웃는 작가. “고양시가 문화도시라고 알려진 만큼 전시도 많고 공연도 많고 또 수많은 공원과 문화공간에 조각품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지역 예술가들의 무대는 얼마나 되며, 그 많은 조각품들 중 우리 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 지역의 뛰어난 문화예술인들이 많은데...늘 그런 점이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그는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나무 조각들을 즐기고 감상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동안 작업한 나무 조각들을 전시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라도 고양시에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