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신문이 만난 사람
저와 함께 춤 추실래요! “쉘 위 댄스?”
온 가족이 춤꾼, 건전한 사교춤은 인간관계, 자신감 도움
2000년에 개봉한 ‘쉘 위 댄스’는 무도댄스, 일명 사교댄스의 인식과 사회적 위치를 잘 보여준 영화다. 본 지 10년이 넘었지만 남편이 댄스학원에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 부인이 “꼭 그 춤을 배워야 하냐?”며 그만두기를 종용하는 장면과 신나게 춤을 추는 주인공의 시선이 지금까지 아련히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음과 양, 슬픔과 멜랑콜리가 한데 묶여 있는 이 춤을 추는 송승용씨를 만나러 가는 길은 가벼운 호기심과 긴장감이 있다.
우리는 춤바람 난 가족
춤바람 난 가족. 사람들은 송승용(고잔동) 가족을 이렇게 부른다. 부부는 물론 딸, 사위, 심지어 4살 된 손자까지 춤을 춘다고 하니 춤바람 난 가족이 맞다. 범상치 않는 가계를 이끌고 있는 그는 유연하면서 절도 있는 태도,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 갖고 있는 표정을 가지고 있다. 참 신기하다. 아니면 편견 때문일까? 그의 얼굴에선 사교댄스 추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날렵함과 강직함이 있다. 전혀 다른 단어가 동시에 떠오를 때의 생경함. 하지만 사무실에 한 벽면을 채우고 있는 각종 증명서가 이유를 설명한다. 그의 사무실은 개인 박물관 같다. 벽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각종 상장과 상패, 그리고 신분증들...굳이 인터뷰를 하지 않아도 벽에 걸린 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이력을 알 수 있을 정도다. 회사를 다니면서 받은 우수사원상부터 새마을지도자, 대통령상까지 30여 종 넘는 상뿐만 아니라 행사 참여시 부착한 리본, 손목시계까지 액자에 표구 되어 있다. 뒤 늦게 시작한 대학교 경영대학원 수강증까지 자신이 살아낸 시간을 고스란히 정리한 그에게서 ‘집념’이 보인다.
음악과 춤은 고단한 그의 삶을 지탱 시켜준 보물이었다. 가족의 의미를 알 수 있는 나이가 되기도 전에 가족을 잃은 어린 소년은 이리저리 흘러 다니다 열두 살 나던 해에 우연히 기타를 만난다. 튕겨져 나오는 기타 소리에 혼을 빼앗긴 소년은 지금의 라이브 바(bar)격인 ‘회관’을 돌며 기타를 연주했다. 하지만 손에 들어오는 돈은 많지 않았다. 머리가 커지며 미래를 설계하는 나이가 되자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로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운전면허시험에 도전했다. 하지만 까막눈. 학교 갈 기회조차 없었던 그에게 글은 도깨비 같은 존재였다. 그래도 당장 면허증을 손에 쥐고 싶었다. 면허증만이 살길이라고 믿었던 그는 글을 아는 사람에게 문제를 읽어 달라고 부탁하며 몇 년을 면허시험에 응시했다. 7전8기. 원하던 운전기사가 된 그는 열심히 일했다. 결혼도 하고 생활이 안정되자 어린 시절 익혔던 기타와 춤이 손짓 했다. 택시 운전을 하며 짬짬이 생기는 시간에 자신도 모르게 “업소”를 들락 거렸다. 실망하는 부인을 설득해 “차를 팔고 댄스학원을 차리겠노라”고 설득했다. 지인들의 돈 빌려달라는 소리가 무서워 서둘러 차린 학원은 입소문을 거치며 10년이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
아빠, 저도 춤 배우고 싶어요
좋아하는 댄스학원을 열기는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사교댄스는 혼자가 아닌 둘이 호흡을 맞추는 춤. 춤 상대이자 교습자로 여자 선생이 필요 했다. 돈 들여 사람을 채용하기 어렵게 되자 시선이 꽂힌 대상은 부인. “회사에 잘 다니는 아내(제갈 순옥)를 그만두게 하고 춤을 가르쳤어요. 의외로 몸치는 아니더라고요. 처음엔 정말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심하게 했어요. 수강생들 앞에서 어설픈 강사 부부라는 말을 듣기 싫었기 때문이죠” 다행히 택시 운전시절 봉사활동을 활발히 하며 인간관계를 쌓은 덕분에, 그의 실력을 아는 사람들의 소개로 학원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학원이 잘 된다’ 라는 소문이 도니까 소위 ‘어깨’들도 찾아오곤 했던 시절. ‘근육파’들은 학원에 걸린 각종 상을 보며 함부로 건드리면 안된다는 것을 감지했는지 몇 번 오고는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춤추는 부모의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고교를 졸업한 큰딸이 춤을 배우겠다고 나섰고, 둘째도 춤 가족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가족이 운영하는 댄스학원’은 그래서 생긴 것. 큰딸이 결혼을 하자 사위, 처제까지 ‘춤 바람 난 가족’에 합류했다. “내 딸과 연애를 하려면 춤을 배워야 한다고 했더니 안 배울 수 있겠어? 충청도 양반 출신인데 처음엔 힘들었겠지. 그런데 어쩔 것이야? 내 딸과 연애를 하려면 열심히 배워야지. 하하하” 둘째딸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각종 대회에 나가 상을 타기도 했다.
그는 한 달에 한번 있는 회원 모임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에게 춤을 배웠던 사람은 지금 회원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참여 할 수 있다. 10년 전에 만났던 회원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춤을 출 수 있어 행복하다는 그는 상배방과 눈인사를 한 후 우아하게 턴을 돌고, 스탭을 맞춘다. “저와 함께 춤추실래요. 쉴 위 댄스?”
남양숙 리포터 rightnam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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