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붓끝에서 벽화거리 탄생했죠”
일산서구 일산1·2동 2km 구간에 벽화거리가 조성되었다. 일산중·고등학교 담장에서 시작해 일산1동주민센터 옆 단독주택 골목길, 천주교 일산교회 담장, 현대3차 아파트 담장을 지나 에이스 10차 아파트 담장에서 에이스 11차 아파트 담장으로 이어지는 길이 2㎞ 남짓한 길이다.
고양시가 주관한 ‘문화가 공존하는 벽화거리’ 사업은 삼화페인트에서 페인트와 앞치마를 후원하고 시민자원봉사자 350여명이 참여해 완성됐다. 미술 전공자, 미술 동아리, 미술학원 원장 및 학생, 고양예고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은 4월부터 6월까지 담장 앞에 서서 구슬땀을 흘렸다. 때로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 속에 벽화에 정성을 쏟은 시민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미술동아리 ‘오색회’
일산에 새로운 명소, 우리가 만들어 기분 좋아요
“주민 분들이 동네가 환해졌다고 좋아하셨어요. 쓰레기를 버리더라도 조심스러워 질것 같고 마음이 밝아질 것 같아요.”
그랜드문화센터 내 수채화 반에서 만난 ‘오색회’ 회원 신미영 씨는 “일산에 새로운 명소가 생겨서 기분이 좋다”며 밝게 웃었다.
동심을 주제로 단독주택 담장에 그림 그려
오색회는 그랜드문화센터 수채화 강좌(강사 윤익한)에서 만난 이들의 모임이다. 회원은 30여명으로 십년 전부터 시작해 해마다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오색회는 이번 벽화거리 사업에서 단독주택이 있는 거리에 그림을 그렸다. 모두 네 개의 조로 나누어 17가구의 28개 벽면에 ‘동심’을 주제로 한 개성 있는 그림들이다.
벽면 청소 등 밑 작업부터 디자인과 조색과 채색까지 녹록치 않은 과정이었다. 대부분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들이기에 빠듯한 시간을 내서 참여해야 했다. 작업은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까지 이어졌다. 라현주 회원은 주말에는 아이들까지 작업에 동참시켰다. 3주 동안 일산동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더니 나중에는 벽화작업이 다 끝났는데도 발길이 저절로 그 동네로 향하더라는 회원도 있다. 고정숙 회원은 입술에 물집이 생겨 병원 치료를 하면서도 끝내 붓을 놓지 않았다.
동네 주민들의 따뜻한 배려와 참여 잊지 못할 것
벽화를 그리는 동네의 주민들이 좋아하는 모습도 힘이 되어주었다. 과일에 냉커피도 여러 번 대접받았다. 작업하는 골목의 통장 댁에서 정수기를 밖에 내주기도 했고, 무거운 페인트 통도 맡아주고 붓을 빨아주는 등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하다 보면 날도 덥고 짜증날 수도 있는데 즐겁게 웃으면서 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정선임 씨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신미영 씨는 학생들이 지나가면서 감탄하고 사진 찍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아이스커피를 실컷 마셔 좋았다는 김희복씨,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가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는 라현주 씨 등, 회원들의 추억담은 끝날 줄 몰랐다.
무엇보다 가장 뿌듯했던 것은 벽화에 참여를 원하지 않으셨다가 뒤늦게 동의한 가구의 벽화가 가장 예쁘게 그려졌고, 해당 주민 또한 만족해했던 사례다.
오색회 회원들은 함께 꾸는 꿈이 있다. 바로 모임 결성 30주년이 되는 해에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벽화거리 사업에는 우연히 참여하게 되었지만 가족들과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 또 참여할 계획이 있냐는 이야기에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다시 의견을 물어야 한다”며 웃었지만, 회원들 모두 보람된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고양예고 ‘담을 수놓는 그림쟁이’
벽화봉사는 살아있는 배움이에요
“벽화를 하면 깨끗한 벽이 아니라 외진 곳이 많거든요. 벽화를 하면 거기가 화사해지고 이뻐져요. 마을 사람들도 좋아하시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벽화 보면서 기분 좋아하시고 그러니까 기분 좋아요.”
고양예고의 벽화봉사동아리 ‘담을 수놓는 그림쟁이(이하 담쟁이)’ 단장 김아람 양의 말이다. 담쟁이는 올 3월에 꾸려진 재능기부 봉사단이다. 회원은 모두 48명이다. 어린이 도서관 책놀이터를 비롯해 세 곳에 벽화를 그렸다. 물론 모두 자원봉사로 진행된다.
벽화 그리기 전에 페인트 한 방울
“덕이동에서 새 신발을 신고 갔는데 페인팅 한 번에 버렸어요.”
이교민 군은 기억나는 일로 ‘신발 버린 일’을 꼽았다. 하지만 이 군은 “원래 작업을 하면 옷이 더러워진다”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담쟁이 회원들은 작업하기 전에 옷에 페인트를 한 방울 씩 떨어트린다. 조끼에 날개도 그리고 손바닥으로 물감을 찍기도 한다. 옷에 신경 쓰다보면 몸을 사리게 되니 미리 묻히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다고 김아람 양이 덧붙인다.
담쟁이가 그린 구역은 75미터 길이의 에이스 10차 아파트 담장이다. 벽화 한두개쯤 그릴 것으로 예상한 것에 비하면 무척 긴 구간이었다. 학생들은 ‘꽃’을 주제로 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꽃을 디자인했다.
김현정 양은 봄꽃 도안을 맡았다. 개나리를 아치형으로 표현한 것이 독특하다. 튤립과 날아가는 민들레도 인상적이다.
키가 큰 곽태순 군은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벽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벽의 울퉁불퉁한 구간을 메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색칠도 ‘쓱쓱’하기보다 점을 찍듯 그려야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뿌듯하다고 말한다. 김유나 양은 친구들이 잘 그렸다고 칭찬할 때 기분이 좋아진다. 한나라 양은 동아리 친구들하고 친해진 기회로 의미 있게 보냈다. 학생들에게 벽화 봉사는 교실 밖에서 얻는 귀한 배움의 기회다.
“교실에서는 다 따로따로 공부하는데 벽화는 혼자서 벽 하나를 다 그릴 수는 없잖아요. 같이 색깔 만들고 칠하면서 협동심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김아람 양)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 학부모도 보람 느껴
‘예술가’ 아이들을 키우는 학부모들도 뒷짐 지고 있지 않았다. 아이들이 ‘예술’을 하는 동안 부모들도 팔 걷어 부치고 돕는다. 현정 양의 어머니 이미라 씨는 “친척들이나 친구들에게도 자랑하고 싶을 만큼 예쁜 거리가 만들어 져서 기쁘다”고 말한다.
“지역사회에 내 아이가 봉사활동을 했다는 데 보람을 느껴요. 아이를 통해서 엄마들까지 사명감을 느낄 기회가 됐어요.”
나라 양의 어머니 최순정 씨의 말이다. 담쟁이의 벽화봉사는 고양시자원봉사센터에서 선정한 우수 프로그램으로 뽑혔다. 올 안에 벽화를 그릴 일정이 세 개 더 남아 있다. 페이스페인팅 봉사활동도 진행한다.
“쓰레기 버려지고 곰팡이 생기고 손길이 필요한 곳에 봉사활동을 하게 돼요. 솔로 털어내고 페인트 새로 칠하고 그 위에 그림 그리고 나면 다른 공간으로 변해 있어요. 지나다니시는 분들도 제일 더러웠는데 제일 이뻐졌다고 하니 참 좋더라고요.”
아람 양의 어머니 황정원 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빠듯한 시간을 쪼개서라도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한다.
세 아들 데리고 벽화봉사 참여 ‘일산1동 백금순 씨 가족’
“벽화봉사, 힘들지만 뿌듯해요”
“우리 주제가 ‘행복’이었어요. 대중 스타를 보면서 행복을 느끼잖아요. 장소가 일산중고등학교 담장이니까 지나는 학생들이 더 재미있어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백금순 씨와 세 아들(임휘주, 휘우, 휘소)은 평소 복지관이나 환경지킴이 봉사활동에 자주 참여한다. 어느 날 큰 아들 휘주 군이 플래카드를 보고 “벽화 그릴 봉사자 모집하는데 우리도 하자”고 말해 벽화거리 자원봉사에 참여하게 됐다.
자원봉사 모집 플래카드 보고 참가
아들들이 원해서 참여했지만 개인 참가자는 극히 드물었다. 미술 전공자들 사이에서 이 팀만의 독특한 전략이 필요했다. 백 씨는 대중적인 스타를 그리는 것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마침 아이들이 미술학원에서 연예인 그림을 그린 도안이 있었다. 새감이 화려해서 시선을 끌만하다는 생각에서다.
큰 형 임휘주 군은 드라마에서 반짝이 추리닝을 입고 나왔던 현빈을 그렸다. 둘째 휘우 군은 빅뱅의 권지용을, 막내 휘소 군은 슈퍼스타K에 나왔던 강승윤을 그렸다. 휘우 군은 사람들이 벽화를 보며 “현빈이다, 멋있다! 하며 발길을 멈추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고 말한다.
5월 중순부터 6월말까지 주말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아이들은 그림 실력이 부쩍 늘었다. 가까이에서 예술인들의 그림을 접한 것이 살아있는 공부가 되었다.
벽화봉사는 살아있는 미술 배움터
어려움도 있었다. 울퉁불퉁한 벽면에 물질을 발라 평평하게 하는 첫 작업이 힘들었다. 또 주말을 이용해 한번 씩 가는 농구, 미술 등 학원 일정에도 마음이 쓰였다. 자주 왔다 갔다 하는 일이 혹시라도 다른 팀에게 폐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예고 학생들의 그림을 보면서 감탄하고, 자기 작품과 비교도 해보면서 미술에 대해 호기심을 부쩍 갖게 된 것은 성과로 느낀다. 자원봉사에 대한 생각도 새로워졌다. 2시간쯤 이면 끝나는 다른 봉사활동하고 달리, 저녁 6~7시까지 남아서 뒷정리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백 씨는 “힘들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재미있어 해서 기회가 있다면 또 참여할 의사가 있다”면서 “앞으로는 좀 더 지역성이나 역사성을 보여줄 수 있는 특색 있는 벽화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휘우 군은 “같은 조 사람들과 열심히 그리고 뒷정리와 청소까지 함께 하고 서로의 그림을 보며 즐거워했던 멋진 벽화그리기 자원봉사였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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