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그 강을 강답게 만나는 그날을 위해
「아호비령산줄기가 사라지는 너머에서 임진강은 흘러온다.
산은 그 아래 깃든 것들을 등 뒤에 감추고 보여주지 않는다.
저 산줄기 너머에 얼마나 많은 마을이 깃들어 있는가?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 그리움은 흘러서 쌓인다.」
서점에서 우연히 ‘임진강 기행’이란 책을 만났다. 임진강...나고 자란 곳은 아니지만 고양시에서 십 수 년을 살다보니 고향이나 다름없는 이곳, 자유로를 달리다 만나는 강이 임진강 아니던가. 책을 넘길수록 임진강변의 풍경과 내가 알지 못했던 임진강 이야기들이 마음을 끌었다. 그래서 갈 수 없는 산줄기 너머 마을,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그리움이 쌓인다는 ‘임진강 기행’의 저자가 궁금했다. 책을 지은 이는 파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원예학을 공부한 후, 파주시자원봉사센터의 교육 코디네이터로 일하다 민통선 마을인 임진강 해마루촌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이재석 씨다.
분단의 상징적 의미 ‘임진강’이 아닌, 임진강 본래의 풍경을 담고 싶었다
이재석 씨를 만나러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농사꾼이라 5월은 바쁘고, 비가 오는 날이 한가하다”는 그를 만나기 위해 날 궂은 날을 택해 민통선 넘어 그가 사는 마을, 해마루촌을 찾았다. 일산에서 불과 50여 분, 하지만 차는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멈췄다. 불과 한 시간 전 번잡한 도시의 풍경과는 너무나 다른 고즈넉한 들판, 간혹 길가에 입산금지 철조망도 보이는 민통선 안 해마루촌. 왠지 모를 긴장감 분단의 현실이 느껴진다.
이재석 씨가 해마루촌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고향이 장단군인 부모님 때문, 장단군이 고향인 실향민들이 50년이 넘도록 타지생활을 하다 국가에 청원을 해 고향과 가까운 DMZ 내 동파리에 60호 남짓 시범마을을 형성하면서 터전을 잡게 된 것이라고. 동파리(東坡里)는 ‘동쪽의 언덕’이란 뜻으로 그 의미를 살려 마을 이름을 ‘해마루촌’이라 짓게 됐다고 한다.
10년 전 해마루촌으로 들어오기 전, 이재석 씨는 파주 조리읍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자신이 그저 농사꾼일 뿐이라고 하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파주시자원봉사센터 교육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면서 지역의 자연환경에 대한 탐사활동도 활발했다. 그런 꾸준한 관심으로 지난 2003년 파주시자원봉사센터와 함께 <공릉의 풀꽃 나무>을 펴낸 것을 시작으로 <심학산 이야기> <마을로 흐르는 시내 문산천> <파주의 젖줄, 공릉천> <DMZ 민통선 들꽃여행> <걸어서 만나는 임진강> 을 펴냈으며 얼마 전 <임진강 평화이야기-바다로 간 자라>를 썼다.
“처음 이곳에 오면 낯설지만 몇 번 다니다보면 그렇지도 않아요. DMZ, 민통선 하면 왠지 두렵고 그렇지만 어쩌면 그 본래의 모습이 아닌 분단의 이미지로 이미 우리 마음속에 고정관념화 됐기 때문 아닐까요?” 민통선 안의 마을, 해마루촌도 여느 농촌마을과 다름없는 것처럼 임진강도 그러하다는 이재석 씨. ‘임진강’ 하면 강 본래의 모습보다는 분단의 상징적 의미로 더 부각되고 늘 그렇게 회자되는 것이 안타까웠단다. 임진강으로 동물이나 물고기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오고간다. 단지 사람만이 그들의 자유에 동참하지 못할 뿐. “처음부터 임진강이 분단으로 가고오지 못하는 강은 아니잖아요. 임진강이 흐르기 시작한 수십 만 년, 아니 그 이전의 역사에 비해 남북으로 임진강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이제 60년일 뿐 인데...”
다행스럽게 그는 임진강을 탐사하는 일이 다른 이보다 자유롭다. 그의 집 2층 발코니에 서면 임진강이 보인다. 그의 임진강 기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매일 바라보는 임진강, 언젠가는 자유로워질 임진강을 위해, 임진강의 풍경과 그곳의 이야기들을 담아내는 일말이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어쩌면 통제구역의 임진강을 남보다는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내게 주어진 사명일지도 모르지요.”
임진강, 현무암 적벽이 아름다운 강이란 것을 아시나요?
임진강이 용암분출로 인해 만들어진 현무암 적벽이 아름다운 강이란 것을 알고 있는 이 몇이나 될까? 백두산 천지나 한라산 백록담처럼 용암이 폭발한 것은 아니지만, 열화분출로 원산에서 서울로 넘어가는 얕은 협곡 사이로 용암이 흘러내려 현무암 적벽이 형성된 임진강.
역사적으로 임진강 특유의 현무암 적벽은 고구려인들에게는 천연의 요새를 만들어주었고 그래서 한때 전쟁터가 됐던 그 강은 고려가 개성에 나라를 세우고 나서 전쟁터가 아니라 풍류의 대상이 됐다. 고려시대부터 조선까지 강은 화물선과 나룻배가 빈번히 오가던 곳이었다. 나루터 주막에는 개성상인, 한양상인이 북적이던 임진강, 그러나 남북이 격렬히 3년간을 다투고 나서 고랑포는 천년의 영화를 뒤로하고 지금은 적막강산이 됐다.
그 아름다운 강의 이야기는 200년 전 정약용이 쓴 ‘대동수경‘ 배수 편과 그로부터 100년 전인 1600년~1700년 경 임진강가에 살던 허목이란 사람이 뱃길을 올라가면서 쓴 이야기에 언급된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역사적으로 임진강에 대한 자세한 자료는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임진강 기행>은 이재석 씨가 농사를 지으면서 틈틈이 발 닿을 수 있는 데까지 카메라 둘러메고 임진강을 탐사하며 쓴 책이다. 아름다운 임진강의 모습이나 임진강에 기댄 사람들의 삶,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3년 만에 펴냈다.
“우리는 임진강가의 옆걸음질 치는 참게와 같은지도 몰라요. 임진강을 東西로 옆으로만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언젠가 그는 임진강이 사람들에게도 자유가 허락되는 강이 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 날을 위해 그는 임진강을 실제로 보는 것과 상상했던 것과의 간격을 줄여주는 안내자의 역할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 3년째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임진강 걷기’ 모임을 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그는 임진강걷기를 함께 하며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서너 명의 동지(?)들과 ‘DMZ, 임진강 생태평화학교’를 만들어 임진강, DMZ의 적정한 정보를 전하고 안내자의 역할을 담당할 계획이라고 한다. 임진강이 더 이상 변방이 아니기를 염원하는 바람으로.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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