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의학박사, 수필가
남호탁 원장
어디가 불편해서 병원을 찾았느냐고 묻자 치질 때문이라고 했다. 차트를 보니 삼십팔 세라 기록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훨씬 더 나이가 들어보였다. 어딘가 모르게 환자의 몸가짐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알고 보니 환자는 시각장애인이었다.
환자의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왜 이제야 병원을 찾았느냐고 묻자 시각장애인인 탓에 선뜻 병원을 방문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고 대답했다. 딱히 간호를 해줄 사람도 다며 환자는 말을 흐렸다. 나는 간호사가 친절히 보살펴줄 것이기에 굳이 보호자가 없어도 큰 불편은 없을 거라며 환자를 안심시킨 후 수술을 권유했다.
시각장애인 환자가 입원해 있는 6인실은 뭔가 분명 다른 구석이 있었다. 회진을 돌며 시각장애인 환자에게 이것저것을 물으면 주변에 누워 있는 환자들이 너나없이 거들고 나섰다. 그러고 보니 시각장애인 환자가 식사를 할 수 있게끔 곁에서 시중을 드는 이들도 병실을 함께 쓰고 있는 환자들이었다. 자신들도 동일한 수술을 받고 누워 있는 같은 처지의 환자들 이었건만 모두들 솔선수범해서 시각장애인 환자를 먼저 챙겨주기 바쁜 것이었다. 이렇다보니 딱히 간호사가 도울 일도 없었다. 시작장애인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서있자면 내가 병실에 있는 건지 단란한 어느 가정집에 있는 건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회진을 돌다 보면 묘한 현상을 접하게 된다. 병실로 들어서며 처음으로 마주치는 환자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불만을 토로하면 나머지 환자들도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불만을 늘어놓는다. 딱히 불만이 없는 환자는 하다못해 반찬이 짜다는 둥 침대 시트가 얇다는 둥 사소한 불평이라도 늘어놓으며 한마디씩 거든다. 반면에 첫 환자가 미소를 띠며 견딜 만 하다고, 수술이 잘 된 것 같아 감사하다고 하면 나머지 환자들도 모두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맞아준다.
소개한 것과 같은 일들을 겪으며 나는 전염되는 게 비단 병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콜레라니 결핵이니 감기니 하는 병만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 또한 전염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회진을 돌며 맞닥뜨리는 기이한 현상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질 않은가.
사랑도 미움도, 미소도 찡그림도, 따뜻한 마음도 서슬 퍼런 마음도 주변으로 퍼져나가 전염되는 것이라니, 실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