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치료하고, 자주 돌보며, 언제나 위로하는 의사
“남편이 늦게 들어오고, 저와 잠자리도 하지 않으려고 해서 괴롭고 우울해요. 밖에서 딴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구요. 뭐가 문제일까요?”
얼핏 봐선 부부문제를 컨설팅하는 부부상담소나 남편의 외도로 우울증을 얻은 아내가 정신과 의사와 상담중인 모습이 연상되지만, 놀랍게도 이곳은 산부인과 진료실.
임신과 출산은 물론 부부간의 성문제, 미혼여성의 성상담, 여성의 행복을 위한 인생상담까지 마다 하지 않는 산부인과 의사가 있다. 분당 구미동 류지아산부인과의 류지아(48) 원장은 환자의 마음을 읽어주고 깊이 공감해 주는 의사다. 자궁근종이나 질염 방광염 골반염 등 여성질환을 치료하는 데서 더 나아가 위기의 부부들을 행복한 가정으로 이끌어주는 조력자다.
서울가정법원 이혼조정위원으로도 활약 중
올 초부터 서울가정법원 이혼조정위원으로도 활동 중인 류지아 원장. 전국을 통틀어 100여명의 조정위원 중 의사는 서 너명이 전부인데 그마저도 대부분 정신과 남자 의사들이란다. 그는 이혼조정위원 중 최초의 여의사, 최초의 산부인과 전문의로 기로에 선 부부들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개원의원은 환자와 의사간 소통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게 오래 전부터 해 온 제 생각이에요. 10년 전 병원을 처음 열면서부터 지금까지 제가 해 온 가장 큰 역할이 바로 ‘상담’이 아니었나 싶어요. 우리 여자들은 엄마나 언니, 여동생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자기만의 스토리를 누구나 다 갖고 있거든요.”
어릴 때 꿈이 아동심리학자였다는 류 원장은 사람들이 가슴 속 깊이 묻어두고 있는 이야기를 편안하게 이끌어내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남편과 이혼하려고 결심했다가 그와의 상담을 통해 마음을 접는 이들도 많다. 반대로 그전까지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류 원장과의 상담을 통해 새 인생을 살기로 결정한 환자도 있다.
“남편과 사이가 안 좋으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우울해지고, 면역력이 떨어지고 그래서 병이 오죠. 그렇게 찾아온 환자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마주앉아 대화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 사람 의 마음까지 읽혀요. 이혼하려다 마음을 접는 사람도 있지만, 비정상적인 부부간의 성문제가 이혼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환자의 마음을 읽어주고 깊이 공감하는 병원
“40대의 한 직업여성 환자가 저와의 인연을 계기로 과거 생활을 청산하고 새 삶을 시작한 경우도 있어요. 물론 제게 마음을 열기까진 몇 년이 걸렸죠. 네일 샵을 열었다면서 다녀간지 얼마 안 돼 결혼 소식까지 전해왔어요.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고 진심으로 안아주는 일이 얼마나 값지고 위대한 것인지 깨닫는 계기가 됐죠.”
류 원장은 자신을 찾아오는 환자들이 질병을 포함해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꿈을 주고 함께 아파하고 진심으로 위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같은 여성조차 자칫 색안경을 끼고 보기 쉬운 직업여성들 역시 그에겐 예외가 아니다.
필요하다면 진료실 밖에서 환자를 만나는 일도 꺼리지 않는다.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가 가까이 있음에 감사하고,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는 것도 류 원장이 지닌 천성이다.
“그 환자에게 제 마음이 가 있으면 더 철저한 진료가 가능하죠. 문진도 잘 하게 되고, 병에 대한 설명도 꼼꼼히 메모해 주게 되고, 환자 얘길 더 잘 들어주게 되구요. 아 참, 초음파까지 더 잘 보인다고 전 굳게 믿고 있어요.”
가장 큰 자산은 ‘고통을 감내하는 능력’
이화여대의대에서 전문의를 취득한 후 차병원 산부인과 등을 거쳐 지금의 병원을 개원한 류 원장은 지역내 의사 커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서현동 21세기의원의 김한수 원장이 그의 남편이다. 누구나 그렇듯 그에게도 크고 작은 인생의 굴곡이 있었다. 그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최선을 다한다거나 열심히 노력하는 것보다 오히려 ‘고통을 감내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저보다 부부생활 경험이 적거나 나이가 어리다고 섣불리 훈계하진 않아요. 스토리가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어요. 조정위원 활동을 할 때도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견디고 법원을 찾은 그들의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을 우선으로 하죠.”
프랑스의 의성 트뤼도의 동상 비문에 새겨져 있는 ‘가끔 치료하고, 자주 돌보며, 언제나 위로하자’는 말은 그가 가장 추구하는 병원진료의 이상향과도 같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위로받고 사랑받고 격려받길 원하는 법. 자신의 병원이 그런 곳이길 류 원장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홍정아 리포터 tojounga@hanmail.net
류지아 원장이 전하는 여성 건강Tip.
“요즘엔 성생활 여부와 관계없이 20~30대에서도 자궁내막증이나 자궁근종 등 여성질환이 많아요. 그런데 산부인과에 와서 진찰받지 않으면 그냥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는 게 문제죠. 미혼여성들도 산부인과와 친해져야 합니다.”
예전에 비해 성 접촉 기회가 많아지고 시대가 변하다 보니 요즘엔 성병으로 찾아오는 환자들도 많다. 류지아 원장은 “질염 등 여성질환을 가벼이 여겨 치료하지 않으면 자칫 불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후피임약을 무조건 맹신하거나, 날짜를 계산한 자연피임, 질외사정을 통한 피임 등 안전하지 못한 피임방법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콘돔을 사용하는 것도 효과적이지만, 임신을 원하지 않는다면 여성 스스로 적극적인 피임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먹는 피임약 뿐 아니라 자궁 내 장치나 팔에 이식하는 피임약까지 안전하고 다양한 방법이 있어요. 그 중 나에게 맞는 피임법을 선택하면 더욱 행복한 성생활을 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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