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1호 유학생, 신화를 쓰다
중학교 시절 전교 350~400등의 하위권으로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학생이었던 안재현 씨. 지금은 미국 명문 주립 미네소타대학 경제학과에 다니고 있는 재원이다. 분당의 특성화고인 양영디지털고등학교 유학반 1호 유학생이기도 하다. 그는 요즘 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와 고교 후배들에게 진로 멘토 역할을 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공부와는 담쌓은 학생이던 그가 공신이 되기까지의 스토리는 꽤 흥미롭다.
고교 진학 후 처음 시작한 공부, 기본기 약해 고생
“양영디지털고등학교도 솔직히 공부하기 싫어서 진학한 학교였어요. 제가 진학하는 학교가 공고일줄 알았을 정도로 고교 입학 당시만 해도 정말이지 학업이나 진로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한 학생이었죠. 하하.”
대학진학은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는 안씨. 특성화고의 특성상 다양한 진로교육이 있었고 취업반이 아닌 진학반에 들어가면서 진로와 진학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먼 미래는커녕 불과 3년 후의 내 모습도 그려지지 않자 갑자기 암담해졌어요. 때마침 학교에서는 유학반을 만들어 해외대학 진학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지망생을 모집하고 있었어요. 특성화고이기 때문에 오히려 해외대학 진학에 유리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무조건 유학반에 들어갔죠.”
인생에서 공부라는 과제와 진지하게 맞닥뜨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말한다. 쌓아놓은 바탕이 없었기에 유학반 생활은 하루하루가 힘든 여정이었다.
“매일 밤 11시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했어요. 거의 휴일도 없이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죠. 힘든 과정 때문에 유학반을 떠나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늘어갈 때마다 불안감과 위기의식이 들기도 했답니다. 교장선생님과 유학반 담당 선생님이 끝까지 지켜주셨기에 오늘의 결과 있는 것 같아요.”
받아주는 학원 없을 정도로 낮은 실력에서 토플을 정복하다
“해외대학 특히 미국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토플성적이에요. 120점 만점에 적어도 80점 이상은 받아두어야 하지만 중학교 때 해 놓은 것이 없으니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진학을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했지만 그중에서 제겐 토플이 가장 큰 벽이었어요.”
유학반 친구들과 함께 토플학원을 찾았다. 하지만 받아주는 학원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실력테스트 결과가 너무 낮았기 때문.
“당시 iBT가 아닌 CBT로 테스트를 봤는데 제 기억에 300점 만점에 130점도 채 안 됐던 것 같아요. 학원에서는 이 성적으로는 들어갈 반이 없다고 하더군요. 포기할까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자존심도 상하고 오기도 생기더라고요.”
이 후 몇 곳의 학원을 찾아다닌 끝에 드디어 안 씨를 받아주는 학원을 찾았고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갈 수 있었다.
“이래서 공부에 기본이 필요하구나 하는 것을 그때 절실하게 느꼈어요. 학원에서 시키는 대로 했죠. 가장 공을 들인 것은 바로 단어암기였어요.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도 손에서 단어장을 놓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어요. 공부해보니 토플은 문법보다는 어휘력이더라고요. 아는 단어가 많으면 확실히 유리해요.”
3년 동안 총 5번의 토플시험을 봤고 성적은 꾸준히 올라갔다. 50점대-60점대-70점대-80점대. 입학당시 최종 성적은 84점. 미국대학 진학에 필요한 성적으로는 중상위권에 해당되는 성적이다.
국제 IT자격증 CCNA취득, 입학시 가산점 받아
특성화고 학생이 일반고생에 비해 미국대학 진학에 유리한 점이 바로 관련 자격증이 있다는 것. 그 역시 CCNA국제자격증을 취득해 가산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자격증이 있으면 진학 시에 가산점이 주어져요. 특히 IT관련 자격증을 선호하죠.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은 공부에요. 필기시험은 문제은행식으로 출제되는데 일정점수 이상을 받아야 하고 실기도 통과해야 하죠. 국제자격증이기 때문에 모든 시험이 영어로 치러지는데 제게는 그게 제일 어려웠어요.”
국내 대학 수시전형이 그렇듯이 미국대학 진학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내신성적(GPA). 안 씨의 내신은 3년 동안 상위 10%이내의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꾸준히 유지해 왔다.
“미국대학은 정말 내신을 중요시해요. 미네소타대학의 경우 내신 비중이 4점이었는데 저는 2.7점밖에 못 받았어요. 그 만큼 내신 성적 반영을 엄격하게 하기 때문이죠. 미국 대학에서는 발전가능성이 높은 사람 그리고 주어진 과정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을 인재로 판단한다는 것을 입시를 치르면서 절실하게 느꼈어요.”
컴퓨터사이언스에서 경제학으로 전과, 국제금융인으로 활약하고파
안씨는 미네소타주립대 컴퓨터사이언스과에 진학했지만 현재는 경제학과로 전과했다. 대학 진학 후 여러 과목을 들으며 경제학에 대한 매력을 느꼈기 때문. 자신에게 꼭 맞는 전공을 찾았고 국제금융인이 되어야겠다는 꿈도 갖게 되었다.
“처음엔 언어도 서툴고 환경도 음식도 낯설어 정말 적응하지 못했어요. 수업을 들어도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죠. 절망스럽고 우울했어요. 매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꿈을 꿨죠. 현지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한국 친구들 하고만 소통했어요.”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안씨가 문득 떠올린 것은 바로 부모님 선생님 후배들의 기대에 찬 얼굴들이었다고.
“제가 양영디지털고등학교 1호 유학생이잖아요. 나쁜 선례를 남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죠. 막내인 제가 미국대학에 합격해 각종 언론에 주목을 받았을 때 정말 자랑스러워하던 부모님얼굴도 떠올랐어요.”
1학년을 마친 지금 그의 학점은 4.0만점에 3.3점. 매우 우수한 성적에 해당된다. 대부분 토론과 발표. 프로젝트형 수업으로 진행되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놀라운 성적이다. 교수들에게 안씨는 우수한 학생이라기보다는 열심히 하는 학생. 메일 보내고 연구실 직접 방문하는 일이 잦아 교수를 귀찮게 하는 학생으로 유명하다.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부터 제 삶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성취하고 또 도전하는 것의 연속이었어요. 저와 같은 길을 걸은 선배가 아무도 없기에 제가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이끌어주지 않죠. 그러니까 이 낯선 곳에서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적극적으로 나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춘희 리포터 chlee1218@empa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