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는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대회에 참가한 학생들 중 유독 천일초등학교(교장 장덕진) 학생들이 눈에 띈 건 일단 소재부터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미국 무대에서 벌어진 대회에서 ‘햄버거보다 비빔밥이 좋다’고 선언하는 당당함, 게다가 대본부터 소품, 무대까지 아이들 스스로가 감당해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재잘재잘 말 많고 호기심 많은 13세 친구들, 천일초 6학년 ‘Amigo’팀의 올림피아드 도전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대한민국의 위상과 뿌듯함을 느꼈던 10박12일 미국여행
“미국 심사위원들이 싫어하지 않겠냐며 엄마들도 걱정을 하긴 했는데, 그냥 밀고 나갔죠. 우리 것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점수를 못 받았는지 모르지만….” 박민지 양은 우수상(Excellence Award)을 받는데 머물러야 했다는 아쉬움을 이렇게 드러낸다. 그래도 아이들이 얻은 세계무대에서의 경험만큼은 1등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장한주 양의 얘기가 이어진다. “무대에서 실수한 참가자들을 향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던 그들의 문화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대회가 끝나고 자신의 나라 배지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천일초 어린이 대통령이기도 한 김세영 군은 그때의 감동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뿐인가, ‘대한민국’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가슴에 깊이 아로새길 수 있었다. 10박12일간의 일정으로 미국 테네시주립대학교에서 열린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에 참가한 후 자유여행을 즐겼는데, 아이들은 곳곳에서 만난 대한민국의 상징들에 환호성을 질러댔다.
“뉴욕중심가 한복판에 커다란 삼성, LG광고판이 보이는 거예요. CNN도 갔었는데, 거기서 LG-TV도 만나고, 정말 신기하고,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더라고요.” 김민솔 양의 얘기에 동조하듯 눈을 반짝 반짝이는 아이들에게선 아직 미국여행의 여운이 느껴졌다.
올림피아드 첫 출전, 순수한 도전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의 ‘비빔밥’
시내 한복판, 서로 맞은편에 자리 잡은 패스트푸드점과 전통음식점. 두 가게가 서로 자신의 음식이 최고라며 경쟁을 벌이자 사람이 대거 몰려들고, 뉴스에도 보도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된다. 이름하야 3종 순회공연! 고기 좋아하는 어린이, 건강한 다이어트를 원하는 사람, 외국인 미식가에게 음식의 우수성을 입증해야 한다. 각 대상에 따라 뮤지컬, 뉴스, 홈쇼핑 형식을 빌고 막과 막 사이에는 채널을 돌리거나 랩을 뚫는 등의 장면전환 기법을 사용했다. 영어대본을 외우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전기, 액체, 음식 등의 사용은 금물, 관객 유도도 안 되고, 소품이며, 무대배경도 제한된 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배소현 양은 덧붙였다. “도전과제에서 이런 전제조건들을 잘 지켰는가와 전체적인 조화와 팀워크를 중요하게 심사합니다. 즉석에서 제시되는 현장 과제에서는 문제해결력을 요하는 등 올림피아드야말로 시대가 요구하는 통섭형 인재를 만들어내는 대회라고 할 수 있죠.” 이철규 담당교사는 가정, 학교에서 배웠던 모든 것들을 적절하게 끄집어내어 활용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 국가대표선발전이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학생창의력올림피아드 첫 출전, 동상과 특별상을 수상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도전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생각에 대본부터 연습, 무대배경, 소품 만들기까지 순수하게 아이들의 힘으로 해냈다. 원래는 금상, 은상만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 참가 자격이 주어지는데, 동상에 특별상까지 수상하면서 천일초 아이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얻은 건 자신감, 그리고 소중한 친구를 만들어가는 법
국내외 올림피아드대회를 위한 8개월여의 준비기간, 그동안 아이들은 학원도 끊는 모험(?)을 감행했다. 방학은 물론 수업이 끝난 오후시간까지 고스란히 반납해야 했다. “성적에 대한 부담감은 물론 따로 놀 시간이 없어서 그게 가장 힘들었다”며 김민재 군은 나름의 고충을 토로했다. 대신 학원비용을 차곡차곡 모아 경비도 마련했고, 소중한 친구들도 만들 수 있었다. 올림피아드를 준비하기 전에는 라이벌 의식에 의견차도 많았던 민지와 한주와의 관계도 온화해졌고, 남녀로 확연히 구분되던 아이들의 놀이문화에도 변화가 생겼다. 힘들 때마다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 임정희 담당교사 덕에 위기도 넘길 수 있었다. “친구들과 친해지는 방법을 알게 됐다”는 민지는 “서로를 이해하면 할수록 더 멋진 작품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심적, 물적으로 많은 위로와 의지가 됐던 엄마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드러냈다.
천일초 아이들은 얼마 전 치른 대한민국학생창의력챔피언대회 경기도 예선에서 1위(금상)를 수상, 8월 전국대회 준비를 하고 있다. “‘설마 되겠어~’ 싶던 부족한 자신감이 이제는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었어요. 이런 자신감으로 준비해야죠.” 소현이에 뒤이어 한주가 말한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만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 되지 않을까요.”
다음 작품은 ‘지구, 네가 주인이었어~.’ 쉿, 내용은 비밀이다. 아이들의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어떤 조화로운 그림으로 만들어질지 행복한 기대감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오세중 리포터 sejoong7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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