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전문의, 수필가, 의학박사
남호탁
항문출혈이 있다거나, 똥을 눠도 영 시원치가 않은 것과 같은 증상이 있어 의사를 찾을 경우 가장 우선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기본적인 검사는 직장수지검사(直腸手指檢査)다. 직장수지검사는 말 그대로 의사가 글러브를 낀 채 환자의 항문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진찰하는 검사를 일컫는다.
직장수지검사는 가장 기본적인 검사임에도 불구하고 의사나 환자로부터 홀대를 당하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돈이 많이 드는 CT, 초음파 검사 등을 권장하는 의사를 볼 때와는 달리 직장수지검사를 하려드는 의사를 바라보는 환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경우를 왕왕 경험하게 되는 것이니,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직장수지검사는 CT나 초음파검사에 앞서 가장 먼저 시행되어야만 하는 매우 중요한 검사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전체 대장암 중 직장암이 약 43%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데, 미국 암연구소에 의하면 항문 끝에서 12cm 이내에 있는 암을 직장암이라고 한다. 무슨 말인가, 전체 대장암의 30% 정도는 손가락 끝에서 만져질 수 있다는 얘기다.
간단한 직장수지검사 만으로도 대장암의 30% 정도를 발견할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래도 손가락을 사용하는 의사를 돌팔이 쳐다보듯 할 것이며 직장수지검사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형편없는 검사방법이라고 홀대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래도 부끄럽다며 직장수지검사 받기를 주저할 수 있는 건지 묻고 싶다.
의사인 나는 황금손가락이 아닌 투박한 손가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내가 황금손가락을 가진 의사라면 지금처럼 거침없이 직장수지검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모든 이들의 손가락이 번쩍이는 황금으로 변한다 할지라도 의사의 손가락만큼은 결코 그렇듯 사치스런 모습을 띄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건 의사나 환자 모두에게 있어서 축복이 아닌 저주요 재앙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황금손가락이 아닌 투박하고 거친 손가락을 가진 의사들이 많은 나라, 이왕에 몸을 맡길 거면 엉덩이도 거침없이 내보일 수 있는 환자들이 많은 나라, 비닐글러브를 낀 채 직장수지검사를 하는 의사들을 돌팔이 보듯 하지 않는 환자들이 많은 나라, 그런 나라라면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대장암으로 요절하는 사람만큼은 현저히 줄어들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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