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을 손꼽아 왔던가. 어느덧 6학년이 된 아들의 입학과 함께 시작된 모임. 엄마들의 모임으로 시작되어 해마다 방학이면 아이들과 함께 들로 산으로 놀러 다니기를 어언 6년 째. 그동안 우리는 아이들이 졸업하기 전 뭔가 뜻깊은 여행을 떠나기 위해 매달 여행경비를 모으는 등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8가족이 한꺼번에 해외여행을 떠난 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은 일. 직장맘을 고려해야 하는 날짜 잡기가 관건이었다. 결국 여행 일정에 맞추다보니 4가족만 떠나게 되었고, 다함께 못 가는 아쉬움을 달래며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석조사원에 반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해외여행을 계획하며 어느 나라를 선택하느냐도 중요한 고민 중의 하나였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물놀이가 최고겠지만 몇 년을 기다려온 여행인지라 뭔가 의미있는 곳으로 가자는 게 여러 의견의 종착점. 아이들이 사회 시간에 배운 세계문화유산 중의 하나인 앙코르와트를 방문하자는 의견으로 모아지고 우리는 만장일치로 캄보디아를 택했다.
킬링필드의 나라, 동남아시아의 못사는 나라... 캄보디아에 대해 이 정도의 얕은 지식만으로 떠나기엔 여행지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아이들과 함께 여러 종류의 책을 뒤져보며 캄보디아와 친해지는 사전 작업을 했다.
드디어 5시간 비행 끝에 씨엠립 공항에 도착. 저녁 비행기를 탄 터라 바로 숙소로 들어가 내일 일정을 기대하며 잠을 청했다. 캄보디아의 수도는 프놈펜인데 앙코르 유적들은 씨엠립에 밀집돼 있어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곳을 많이 찾는단다.
다음날 30도가 웃도는 열기와 함께 우리의 일정도 시작되었다. 4박 6일간의 일정 중 대부분이 유적지 탐방이라 제법 걷는 것은 기본, 더위를 견뎌야 한다는 각오가 필요했다. 캄보디아는 요즘이 제일 무더운 여름이고 우기(雨期) 때라 햇살이 뜨겁다가도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스콜(squall)이 자주 나타난다.
먼저 앙코르 제국 최초의 수도인 룰로오스에 위치한 룰레이 사원, 프레아코, 바콩사원 등을 방문했다. 앙코르 유적지는 9~15세기 인도차이나 반도 중앙부를 지배한 크메르 제국의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여기 사원들은 모두 석조사원으로 그 정교함에 감탄사가 절로 났다.
캄보디아에서는 유적지나 관광지 등 가는 곳마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관광객을 먼저 반기는 현지 아이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물건을 파는 아이들, ‘원 달러’를 외치며 구걸하는 아이들, 그냥 말없이 따라오는 아이들...비록 누추한 옷차림이지만 눈망울은 순박하기 그지없다. 여행 준비 시 1달러를 많이 준비하라는 조언을 들어서인지 이런 풍경이 낯설지가 않다. 하지만 현지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관광이라는 말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마음이 짠하다.
앙코르와트가 말을 걸다
다음날 우리는 드디어 앙코르와트를 만났다. 앙코르와트는 앙코르의 건축과 예술이 집대성된 걸작으로 꼽힌다. 11세기 후반 앙코르 왕조의 수리아바르만 2세 때 약 30년에 걸쳐 지어졌는데 오랫동안 밀림에 뒤덮인 채 세상에 알려지지 않던 이 거대한 유적을 1860년 프랑스 식물학자가 발견했다. 그 후 세상에 알려져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의 파라오 등과 함께 세상에 가장 신비로운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앙코르와트는 한 변이 4㎞에 이르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 규모에 먼저 놀란다. 사원 안쪽 벽에 조각된 부조들의 정교함에 또 한번 입이 벌어진다.
앙코르와트에 붙여지는 온갖 미사여구를 떠나서 한마디로 신비롭다는 느낌. 이 거대한 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옮겨져 왔는지, 수세기의 시공을 넘어 그 사람들의 숨결이 전해지는 듯.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몇 권의 책을 읽고 온 탓인지 그냥 지나칠 법한 사소한 것도 하나하나 눈에 기억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더위에 지쳐 별 감흥이 없는 듯 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후 한번 씩 떠올려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
그 다음날까지 앙코르의 사원 탐방은 계속 이어졌는데 그 중 앙코르와트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 바로 바이욘사원이다. 바이욘사원에 새겨진 거대한 관세음보살의 두상(頭狀) 조각은 또 다른 감흥으로 다가왔다. 이 날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흠뻑 맞으며 두상 조각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만나서 반갑다고...
여행 일정은 사원 순례 외 민속촌 탐방, 동양 최대 호수인 톤레삽호수에서 유람선 타고 수상가옥 관광, 실크 공장 견학 등으로 짜여졌다.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오면 아이들의 직행코스는 호텔 수영장. 밤 10시까지 운영을 해 아이들은 매일 달밤의 수영을 즐겼다.
우리 일행은 저렴한 패키지 여행으로 온 터라 3가지 정도의 옵션여행도 일정에 넣었다. 이 곳의 택시인 툭툭이를 타고 유적지 탐방, 오지마을(깜뽕뿌륵) 탐방, 전통안마 등. 특히 오지마을 탐방은 현지 학교 견학을 할 수 있어 아이들에겐 좋은 경험이 되었다. 또한 전통안마는 2시간이 걸렸는데 의외로 아이들도 좋아했다.
4박 6일의 긴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마음 한켠엔 따뜻한 기운이 자리잡는다. 수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사원들, 그 속에서 순박하게 살아가는 그네들의 환한 웃음이 오랫동안 기억될 듯하다.
캄보디아 여행의 Tip
* 양산과 창이 큰 모자 필수.
자외선이 강해 유적지를 걸어 다닐 때 필요하다. 유적지마다 밀짚모자를 1달러에 팔기도.
* 운동화 등 발이 편한 신발 준비.
사원 등 유적지 탐방이 많기 때문에 많이 걷는다. 특히 앙코르와트 방문 시에는 짦은 바지나 치마는 금지.
* 안 입는 옷이나 학용품 챙겨가는 센스.
현지인 특히 아이들을 위해 안 입는 옷이나 학용품을 챙겨가서 주면 그들에겐 큰 도움이 된다. 아이들에겐 과자나 사탕도 인기.
* 환전 시 1달러 많이 준비.
환전은 US달러로 하면 되고 되도록 1달러를 많이 준비한다. 호텔 등의 팁도 그렇지만 현지에서 물건을 살 때 1달러가 유용하게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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