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 있는 색소폰 들고…우리 음악 할래요?
중저음을 내는 테너 색소폰은 중장년층 남자들의 로망이었다. 정글 같은 사회에서 악착같이 살아가다 어느 날 문득 ‘음악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들은 색소폰을 집어 들었다. 꽉 막힌 가슴이 터지고 맺힌 것들이 선율이 되어 나올 때, 희열을 느꼈다. 일산 색소폰 동호회 ‘라르고(대표 염철호)’에는 그런 사람들이 모였다.
쾌적한 연습실, 체계적인 시스템
대화동에 있는 라르고 색소폰연습실에 들어가다 잠시 주춤거렸다. 예상보다 밝고 깔끔한 실내 모습을 보고 잘못 들어온 줄 알았기 때문이다. 방마다 칸칸이 나누어진 독립된 구조, 일층과 지하층을 사용하는 넓은 공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까지. 그동안 생각해왔던 색소폰 연습실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갈하고 세련된 공간에는 명랑한 기운이 감돈다. 회원들도 하나같이 밝은 모습이다.
라르고는 생긴지 3년째가 되어가는 색소포 동호회다. 연습실이 쾌적하고, 연습 시스템이 체계적인 점이 라르고의 자랑이다. 또 여자 회원들이 많다는 것도 독특하다. 하나 더 있다. 음악을 즐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애써 나눈다는 점이다.
“아마추어들이 즐겁게 연주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곳이에요. 색소폰이 삶의 활력소가 되는 거죠. 방마다 악보와 반주가 함께 나오는 반주기가 있어서 편안하게 연주를 즐길 수 있어요.”
염철호 대표의 말이다. 라르고에서는 반주를 들으면서 색소폰을 분다. 초보라도 재미있게 따라하게 된단다.
1인 1기의 꿈 색소폰으로 이룬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 덕분인지 부쩍 찾아오는 회원들이 늘어났다. 예전보다는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까. 노후를 준비하면서 마땅한 취미거리를 찾는 이들에게도 색소폰은 맞춤한 악기다. 1년 연습해도 초보를 면하기 어려운 기타나 피아노, 드럼과는 달리 멜로디만 알면 근사하게 연주를 할 수 있다. 2개월 쯤 연습하면 연주가 가능하다는 점도 ‘뒤늦은 악기 배우기’에 도전할 수 있게 용기를 준다.
“음악이 주는 매력이 분명 있어요. 노래하고는 또 다르죠. 노래는 한계가 있는데 악기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점이 좋아요.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술 먹는 것보다 스트레스 해소에 좋고 정신건강에도 이로워요.”
라르고 엄광진 총무는 이렇게 말하면서 한 해, 한 해 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색소폰에 관심을 갖고 찾아온다는 것을 감지한다고 말했다.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어 정신건강에도 좋지만, 복식호흡을 하며 연주하는 동안 유산소 운동이 되니 몸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 염 대표의 설명이다. 폐가 안 좋은 이들은 병원에서 ‘부는 악기’를 권하기도 한다.
6월 현재 회원은 50여 명이다. 30대에서 70살 가까운 회원들까지 다양하다. 여성 회원이 10여 명으로 전국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경우라 한다.
시설, 분위기, 사람이 좋은 라르고
김영남 회원은 친구들과 찾은 바에서 색소폰을 불었다.
“술값에 보태 쓰라고 손님들이 팁을 주더라고. 배운 걸 연주할 때 뿌듯했어.”
그는 ‘할 줄 아는 악기는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색소폰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도 색소폰이 제일 멋있어 보였어. 나중에 머리 희끗희끗해서 불어도 분위기 있고 멋있을 것 같아. 나의 로망이었다구.”
박인옥 회원도 옆에서 맞장구를 친다.
“맞아. 노신사가 색소폰 연주 하는데 너무 멋있어 보였어.”
회원들은 하나같이 ‘최단기간에 노래를 한 곡 연주할 수 있는 악기는 색소폰 밖에 없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라르고는 시설, 분위기, 사람이 좋은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장금자 회원은 호수공원에서 라르고의 공연을 본 것이 계기가 되어 남편과 함께 가입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직접 연주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 60살에도 도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은 거야.”
도저히 60대로 보이지 않는 그는 “동호회에 젊은 오빠들이 많다”면서 소녀처럼 웃었다. 엄광진 총무는 “40대인 내가 어디 가서 60대 누님을 만나 친해지겠냐”고 말을 받았다. 연습실에 웃음꽃이 피었다.
“악기를 배우니 새로 탄생한 기분”이라고 말하는 이정옥 회원의 나이는 68세다. 이 씨는 심수봉 노래를 좋아한다. 그는 “연주를 잘 하려면 몇 년은 더 해야할 것 같다”고 말한다. 노봉희 회원은 1년 반 정도 연습했지만 “해도 해도 끝이 없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3년 정도 연습하면 초보 딱지는 떼게 된다. 그러나 그런 구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프로는 남이 봐서 즐거운 거고, 아마추어는 내가 즐거운 거예요.”
장금자 회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3년째 거르지 않는 노인요양원 음악봉사
라르고는 매주 토요일마다 시민들을 찾아가 연주회를 갖는다. 중산공원, 호수공원이 주 무대다. 아쉬운 점은 비오는 날에 호수공원 공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천만 원 가까운 장비를 트럭에 싣고 갔어도 비가 내리면 철수해야한다. 수변무대에 지붕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르지 않는 공연이 있다. 바로 노인 요양원에서 갖는 공연봉사다.
“한 달에 한번 가는 저희를 기다리세요. 그분들이 아무리 표정도 없고 박수도 못 치지만 색소폰을 배워서 음악으로 봉사한다는 것이 뜻 깊죠.”
음악에 맞추어 일어나 춤을 추시던 분이 앉아서 박수를 치고, 눈으로만 감상하다 어느 날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면 회원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도 슬픔이 일어난다. 하지만 공연이 있는 날이면 애인을 만나듯 머리를 단장하고 고운 옷을 입고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보며 기운을 얻는다.
박정숙 회원은 “색소폰은 사람 음성하고 유사한 악기라서 가슴에 와 닿는 음색을 낸다”고 말한다. 음악으로 나누는 대화로 삶을 풍성하게 가꾸는 사람들, 라르고 회원들은 오늘도 빛나는 색소폰을 든다. 공연 및 가입문의 031-918-3143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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