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최호성
자식은 부모의 스승
자식 문제로 골치를 썩는 부모들이 많다. 흔히 부모님들이 “너도 자식 낳아봐라. 그러면 내 심정 알거다!”하는 말씀들이 결혼하고 자식을 놓으면 곧 실감하게 된다.
갓 태어난 아기는 그야말로 천사다. 내가 웃어주면 웃어주고 보고 또 봐도 신기하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내 새끼의 똥냄새는 어찌나 그리 구수한지 “똥”에 대한 수십 년의 관념을 깨버릴 정도로 순수하다.
하지만 한살 두살 나이를 먹어가고 자식을 키우다보면 자식의 모습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걱정에서 시작된 마음에서 나온 훈육들이 짜증과 내 화가 섞이게 된다.
얼마 전 TV 강좌에서 “우리 아이들은 낳은 부모를 닮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부모를 닮게 된다”며 현대사회에서 가르치는 부모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자식 또한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의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장면을 보았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생각해보면 가르치지 않는 부모의 모습 또한 닮는다는 것이 더욱 맞는 말일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일부이자 부모의 과거·현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 성품의 근본을 본받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순리이다. 흔히 문제자녀(자신의 불만족과 문제를 세상에 표출하는 방식이 관습적·도덕적 규율에 벗어났다고 세상이 판단)를 둔 부모들이 자식의 불만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도대체 누굴 닮아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뭐가 부족하다고”라는 표현은 대다수의 부모가 하는 말이다.
이런 경우 자식의 마음이 부모보다 더욱 넓고 성숙하지 않다면 자식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반면에 “저희 아이가 뭔가 불만스러워하고 부족해하는데 그걸 잘 모르겠어요. 저희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요”라며 본인들의 문제를 먼저 바라보려는 부모의 경우는 금방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내가 자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 때문에 자식이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자식의 마음의 판단에 달린 것이다.
마음의 병은 상대를 탓하고 문제의 원인을 상대나 세상에 두는 경우는 절대 치유될 수 없다. 설령 치유되더라도 일시적인 것이다. 세상은 나로 말미암아 존재하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안다면 자식 또한 나의 모습이며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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