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살면서도 황방산이 어디쯤 붙어있는지 까마득히 모르고 산 리포터다. 이제야 황방산 정복을 가슴에 새기고 하루가 멀다 하고 황방산을 오르내리는 황방산지기?를 찾았다. 약속장소는 서곡교를 지나 서곡광장의 썬플라워 웨딩홀 맞은편 황방산 입구.
주차를 해야 하는데 황방산 진입로 부근 도로는 아직도 공사 중인 부분이 있어 등산객을 위한 주차장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산에 오르는 이들이 타고 온 자동차들이 일렬로 도로 옆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산을 찾는 주민들을 위한 작은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다.
황방산은 전주의 만성벌과 서곡지구 사이에 기다란 능선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오래전에는 완주군과 전주시의 경계를 이룬 산이었고 지금은 전주시의 서쪽에 우뚝? 솟아 서곡 민들의 등산로나 산책로로 사랑을 받고 있다.
서곡광장에서 출발하여 일원사까지 거리는 2km정도이고 왕복하면 총 4km를 1시간 반 정도에 걸쳐 걷는 샘이다. 217m의 낮은 산이지만 열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오르기가 힘들라치면 평지가 나오기를 반복해 운동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산이다.
황방산은 누런 삽살개가 엎드려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전주를 지키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삽살개 방尨자를 써서 황방산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하는데.
입구에 발을 디디자 아까시꽃 향기가 코를 찔렀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리포터의 고향에도 이맘때면 아까시꽃이 지천이었는데. 향기에 반해 이끌리는데 ‘아까시나무 곁에는 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그 옛날 동네 머슴애들이 겁을 주며 떠들던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리고 간간이 짙은 찔레꽃의 향기도 코끝에 파고든다.
역사와 전설이 녹아 있는 황방산!
황방산의 오월은 녹음이 우거져 그늘을 만들어 냈으며 양쪽에 늘어선 밤나무와 오리나무, 단풍나무들은 처음 찾는 이들에게 어서 오라는 듯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전형적인 흙산을 유지하고 있는 황방산은 미끄럼 방지를 위해 경사진 곳엔 나무기둥을 간격을 두고 대어 계단형식으로 손질되어 있어 등산객의 편의를 더한다.
탐방로 입구에서 10여분을 오르니 평평한 곳이 나오는데 오른 쪽에 한 쪽 밑돌이 어그러진 고인돌이 있고 그 옆에 납암정이라는 정자가 있다(참고로 황방산에는 팔각정이 3개 있다. 납암정, 황방정, 산성정). 정자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납암정의 납자가 암고래 납자(어떤 이는 메기 납자라고도 함. 그래서 옆에 바위가 메기를 닮았다고)인 것으로 보아 옆에 있는 고인돌을 암 고래 같이 생겼다 해서 지은 이름으로 판단된다는 황방산지기의 설명이다. 납암정 옆에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인 고인돌이 상당히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고 산을 오르는 중 제법 많은 고인돌이 눈에 띈다.
그리고 방죽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했다고 해서 용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도 있다. 조금 더 내려가자 도토리나무 한그루가 화강암을 두 쪽으로 반듯하게 쪼개고 그 틈에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인다. 한 톨의 자그마한 도토리가 바위를 뚫고 나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생각한다.
정상을 지나 황방산성이 있던 곳에 다다르자 성의 일부분이었다는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만한 길옆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황방산지기가 이곳에 좋은 기운이 흐른다는 정보를 줘 리포터는 살짝 몸을 돌려 ‘돈은 착착 달라붙게 해주고 내 몸에 살들은 나와 거리를 두게 하소서’라고 기도드렸다.
사라진 혁신도시의 꿈?
높이 고작 217미터. 하지만 이곳 황방산 정상에서 보면 주변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으로는 전주 시가지가, 서로는 만경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멀리 남쪽에는 우뚝 솟은 모악산이 보이고, 바로 북쪽에는 전주산업단지가 하얀 연기를 모락모락 내뿜는다.
그리고 산 아래 서쪽 들판에 군데군데 황토색 속살을 드러낸 공사현장. 포클레인의 굉음과 함께 찢기고 뜯긴 농부의 땅들이다. 이곳이 바로 한국토지주택공사를 비롯해 대한지적공사, 농촌진흥청,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등 공공기관들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혁신도시 및 만성지구 복합단지 조성지구라고 하는데. 가슴 한쪽이 아리다.
오래전부터 전북도민이 그렇게 열망하고 준비하며 기다렸었는데…. ‘지금 보이는 정경은 곧 사라지게 되므로 마음속에 열심히 담아두시라’는 안내판 아랫부분 말이 인상적이다. 어떤 식으로든 사라질 저 붉은 대지가 오늘 밝은 햇살아래 더 붉다.
“방산이가 있어 서곡을 떠날 수 없어요!”
같이 산에 오른 황방산지기 김희연(효자동, 주부)씨는 서곡에 사는 이유가 오로지 황방산에 있기라도 하듯 산을 오르며 숙련된 숨고르기로 놓치지 않고 미주알고주알 황방산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을 멀리하는 여성들도 걱정할게 없어요. 그리고 아이들이랑 산책하기에도 부담 없는 높이이고 무엇보다 전주산업단지에서 바람과 함께 실려오는 공기 중 매연들을 이 황방산이 다 막아주지요. 여름에도 자주 황방산을 찾아 휴식을 취하곤 하는데 가끔 남편이 전화가 와 어디냐고 물으면 전 <방산이네 집>에 왔다고 해요. 황방산은 이제 정말 저의 친구이고 이웃이지요. 그래서 이사를 갈 수가 없어요”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은 산죽 숲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푸른 산길을 택했다. 갈래로 나누어진 길지 않은 길인데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때때로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오르는 아이들도 보이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하나같이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그들의 얼굴엔 건강함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사람은 변한다. 또 자연도 변한다. 하지만 하루가 달리 변하는 이 세상 속에서 변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들의 자연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다.
김갑련 리포터 ktwor0428@hanmail.net
TIP
황방산에는 서고사와 일원사 2개의 작은 사찰이 있다
▶ 서고사 : 전주의 사대 비보(裨補)사찰중의 하나인 서고사는 후백제 견훤왕17년(908년)에 보덕 화상의 제자인 명덕이 창건하고 고려 공민왕12년 (1363년)혜공이 중창하였고, 조선 초기에 벽송이 중건하였으나 그 뒤 불타 폐사되었다가 조선 후기에 중창됐다. 지금의 절 모습은 1997년부터 국가가 중창을 시작해 전주의 사고 사찰로써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서고사 나한전에는 석가불좌상, 자음전에는 아미타불좌상 등이 있다.
그리고 새로이 세운 듯 자그마한 3층탑과 석등이 세워져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흔히 보던 산중의 근엄하고 풍채 있는 사찰이 아닌 쓸쓸한 느낌이다.
▶ 일원사 : 정상을 지나 황방산성이 있던 곳까지 가면 일원사로 향하는 50m 이정표가 나온다. 원래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황방산성 안에 만덕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절이 현재의 일원사(一圓寺)가 되었다는 자료를 인터넷에서 어렵게 찾을 수 있었다. 일원사에는 숫자도 셀 수 없는 수많은 석탑과 불상으로 유명한 작은 사찰이다. 수백 기, 수백 종에 이르는 석물들. 무려 12,000여기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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