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서쪽 외곽, 비행기소음에 아직은 개발이 덜 된 열악한 환경 속에 고색고등학교(이하 고색고)는 2009년 첫 신입생을 받았다. 그리고 3년차를 맞은 지금, 그곳엔 일명 ‘밥퍼 할아버지’라 불리는 교장선생님과 행복한 학생들이 있다. 그뿐인가, 교육과학기술부 2009 전국100대 교육과정 최우수교, 1,2회 교과교실 운영 우수교 한국교육개발원장 표창이란 결과를 거머쥐었다. 그 여세를 몰아 수원 최초의 자율형 공립고로 선정됐다. 송수현 교장은 그 배경을 학생-학부모-학교가 삼위일체된 ‘소통’과 ‘활력’에서 찾았다.
학교-학생 간 소통, 즐겁고 행복한 우리 학교, 편안한 교장할아버지~
“왜 급식은 3학년부터 먹어야 하나요~.” “찬 물도 위아래가 있고, 장유유서라고 했는데, 그건 너희들이 이해해라~.” 고색고 홈페이지에는 ‘교장 선생님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라는 소통의 창구가 있다. 학생들의 친구관계, 학교운영에 관한 기타 제안 등이 올라오고, 교장선생님의 답변은 물론 학교 내 예절이나 규율에 관한 호소(?)가 게시되기도 한다. 교장선생님 특유의 유머 덕분인지 적절한 비유를 든 규율은 정말 기분 좋은 가르침으로 들린다.
흡연 제로율을 위해 마련한 사제동행 산악 등반은 오프라인 소통창구다. 교장선생님과 부모님과 산을 오르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심신의 건강을 챙기다 보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스스로 깨닫는 계기가 된다. 김시호 교육연구부장교사는 “교장선생님과 특별한 관계가 된 듯해 흡연 학생들은 오히려 이를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려줬다. 지난 토요일에는 광교산 등산, 올 1월에는 지리산 종주에도 도전했다. 스승의 날엔 교장선생님과 흡연 학생들의 ‘맞절 100번하기’도 진행됐다. 솔선수범 정신으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송 교장의 특단의 조치와 흡연측정검사, 금연침 시술 등 꾸준한 관리가 더해져 고색고는 오늘의 ‘흡연율 제로’ 학교로 거듭났다.
오후 6시의 급식실, 교장선생님을 만나는 시간. 교장선생님이 퍼준 식판 위의 밥은 사랑과 관심이 담뿍 담긴 표현이란 걸 학생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밥퍼 할아버지.’ 지난 번 축제 때 교장선생님을 희화해서 붙인 이름이지만, 정말 잘 지었다 싶다. 이런저런 소통 때문일까, 고색고 학생들이 교장선생님을 대하는 모습은 참 친근해보였다. 편하게 말을 걸기도 하고, 마음에서 우러난 진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학교-학부모 간 소통, 부자캠프 등 부자간 회복, 감사함의 자발적 봉사
생각은 굴뚝같되 행동은 생각처럼 되지 않던 자녀와의 소통문제, 아버지는 ‘부자캠프’에서 작은 희망을 찾았다. 강당에서 발 씻어주기, 편지쓰기 등의 다양한 부자캠프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됐고, 캠프를 마칠 즈음엔 서로 부둥켜안고 울 만큼 사이가 가까워져 있었다. 이밖에도 교장선생님, 아버지와 함께하는 체육활동 프로그램은 매주 토요일 학교로 발걸음을 향하게 만든다. 학교에 늘 감사한 마음인 학부모들은 복도마다 예쁜 화단 가꾸기, 불우이웃 돕기 바자회 등 자진해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은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 학부모 학교 참여 우수교 장관 표창을 수상하게 만들었다.
“활력이 넘치고, 누구나 행복하고 즐거운 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동적인 모습의 살아있는 학교 안에서 창의적인 생각도, 학력신장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평소 1억 원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많은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말하는 송수현 교장은 지난해 12월엔 급작스럽게 ‘고색칸타빌레’합창대회를 추진하기도 했다. 당시 인기리에 방영됐던 ‘남자의 자격-하모니’편에서 착안해낸 건데,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의 가면을 쓰고 나오기도 하고, 학부모가 직접 지휘를 하기도 하는 등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가득했다고 송 교장은 회상한다. 학부모와 선생님들의 지인들 중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을 초청해 교실별로 배치하고, 학생들이 관심 있는 네 개의 직업을 선택한 후 직접 찾아다니며, 궁금한 점을 물어보게 한 진로박람회는 인상 깊은 체험이었다.
학교-학부모-학생 모두가 만족하는 학력신장, 교과교실제, 대학생 멘토링제 등 운영
‘Fields Zone’, ‘Global Zone’과 같은 교과교실제 공간에선 교과별 1+1(수Ⅱ,물Ⅰ), 2+1(국,사,과), 2+2(영,수), 3+1(수Ⅰ)체제의 수준별 블록타임제가 운영된다. “전 학년 5개 과목 교과교실제 운영은 우리학교만의 가장 큰 자랑”이라고 김 부장교사는 덧붙였다. 외부강사만도 11명, 이러한 투자가 있었기에 2010년 전국단위 5월, 9월 모의고사 결과 각 영역별로 1,2등급 학생비율 증가, 8,9등급 학생비율 감소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교과교실 조성부터 수업의 질, 교사의 전문성 등에 대한 학생-학부모-교사 만족도도 높은 편이었다. 송 교장은 “2012년 신입생부턴 자율형 공립고 전환에 따른 학사운영으로 주요과목편성 비중이 증가되고, 100% 우수한 교사 확보로 수업의 질도 더 좋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력신장을 위한 고색고의 환경조성은 학생들의 얘기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저 같은 친구들을 위한 대학생 멘토링제는 공부에 자신감을 심어주는 좋은 제도인 것 같다”는 1학년 전상수 군은 “일주일에 두 번 수학, 영어를 배우는데 공부의 방법, 입시준비의 노하우 등을 알려주기도 하고, 편하게 개인적인 상담도 해줘서 정말 재밌다”고 했다. 김성령 군 역시 “형들이라 편해서 좋을 뿐 아니라 막막한 진로에 대한 꿈을 심어주고 격려해줘서 든든하다”고 들려줬다. 아이들은 공부의 감을 잡은 자신들이 다른 친구들보다 우월한 고지에 서 있다면서 웃어보였다. 이렇게 차곡차곡 실력을 쌓으며, 1만여 권의 도서?북카페 등 대학도서관 못지않은 시설을 갖춘 ‘사색의 숲’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며, 아름다운 야생화단지와 쉼터가 마련된 학교 안에서 자유를 즐기는 학생들, 2011년 6월, 무르익은 여름을 향한 고색고등학교만의 파릇파릇한 풍경이다.
오세중 리포터 sejoong7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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