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사람들-서른 한 살에 구두닦이 시작한 홍성훈씨

“신발 수선하며 마음의 상처 치유받아요”

지역내일 2011-05-28

‘나는 가수다’에서 임재범이 부른 노래 ‘여러분’이 행인들을 잠시 멈추게 하는 이곳은 길거리 구둣방이다. 유성구 지족동 반석마을 2단지 옆 이 곳의 주인은 올해 서른 한 살의 홍성훈씨.
홍씨가 구둣방 문을 연 것은 두 달 전이다. 4년간 운영하던 신발 가게를 정리하면서 시작했다.
그동안 해온 일과도 연관이 있고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일을 선택했다. 서른 한 살 젊은 청년이 소위 ‘구두닦이’라는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남의 시선을 의식했더라면 절대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남들이 인정해주는 직장만 찾으려는 친구들을 보면, 게임 속 캐릭터를 자신이라 착각하며 레벨업(Level Up)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홍씨의 직업관은 요즘 젊은 세대들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 젊은 사람이 신발 수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재료비를 뺀 한 달 순수입은 고작 100만원 안팎이다.
그래서 그는 돈을 버는 일보다 잘 쓰는 법을 배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예전엔 많이 벌어도 쓰다보면 돈이 항상 부족했는데, 반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하루 종일 죽어라 비비고 망치질해서 돈을 버니까 아껴 쓰게 되더라”며 만족한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어둡고 험한 길을 혼자 걸어와야 했던 홍씨. 무조건 대학은 나와야 한다며 어머니가 몰래 등록금을 냈지만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홍씨가 처음 시작한 일은 만화 그리는 일. 8개월 동안 손과 발만 그리다가 꿈과 현실이 다름을 깨닫고 만화가 문화생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 이후로 마트 정육점에서 하루 12시간씩 고기를 썰기도 했고 기획사에서 공연 홍보 일을 하는 등 고등학교 졸업 후 15개 정도의 직업을 전전했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고 배웠지만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체감한데다 대충 살아도 성공을 보장받은 사람들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야 했다.

신발 수선 일을 배우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금방 그만 두게 될 거라며 가르치기를 거부하던 스승으로부터 겨우 승낙을 얻어
1년가량 도제식 교육을 받았다.
구두 뒷굽 갈기, 앞창 대기, 꿰매기, 닦기 등 여러 기술 중에 가장 배우기 어려웠던 것은 ‘광내기’였다. 신발 재질과 상태에 따라 강도를 조절하는 일도 어렵고 손가락부터 어깨까지 결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기술보다 더 배우기 힘들었던 것이 ‘손님을 대하는 법’이었다.
처음에는 각양각색의 손님들과 말문을 어떻게 터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노래였다.
“임재범 노래 진짜 잘하죠?”(홍씨)
“노랫말처럼 힘들 때 서로에게 등불이 되어주면 좋을 텐데. 쉽지가 않죠?”(리포터)
“맞는 말씀입니다.”(홍씨)
리포터가 홍씨를 만난 날도 ‘여러분’이란 노래 덕분에 쉽게 말문을 틀 수 있었다.
홍씨는 신발 수선이 자기 생의 마지막 직업이 되길 희망한다.
그는 신발 수선을 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며 ‘나만 힘들게 살아 왔다’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게 됐다. 망가진 신발을 고치며 상처받고 찢긴 마음을 치유받은 덕에 몸은 힘들어도 정신건강은 많이 좋아졌다.
그는 “신발수선소가 삭막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골 냄새 나는 공간으로 사랑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소연 리포터 azuma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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