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이수하 회장

두 번의 실패 딛고 매출 1천억 회사 일궈

정밀화학기업 (주)금정 이수하 회장

지역내일 2011-04-09 (수정 2011-04-09 오후 4:29:58)

두 번의 사업 실패. 무일푼으로 출발해 매출액 1500억원을 바라보는 기업을 키워낸 이가 있다. 정밀화학기업인 (주)금정을 이끌고 있는 이수하(60) 회장. 업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경영인으로 통하는 그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비전문가가 겪은 쓰디쓴 첫 실패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이수하 회장은 졸업 후 페인트 회사에 근무하다가 1979년 첫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창업 이유는 단순했다. 세계에서 나만이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을 한번 만들어보자!
첫 아이템은 도로표지판. 쓰리엠을 비롯한 몇 안 되는 세계적인 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에 도전장을 낸 것.
“제품을 생산하려면 기계설비가 필요했어요. 헌데 저는 화학 전공이지 기계에는 문외한이었거든요. 내가 생산하는 제품이니 그 제품을 만들어 낼 기계도 내가 설계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기계를 만드는 친구에게 내 설계도대로 만들어 달라고 했죠. 3년 동안 시도했는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어요. 전전긍긍하던 차에 일본에서 제품 생산에 딱 맞는 기계를 찾아내긴 했어요. 도시바, 쓰리엠 등에 납품하는 회사인데 기계값이 무려 1억7천만엔이나 됐어요. 당시 엔화 대비로 10억 원이 넘는 거액이었죠. 아이고,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죠. 허허”
그렇게 첫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의 말대로 “비전문가가 전문가인 ‘척’ 하다가 쓴 잔을 마신 것”이다.
그 후 실패를 교훈삼아 1987년 말 다시 사업에 뛰어들었다. 남들이 안 하는 틈새 아이템 제조업으로 승승장구. 헌데 예기치 않은 곳에서 대형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두 번째 실패, 그러나 더 물러설 곳이 없다
 1995년 4월,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그의 재산 대부분이 화염과 함께 사라졌다. 당시 이 회장의 나이 마흔다섯. 또 다시 벼랑 끝에 내몰리는 최악의 위기였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맘고생이 심했어요. 하지만 오직 나만이 이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다, 주문을 외웠죠. 좌절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사업은 한 발 물러서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각오로 해야 한다, 마음을 다잡았죠. 어떻게 해야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아갈 길이 보입디다. 너무 집중하니까 나만의 방법이 보이는 거죠.”
이제는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16년 전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 건 여전히 그에겐 고통이다. 당시 공장 화재 현장에서 불을 끄던 소방관이 순직한 것. 지금도 그는 대전 현충원 국립묘지에 묻힌 그 소방관을 잊지 않고 찾는다고 한다.


글로벌 대기업 그에게 손을 내밀다
 2000년, 그에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글로벌 화학업계의 빅3 중 한 곳에서 금정과 함께 사업을 하자고 연락이 온 것. 금정은 특유의 원재료 합성방식을 활용해 글로벌 기업보다 낮은 가격으로 세계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는데 이를 견디지 못하고 합작을 제안해 온 것이다. 금정은 기술료 명목으로 330만 달러를 받는 대가로 중국에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이 회장은 “글로벌 거대기업에서 우리의 기술력을 인정하고 돈까지 받으니 없던 힘도 생기더라”고 회상했다.
그리고 2001년, 이수하 회장은 평소 거래해오던 금융회사 관계자들을 회사 사무실로 불렀다. 1995년 공장 사고로 신용불량자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는 이날 그동안 쌓였던 부채를 이자까지 다 챙겨 갚았다. 지난 6년간 멍에처럼 따라다녔던 빚을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순간이었다.


미끄럼 방지도료 전국 도로의 50% 깔려
 이 회장은 이후 계열사인 유스켐을 세워 합성수지 도료공장을 만들고, 도료 등 첨가제 시장에도 진출하는 등 본격적인 사업확장의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주)금정의 계열사 공장은 울산 익산 등 4곳에 달한다. 이중 유스켐은 도로 미끄럼 방지도료를 생산하는데, 전국 도로 중 50%를 그의 회사 제품으로 깔았다.
이수하 회장은 요즘 운전자의 안전을 지켜주는 도로주행용 도료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해외출장을 다녀보면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밤에도 유난히 먼 곳까지 잘 보이고 비가 와도 차선이 잘 보여요. 헌데 우리나라는 차선이 없어져서 툭하면 도색공사를 하잖습니까? 도로 차선은 ‘목숨 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우리 회사는 비 오는 날 밤에도 도로를 훤히 보여주는 차선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제품은 고기능성 차선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일반적인 차선 유리알과 고굴절의 유리알을 혼합 사용함으로써 야간 시야를 최대한 확보해주는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다양한 실험을 실시한 결과 국제적인 수준의 품질 및 유지관리 기준을 갖추게 됐으니 이제 한국도 안전불감증이라는 불명예를 벗어나 국산 기술력으로 새로운 교통안전문화를 갖췄으면 합니다.”


“세계 1등 제품 만드는 직원 대우 해야죠”
 금정은 기술개발 등에 투자를 많이 하는, 작지만 탄탄한 기업으로 소문난 회사다. 직원에 대한 대우도 남다르다. 그의 휘하에 있는 직원은 모두 70여 명. 회사 경영 상태는 모든 게 오픈 돼 있다. 회사가 1년 사업으로 얼마를 남겼고 얼마를 재투자 했는지 직원들이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세전 이익의 10%는 직원들에게 연말 성과급으로 나눠준다. 일찌감치 2004년부터 주5일 근무도 시작했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학자금도 지원해준다. 그래서일까. 장기 근속자가 유난히 많다.
이 회장은 항상 직원들에게 국내 경쟁 아닌 세계 일류기업과 경쟁하라고 말한다. “포장 하나를 하더라고 세계 1위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해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말단 직원부터 컨테이너에 물건 싣는 사람까지 세계 1인자가 되는 것, 그것이 금정처럼 작은 기업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이지요.” 그가 직원 복리후생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이 회장은 이제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계획을 하나씩 실천에 옮기고 있다.
“제 꿈은 해외 유수기업이 만드는 것 가운데 우리가 뒤따라가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발굴해 세계 일등의 제품으로 키워가는 것입니다. 단기적으로는 2015년 매출 1500억 원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요. 앞으로 10년 정도 일선에서 열심히 뛰어다닐 생각입니다. 그래서 내실이 더 탄탄한 회사, 세계 일등의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키우고 싶습니다.”  

신민경 기자 mksh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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