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의 기운을 모아 쏴 올린 궁극의 활
예로부터 우리는 활을 잘 쏘는 민족이었다. 사극의 단골 장면으로 등장하는 무사들의 활쏘기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우리 몸속에 각인돼 내려온 심신도야의 전통 무예인 활.
올림픽 효자 종목 중 하나인 양궁과 비교해 부르기 위해 ‘국궁’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활.
분당 율동 공원 근방 활 쏘는 터인 ‘분당정’에서 최고 어른 격인 사두(射頭)를 맡고 있는 신곽균(68ㆍ분당동)씨도 취미활동인 국궁을 통해 호연지기를 기르고 있는 대표적 궁사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가르치다 정년퇴직 후, 노후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했다는 신 사두. 육체적, 정신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취미를 고르다 국궁을 시작했단다.
먼 선조 중 활을 잘 쏘는 분과 그의 큰 아버지 또한 ‘석호정’이란 곳에서 활을 즐기신 집안 내력(?) 덕분에 평소 활에 친숙함이 있었다는 그이. 퇴직이후 자연스럽게 활을 잡은 것이 벌써 8년이 되어간다.
활시위에 담긴 멋과 운치
사실 국궁이라 하면 옛날 노인들이나 하는 따분한 취미로 생각하기 십상. 하지만 요즘은 우리 전통이 부각되면서 젊은 사람들도 국궁 터를 많이들 찾고 있다고.
“이곳 ‘분당정’만 해도 30대부터 89세의 최고령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들이 국궁을 즐기어 오십니다. 또 낙생고등학교 궁도부 학생들도 여기로 훈련을 받으러 오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운동이자 집중력과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어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는 스포츠인 국궁.
분당의 유일한 활터인 분당정을 포함해 우리나라엔 200여 곳의 활터가 운영 중에 있다. 수원의 연무정도 대표적인 활터.
국궁은 과녁과의 거리가 145미터로 국제적으로 정해진 규격에 따라 어느 활터나 똑같은 적용을 받고 있다. 활시위를 당기고 과녁에 맞으면 부저음이 울리는 방식. 매우 단순히 보이는 이 과정 속에도 예스러운 멋과 운치가 살아있다고 신 사두는 말한다.
“활은 자기 능력을 정확히 보여주는 운동이에요. 활 탓, 바람 탓, 환경 탓을 할 수가 없어요. 조금 기량이 서툰 사람들은 다른 곳에 원인을 두는데 활을 오래 쏴본 사람들은 활만큼 자기가 정확히 드러나는 것이 없다고 말하죠.”
바람의 강도, 습도 등을 감안해 활을 쏘는 오조준. 정확한 각도에서 활을 쏘는 정조준과 달리 일부러 각도를 달리해 쏘는 방법이다. 경험이 풍부한 궁사 일수록 그날의 날씨와 바람의 강도에 따라 오조준으로 활을 쏜다. 활쏘기의 경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육체와 정신을 단련하는 전통무예
하지만 언뜻 보면 가만히 서서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이 다소 심심하고 정적이다. 다채로운 익스트림 스포츠가 각광을 받고 있는 요즈음, 활쏘기의 어떤 점이 부각되고 있는 걸까.
“무슨 일이든 처음에 할 땐 겁 없이 덤벼들게 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기량이 늘면서 점차 진면목을 알게 되듯 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모아 전심전력하지 않으면 잘 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활쏘기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정신 스포츠입니다. 여기에 육체와 정신을 아우르는 기(에너지)가 모아져야 활이 온전히 과녁을 향해 날아갈 수 있습니다.”
보기에는 정적인 운동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몸 운동이라는 것. 심호흡을 통해 단전에 기를 모으고 온몸의 기운을 끌어 모아 집중해야만 방향이 틀어지지 않고 정확하게 과녁을 맞힐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처음엔 활시위를 당기는 어깨 근육 키우기 훈련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육체적인 힘이 아닌 심호흡을 배웁니다. 그래야 오래 활시위를 당겨도 무리가 없고 또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거죠.”
국궁을 통한 반구제기
그렇다면 이쯤해서 신곽균 사두를 사로잡은 국궁의 매력은 무엇일까.
“다른 운동과 같이 열심히 하면 육체적 건강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그렇다보니 판단력도 정확해지고요. 활쏘기를 통해 항상 겸손해지고 자기 자신을 반성하며 돌아보는 ‘반구제기(反求諸己)’를 할 수 있죠.”
겸손해지고 집중할 수 있고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스포츠 정신이 발취되는 것 또한 활쏘기의 매력이라는 것.
최근 젊은이들이 전통 스포츠인 국궁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타진해본다는 신 사두.
이런 이유 때문에 친구들에게도 “하면 할수록 멋과 여유를 느낄 수 있다. 누구를 이기거나 경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뿜어 나오는 예가 있다”며 국궁 예찬을 펼치고 있다는 그이. 고등학교 동창 3명을 꼬여(?) 함께 즐기고 있다고.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국궁의 매력을 화수분처럼 쏟아내는 신 사두. 활을 많이 쏘면 가량이 늘게 되는지 우문을 던져보았다.
“한발을 천금과 같이 여기는 마음, 즉 ‘일시천금’의 마음으로 절제하면서 집중해 쏘아야 활의 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기본 바탕엔 때를 기다리는 우리민족의 정서와 철학이 담겨있는 거죠.”
국궁은 전인격적인 자기 단련 과정이다, 몸과 정신, 덕이 깃들어야 활쏘기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신 사두에 대답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율동공원의 푸른 숲, 창공을 날아오르는 기개, 신 사두가 쏘아올린 활은 그렇게 5월의 신록과 그지없이 어울렸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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