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탄신일을 이틀 앞둔 5월 8일, 때마침 이번 교과서 여행은 해인사 탐방이었다. 가야산국립공원에 자리 잡고 있는 해인사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사찰로 두 번째라면 서럽다. 하늘로 쭉 뻗은 아름드리나무가 절경을 이루고 있는 산세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국보32호 ‘팔만대장경’이 보관돼 있기 때문이다.
법보종찰인 해인사는 우리나라 3보 사찰 중 하나
아름다운 진리의 바다라는 뜻의 해인사는 불교의 불, 법, 승 3보 가운데 법보사찰이다.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한 불보사찰,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인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는 법보사찰, 송광사는 열여섯 명의 국사를 배출했기 때문에 승보사찰로 삼보(세 가지 보물)사찰이라고 한다.
주차장에서 해인사까지는 약 1㎞정도 걸어야 했다. 예상 밖의 더운 날씨에 아이들은 지레 지쳐했지만 홍류동 계곡의 수려한 경관과 싱그러운 녹음, 오래된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덕분에 그리 힘들지 않게 해인사에 다다랐다.
오전 11시부터 범종각에서 스님들의 법고(북)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님들의 현란한 법고 치는 소리와 맑은 종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절로 편안해졌다. 중심 법당인 대적광전 벽에 그려진 벽화 앞에서 설명을 들은 뒤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으로 향했다.
부처님의 경전으로 몽고의 침략을 막아내다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일컫는 것으로 불교경전의 총서를 말한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 1237년부터 만들기 시작해 16년만인 1253년에 완성됐다. 고려시대 때 간행됐다고 해서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하고,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해서 팔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고려 현종 때 만든 초조대장경이 몽고의 침략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으며, 그래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한다. 불교의 힘으로 몽고군의 침입을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해 새긴 것이다.
원래 강화도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던 것을 선원사를 거쳐 태조 7년(1398)에 해인사로 옮겨 오늘날에 이르렀다. 경판의 크기는 가로 70㎝내외, 세로 24㎝내외고 두께는 2.6㎝ 내지 4㎝로 한 줄에 나란히 14자가 씌어 있고 세로로 23줄이 들어 있다.
팔만대장경은 수천만 개의 글자가 오자나 탈자가 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다는 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다.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재로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각 내부는 안타깝게도 사진 촬영은 금지다. 그저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을 따름이었다.
장경각, 이보다 더 과학적일 수 없다
팔만대장경와 더불어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각 또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해인사는 수차례 화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장경각은 한 번도 화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장경각은 해인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바람이 잘 통할 수 있도록 창문이 앞뒤로 트여져 있다. 또한 위아래 창문의 위치와 크기를 다르게 해 온도와 습도의 변화가 거의 없도록 했다. 장경각의 뛰어난 설계 덕분에 팔만대장경은 오랜 세월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다. 알면 알수록 놀랍고도 신비한 과학이 숨어있다.
일렬로 줄지어 서서 조심스레 장경각을 돌아보는 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더운 날씨였음에도 장경각 창살 앞에 서자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대장경을 지켜낸 고마운 바람이었다.
해인도를 따라 돌며 소원을 빌다
장경각에서 내려와 해인도가 있는 곳으로 갔다. 해인도는 의상 대사가 당나라 유학 시절 화엄사상을 요약한 210자 7언 30구의 게송(부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을 만(卍)자 도형에 써놓은 것이다. 210자의 게송을 미로와 같이 54번 꺾어 도는 동안 법성게를 외우며 따라 돌면 생전에 큰 공덕을 이루고 사후에는 업장이 소멸된다고 전해진다.
딸아이에게 소원을 적으라고 했더니만 대견하게도 엄마의 건강을 써내려 갔다. 아이의 소원도 함께 쓰라고 했더니 “한 가지만 빌어야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기특하기도 했지만 알고 보니 본인의 소원을 엄마에게 들키기 싫다는 소리였다.
미로 같은 해인도를 돌며 우리 모두의 건강을 기원했다. 40년 정도 살아보니 행복과 건강이 최고의 자산이다 싶었다. 소원을 적은 종이를 손에 쥐고 경건한 마음으로 해인도를 돌아야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 발걸음을 재촉해야만 했다.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마음을 다해 한 자 한 자 새긴 팔만대장경. 말로 듣고 글로 보던 것보다 직접 가서 확인하니 새삼 위대하게 다가왔다. 자랑스러운 유산, 대대로 잘 보존되길. 모두들 문화유산을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길 조용히 빌어본다.
이수정리포터 cccc09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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