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쾌한 기타쟁이들
꽉 막힌 빌딩 안에 흥겨운 노래 가락이 흘러나온다. 커피전문점에서 틀어주는 라디오 소리가 아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기타 선율이다.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라온제나 합주단원들. 라온제나는 ‘언제나 즐거운’ 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기타 한 대만 있다면 언제나 즐거운 인생이 된다는 이들. 칙칙한 구름이 하늘을 가려 기분까지 꿀꿀해질 것 같은 날이었지만, 라온제나 단원들과 함께한 토요일 오후는 참으로 유쾌했다.
처음 만난 사이도 30분이면 형, 동생 사이
음악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서 그런가. 라온제나 합주단의 분위기는 여지없이 ‘명랑, 쾌활’ 그 자체다. 제각각 목소리, 제각각 기타 소리가 어울려지려면 어느 정도의 군기(?)가 필요할 법 한도 한데, 단원들은 마치 가족들이 모인 것처럼 스스럼이 없어 보였다. 처음 만난 사이여도 어제 만난 친구처럼 친해진다는 게 라온제나 합주단원들의 공통된 성격이란다. 정용호 회원은 “누구나 부담 없이 올 수 있는 모임이죠. 토요일마다 모이지만 기타 생각이 날 때면 연습실에 와서 기타를 치곤해요. 모임이 끝나고 걸치는 한잔 술도 즐거움이겠죠?”하며 웃는다.
젊은층부터 중년층까지, 학생부터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고양뿐만 아니라 서울, 다른 경기 지역에도 단원들이 있을 정도다. 라온제나 합주단은 매주 토요일마다 정모를 갖는다. 회원은 수십 명이지만, 제각각 살아가다보니 정모에 참석 못하는 회원들도 있고, 몇 달에 한번 씩 나오는 회원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OK다.
합주 특성상 악보 공부도 필요하고, 연습도 녹록치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이 이토록 기타를 잡고 한데 모이는 이유는 뭘까. 헌데 답이 너무나 단순하다. “기타가 좋아서” 우문현답이다. 음악 교육 직업에 종사한다는 송현희 씨는 기타가 전해주는 울림에 반해 라온제나를 찾았다고 한다.
“임신했을 때 기타를 잡았죠. 그런데 현을 튕겼을 때 그 울림이 배에 전달되는 거예요. 그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 때의 감동이 아이를 낳고 일을 하는 지금도, 기타를 놓지 못하는 이유에요”
“함께하는 세상, 음악으로 가능하죠”
라온제나 합주단은 유쾌한 기타쟁이들이 모여 즐겁게 놀다가는 곳이다. 하지만 조금 욕심을 부려보는 중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들의 음악을 조금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려하는 것. 라온제나 합주단이 만들어진 또 다른 이유이다.
박재우 매니저는 “처음엔 기타 레슨을 한다는 공지를 인터넷에 올렸어요. 그래서 한두 사람이 모이고, 점차 인원이 늘어나면서 뭔가 뜻 깊은 일도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죠.”라고 한다.
라온제나 합주단은 6개월마다 자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지난 2월에는 독거노인을 돕기 위한 자선공연을 펼쳐, 성공리에 끝마치기도 했다. 무대에 함께 했던 정지원씨는 “실력이 부족해 걱정도 많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공연을 봐주셔서 힘이 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 너무나 소중한 기회였죠”라고 소감을 전했다. 올 가을에는 소년소녀 가장들을 돕기 위한 공연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이번 여름은 아마 공연 연습으로 꽤나 땀을 흘릴 거라고 단원들은 입을 모은다.
한 곡을 부탁했다. 흔쾌히 악보를 펼치는 단원들. 어느새 하나가 된다.
“이 땅의 끝에서 뭉게구름이 되어 저 푸른 하늘 벗 삼아 훨훨 날아다니리라.~~~이 땅의 끝에서 모두 다시 만나면 우리는 또다시 둥글게 뭉게구름 되리라~”
소박하지만 꾸밈없고 솔직한 소리. 이 울림을 좋아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기타가 있어 좋고, 함께여서 언제나 즐겁다는 라온제나 합주단.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기타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Mini Interview - 박재우 매니저
“나의 기타 연주는 세상에 대한 감사예요”
‘클래식과 어쿠스틱기타의 모든 것’ 인터넷 카페와 라온제나합주단 매니저 역할을 맡고있는 박재우 씨. 지금은 쉬고 있지만 다산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한 적도 있다. 그가 기타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감사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기타 구경은 고사하고, 음악 공부를 꿈도 못 꾸던 시절 그는 우연치 않게 지인의 도움으로 기타를 잡게 됐다. 처음 기타를 잡는 순간 ‘아 운명이구나’라는 걸 직감했다. 대학도 클래식 기타 학과에 진학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을 대야했을 정도로 음악 공부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도 아는 분의 도움으로 학생들을 레슨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스페인으로 유학까지 갈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돌아오며 그는 깨달은 게 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제가 지금껏 음악을 하고, 기타 연주를 할 수 있는 건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더군요. 어떻게서든 돌려드리고 싶었어요.”
유학 후 좋은 직장, 좋은 학원에서 일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도 있었지만, 그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향했다. 이후 5년 여간 은평노인복지관에서 늦게나마 기타를 배워보려는 어르신들을 가르쳤다. 그가 라온제나 합주 봉사단을 생각해내고, 지금까지 활동해오는 것도 같은 연장선상에서다. 음악은 늘 많은 사람들, 특히 음악과 소외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어야 진정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기타 음악 편곡을 할 때도 어떻게 하면 대중과 친숙해질 수 있을 까 늘 고민을 한다. 30여 년간의 기타 인생이 그랬듯, 앞으로의 기타 인생도 늘 남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하는 박재우 씨다.
남지연리포터 lamanu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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