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오랜 벗이었다. 속상한 일, 고민거리, 화풀이 할 곳이 마뜩찮을 때 박해원양은 비밀 노트에 속내를 털어 놓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렴풋이 창작의 묘미를 맛보았던 그는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영상의 매력에 눈뜨게 되었다.
방송의 매력에 빠지다
“중학교 때부터 멋모르고 시작한 방송반 활동을 하며 PD란 직업을 동경하게 되었어요.” 영동일고 방송제에서는 해원양의 재능과 끼가 빛을 발휘했다. 15분 분량의 뉴스를 완성하기 위해 취재해 대본 쓰고, 촬영 테이프를 보고 편집한 후 시연하기까지 1인다역을 매끄럽게 소화해 냈다. 영상편집도 독학으로 마스터했다. “방학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캠프에 참여해 방송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어요. 카메라 구도 잡는 법부터 촬영의 기본기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요.” 그 후 영동일고가 KBS의 도전 골든벨에 출연하면서 녹화현장의 스릴감도 직접 맛보았고 운 좋게 담당 PD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되면서 연출자로서 분명한 꿈을 갖게 되었다.
여럿이 아이디어를 짜내 기획해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매력을 박양은 중 3때 일찌감치 경험했다. 청심중학교 출신 9명이 3년간의 학교생활을 주제로 <꿈의 학교 청심국제중 첫 졸업생의 청심일기>의 공동저자로 참여해 어린 나이에 책을 써본 경험이 있다. “우리가 1회 졸업생이라 출판 의뢰가 들어왔고 선생님의 권유로 글을 쓰게 되었어요. 친구간의 갈등과 우정, 기숙사 생활의 에피소드를 풀어내는데 꼬박 3개월이 걸렸어요. 독자 입장에서 어떤 내용이 궁금할까를 고민하며 글을 써본 아주 좋은 경험이었어요.”
독하게 스스로를 조련하다
박양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일본 여행길에 들른 도쿄대의 인상이 강렬해 곧바로 언니와 함께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학습지부터 시작했어요. 재미가 붙으면서 일본어 JPT 2급 자격증을 땄지요. 중국어도 이런 식으로 공부했어요.” 수년간 쌓은 일어실력 덕분에 해원양은 일본어우수자 전형으로 청심국제중에 합격했다.
“입학하고 나니 거의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는데 진도를 못 따라갔어요. 동급생 중에는 해외유학파가 수두룩했고 다들 영어고수였지요. 저는 동네 영어학원 다닌 게 전부였고 해외 연수 경험도 없었어요. 영어를 못해서 자존심이 엄청 상했어요.” 오기가 발동한 박양은 영어에 매달렸다. 모르는 단어는 일일이 찾아 정리하고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은 친구나 선생님을 붙들고 묻고 또 물었다. 2학년이 되면서 선생님도 놀랄만큼 영어실력이 부쩍 늘었다. “기숙사 방에서 혼자 많이 울었어요. 그래도 집중적으로 파다보니 길이 보이더라구요. 그때의 치열했던 경험이 지금까지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청심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청소년기는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부모님의 강력한 권유로 박양은 일반고에 진학했다. 그에게 아빠는 최고의 멘토. “배움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분이세요. 사회 이슈부터 국제관계까지 틈나는 대로 설명해 주세요. 수학은 따로 학원 다니지 않고 중학교 때부터 아빠에게 배우고 있어요. 개념설명부터 응용풀이까지 막힘없이 알려주세요.”
목표를 세우면 치밀하게 준비하다
열혈 아빠를 둔 덕분에 해원양은 다방면에 호기심과 욕심이 많다. 영동일고 최대 행사인 원탁토론대회에 나가 150:1의 경쟁률을 뚫고 대상을 거머쥐었다. “1학년 때부터 욕심이 나던 상이었어요. 선배들이 하는 걸 꼼꼼히 봐두었다가 자료 조사부터 논리적인 근거 제시 등을 차근차근 준비했지요. 노력한 만큼 결과가 좋아서 무척 기뻤어요.” 이 외에도 논술경시와 영어 말하기 대회, 어휘 경시 등 다양한 교내 대회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줄곧 학급 임원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해원이는 리더십과 통솔력이 또래에 비해 뛰어나요. 담임이 시키지 않아도 환경미화 심사가 있으면 반 아이들을 설득해 교실 청소를 말끔히 해놓는 등 항상 솔선수범하며 아이들을 리드해 나갑니다.” 박 양을 줄곧 지켜본 최병호 담임교사의 칭찬이다.
인권에도 관심이 많아 지난 일 년 동안 마천동에 있는 다문화가정 초등학생 세 명의 집을 매주 찾아가 수학과 영어를 가르쳤다. “우리 집 가까이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어요. 부모님이 일하러 나간 텅 빈 집에서 아이들끼리 지내는 모습이 참 안쓰러웠어요. 언니, 누나라 부르며 날 따르는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어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그는 “앞으로 치열하게 발로 뛰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더 많이 세상을 이해하며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는 다큐 PD가 꼭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인생 목표가 분명하기에 박해원양은 얼마 남지 않은 고3 시절을 기꺼이 책과 씨름하며 자신의 꿈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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