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의 프레임을 벗어나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다
매년 4월 20일, 달력을 보니 20이란 숫자 아래 ‘장애인의 날’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신문이나 방송에선 장애우를 위한 축제 소식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하루만의 유별스런(?) 행사 같아서 씁쓸합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으로 사진전을 연 신승엽 씨(28세)를 만나기로 한 날, 왠지 모를 미안함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배려하고 도움을 주어야 할 것 같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시선으로 그를 대할 것 같아서...하지만 신승엽 씨는 “장애는 약간의 불편함일 뿐”이라는, 생각보다 훨씬 유쾌하고 긍정적인 청년이었습니다.
시력이 나쁘다는 것은 약간의 불편함일 뿐,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지난 해 11월 22일~28일 상명대 예술디자인센터 갤러리에서 열린 ''2010 마음으로 보는 세상, 마음으로 보는 서울'' 사진전이 열렸다. 4회째를 맞은 사진전에는 시각장애인 사진작가 10명이 찍은 60여 점의 작품이 선보였다. 시각장애 1급인 신승엽 씨도 이 사진전에 여의도 한강변에서 손을 클로즈업한 작품과 낚시를 하고 있는 조형물을 찍은 사진 등을 출품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파인더를 통해 사물을 관찰하고 촬영해야 하는 사진작업을 2~3m 정도의 거리의 사물을, 그것도 희미하게 인식하는 시각장애를 가진 이에게 가능한 일일까? 신승엽 씨는 시력이 나쁘다보니 순간적으로 눈으로 본 이미지에 상상력을 더해 촬영을 한단다. “손으로 만져보고 귀 기울여보고, 마음으로 한 컷 한 컷 찍다보면 나만의 세상이 서서히 보입니다.”
신승엽 씨를 만난 곳은 탄현동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일산직업능력개발원. 장애인을 대상으로 취업교육과 일자리 알선을 하는 기관인 이곳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졸업은 했고요. 일자리가 생길 때까지 교육생으로 생활하고 있지요” 원하는 일자리는 컴퓨터 관련 분야, 전공은 수학이지만 부전공으로 컴퓨터 공학을 공부했단다.
시각장애를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 아픈 곳을 찌르는 것 같아 미안해하면서 던진 질문이 무색하게 대답은 거리낌이 없고 씩씩하기까지 하다. “제대 후 2006년 봄 갑자기 눈의 이상을 느꼈어요. 처음에는 상대방 미간에 하얀 점 같은 것이 보이더니 그것이 점점 커져 얼굴 가운데 부분이 다 하얗게 보였어요.” 대화를 나눌수록 이 청년, 참으로 긍정왕이다.
현재 그의 눈은 2~3m 앞에 사물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다. 그것도 뚜렷하게 인식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도 최근에 나아진 것이어서 3년 전만해도 1.5m 범위 안에 있어야 사물을 인지할 수 있었단다. “사진작업이 눈을 많이 쓰는 일이니까 눈을 쉬어주라고 하지만 볼 수 있는 만큼 더 많이 봐야지요. 오히려 많이 보려고 하니까 시력이 좋아졌어요. 특히 오른 쪽 시력이...” LCD화면이 아닌 파인더를 통해 사진을 찍다보니 아주 조금이지만 시력이 좋아졌다는 검사결과가 나왔다는 이 청년, 군대까지 갖다왔으니 그 이전에 시력에 문제는 없었을 터. 5년 정만 해도 그의 시력에 큰 이상이 없었다는 얘기다. 한창 푸르른 나이에 중도장애를 갖게 됐으니 그 좌절감이 더 하지 않았을까.
“제대 후 눈이 갑자기 나빠지면서 알파벳 I와 l이 구별이 안 될 정도였지요. 병원에서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시신경이 이상이 생겨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어요.” 낙담과 좌절, 울분을 겪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처음부터 이렇게 살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마음으로 더 잘 들여다보인다고 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피사체의 내면까지 담은 사진전 열고 싶어
제대 후 시력장애가 생겼을 때 그는 복학을 미루고 집과 가까운 복지관에서 점자, 보행법 등을 익혔다. 그러다 2008년 봄 그곳에서 사진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때 음성으로 촬영을 안내해주는 시각장애인용 휴대폰이 있었는데 카메라도 시각장애인용이 있는 줄 알고 방법을 익혀보자는 생각에서 사진을 배우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카메라는 없었다. 그때 사진촬영법을 지도해준 이가 한상일 씨. 상명대 강사였던 한 씨는 그에게 상명대 주최 ‘마음으로 보는 세상, 마음으로 보는 서울'' 사진전 참여를 적극적으로 권했다.
한상일 씨도 그렇지만, 사진에 본격적으로 취미를 갖게 된 계기는 아버지와 둘만의 홍도여행이다. 집에 틀어 박혀있던 그를 이끌어 여행을 하면서 아버지는 홍도의 경치를 많이 담으라고 했고 아들이 촬영한 사진을 보며 잘 찍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시력장애인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쉽지 않다. 비법도 있을 리 없다. “초점을 맞추지 못할 때가 많아 한 장면을 여러 컷 찍어 그 중 상태가 좋은 것을 선택한다”는 그는 색상구별도 어려워 꽃의 종류와 색상을 말해주면 짐작으로 촬영을 한다. 만지고 듣고 느끼면서... 원경사진은 거의 없고 사물을 가까이 들여다본 사진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진은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 깊은 피사체의 내면을 담고 있다.
그의 꿈은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모아 전시회를 여는 것. 어쩌면 그 꿈은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의 장애를 함께 이겨낸 여자친구와 10월 결혼식을 올리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험들, 그리고 아기가 생기면 그가 보고 느끼는 세상이 더 깊고 풍부해 질 테니.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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