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문인예술의 중심인 시(詩), 서(書), 화세 가지가 모두 뛰어난 경우를 시서화 삼절(三絶)이라 불렀다. 근예(槿叡) 김유연(59) 작가는 삼절을 넘어 선(禪)과 차(茶)까지 아우른 오절(五絶)의 문화인이다. 평소에는 작품 활동에 매진하여 창작에 힘쓰고, 주말이면 남산한옥촌에서 시회에 참석해 한시교류에 열중한다. 또 한 달에 1번 ‘한시와 차향’이라는 강좌를 주재, 한시와 차를 알리기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이끌림이 곧 운명
그가 시서화를 하게 된 것은 강력한 ‘끌림’ 때문이었다. 그는 이 이끌림을 ‘운명’이라 했다.
“막연히 글을 쓰고 싶었어요. 20대 초부터 관심이 많아서 그 당시 대세던 한문 쓰기부터 시작했죠. 글씨를 쓰면 쓸수록 심취가 되어 그림까지 그리게 됐습니다.”
그의 끌림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며 여백에 한 편 두 편 쓰기 시작한 한시를 직접 쓰고 싶어졌다. 또 당시 불교경전을 접하며 한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는데, 그 끌림은 자연스럽게 그를 한시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때가 1997년이었다. 처음엔 칠언절구로 시작했다. 그는 “처음 시를 쓸 땐 한시라기보다 아는 한자를 배열하는 수준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던 시간”이라고 그때를 회상한다.
그는 오언절구(5자4행), 오언율시(5자8행), 칠언절구(7자4행), 칠언율시(7자8행)의 모든 형식을 섭렵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것은 율시다.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한자를 담고 있어 뜻을 잘 표현할 수가 있어 특히 율시가 끌립니다. 선인들의 명시들도 물론 좋지만 내 마음을 담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한시 창작을 멈출 수가 없네요.”
좋은 시를 쓰기 위해 그는 많은 시를 읽는다. 또 계절의 변화들을 놓치지 않고 자연의 순환을 관찰한다. 그가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그대로 그의 시로 탄생하게 된다.
손에 꼽히는 여성 작가
현재 사단법인 한국한시협회에 소속 중인 그는 한 달에 2~3번 남산한옥촌에서 열리는 한시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 시회에는 한시를 짓는 내놓으라하는 원로 대가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다. 여기에서 그는 특별하다. 1~2명 참석하는 여성작가 중 한명이면서 원로들 사이 가장 젊은 작가 중 한명이기 때문이다. 한시를 짓는 여성들의 부재는 그가 늘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다.
“한글로 시를 쓰는 여성분들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여성 한시작가들은 드물죠. 제가 한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여성작가를 만나보기 참 힘들었어요. 요즘은 그나마 몇 명이 근근이 그 줄을 이어가고 있어요. 많은 여류작가들이 등단해 함께 창작활동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젊은 여성 작가이지만 그의 활약상은 대단하다. 많은 수상 경력 중에서도 특히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서울주최 조선조 과학대전에서 을과급제 및 전국장원을 한 것이다. 여성으로서는 처음이었다.
그는 뛰어난 시서화 실력으로 2회의 시서화 개인전도 가졌고 다양한 전국·외국 초대전, 전시회를 통한 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있다.
생활 속 선(禪)의 실천
모태신상인 불교를 자연스럽게 따르고 있는 김 작가. 한때 그는 참선과 염불에 심취한 적이 있다. 마음을 모으기 위해 참선에 몰입했고 항상 ‘선’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있었다. 종교인이 아닌 그가 생활과 선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으니 바로 ‘생활 속 선의 실천’이다.
“생활 속에서 꾸준히 선이라는 화두를 갖자고 생각했습니다. 세속인으로서의 삶과 선의 실천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죠. 그 방법인 제게는 바로 작품 활동이었습니다. 붓을 잡고 있노라면 흐트러짐이 없어지고 미워하고 탐하는 마음도 사라지죠.”
생활 속에서 선의 완성을 연습하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번뇌와 욕심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게 됐다.
“생활 속에서 선을 연습하는 것은 꾸준히 나와 사회를 조율하게 도와주고 삶을 좋은 쪽으로 이끌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시서화 삼절에 선이라는 또 하나의 절(絶)이 더해지게 된 것이다.
오절의 완성, 차(茶) 생활
어느 날 법회 후 스님과 함께 한 ‘차’ 한 잔이 그를 차생활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아직도 그때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 신선한 느낌과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풋풋함이 제 뇌리에 크게 와 닿았습니다. 그때의 인연을 시작으로 차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지요. 이제는 차 생활 속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휴식을 취하고, 시상을 떠올리며... 제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는 매월 두 번째 토요일이면 남산 한옥촌 윤택영 재실에서 ‘한시와 차향’이라는 강좌를 주재한다. 강좌를 통해 다도의 기본을 가르치고 차와 관련된 한시를 소개하고 있다.
요즘 그는 시집 출간을 앞두고 원고 교정에 열의를 다하고 있다. 이제까지 지은 1200~1300수의 작품 중 300~400수 정도를 엄선, 곧 시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예술적 능력을 모두와 함께 하기를 희망한다.
“많은 시를 지으며 마음이 부자가 된 듯한 뿌듯함을 느낍니다. 이제 그 뿌듯함과 행복을 많은 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제 능력이 사회에 보탬이 된다면 그만한 보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