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허락하고 찐빵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한 계속 만들어야죠.”
지난 월요일 새벽 6시, 동구 천동에 위치한 ‘사랑의 찐빵’ 작업장에서 만난 강봉섭(80)씨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다란 솥에서 먹음직스런 찐빵을 꺼내 채반으로 옮기고 있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벌써 마지막으로 만든 찐빵이란다. 담는 도중 뜨끈할 때 맛을 보라며 찐빵 하나를 건넨다.
워낙 맛있게 보이던 터라 염치불구하고 냉큼 받아들었다. 한 입 베어 먹으니 부드러우면서 쫀득한 찐빵피와 입안에서 살살 녹는 달콤한 단팥소 맛에 “맛있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5분여가 지나니 찐빵을 배달할 자원봉사자가 도착했다. 서구노인회 회원들에게 전달할 빵이라며 차에 실어주곤 그제야 의자에 앉았다.
몇 시부터 찐빵을 만들었는지 먼저 물었다. 새벽 3시 부터 시작해 3시간여 동안 밀가루를 반죽하고 찐빵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그에게선 피곤한 기색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오히려 활짝 웃는 얼굴엔 에너지가 넘친다.
‘찐빵할아버지’라고 불리는 강봉섭씨는 10여 년 전부터 어렵고 소외된 이웃, 노인, 어린이, 환자들에게 찐빵을 나누어 주고 있다. 나누어 준 찐빵만도 70만개가 넘는다.
왜 찐빵 나누는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
그는 10여년 전 교회 봉사자들과 한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했다. 그 때 노환과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또 다른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과거 어렵던 시절 즐겨먹던 찐빵을 나누면 어떨까 생각했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좋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하지만 찐빵을 만드는 것이 문제였다. 찐빵이라곤 맛있게 먹기만 했지 한 번도 만들어 본적도 없는 그에겐 난감한 일이었다.
무작정 중앙시장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찐빵집을 찾아가 사정 이야기를 하며 만드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취지를 듣고 난 찐빵집 주인은 흔쾌히 제조법을 전수해 주었다.
2001년 한 병원 옥상을 빌려 찐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찐빵 비용은 그가 철거지역에서 문짝, 고철 등 재활용품을 수거하며 모은 돈과 교회에서 마련해 준 보조금으로 마련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만든 찐빵을 가지고 병원을 찾아갔다. ‘맛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환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우려와는 달리 여기저기서 ‘맛있다’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말을 듣고 용기를 얻은 그는 매일 찐빵을 만들어 병원 소년소녀가장 사회복지시설 장애인학교 경로당 등을 찾아다니며 나누어주었다. 그뿐 아니라 서울지역 노숙자,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던 태안, 방화로 불타버린 숭례문 복구현장을 찾아다니며 찐빵을 전달했다.
지금도 그는 하루에 적게는 200~300개, 많게는 800여개를 만든다. 많든 적든 모두 그의 손을 거친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친다. 도리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보람 있다”고 말한다.
그는 찐빵을 받아들며 활짝 웃는 아이들, 그 옛날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며 눈물짓는 할머니, 끼니가 없어 찐빵 하나로 점심을 때우는 노숙자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찐빵을 만든다.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 같아 ‘찐빵 나누는 일을 정말 잘 시작했구나’ 생각하고 있다.
그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찐빵을 받아드는 손과 얼굴이 생각날 때가 많다”며 “그 손에 항상 따끈따끈한 찐빵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진숙 리포터 kjs997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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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새벽 6시, 동구 천동에 위치한 ‘사랑의 찐빵’ 작업장에서 만난 강봉섭(80)씨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다란 솥에서 먹음직스런 찐빵을 꺼내 채반으로 옮기고 있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벌써 마지막으로 만든 찐빵이란다. 담는 도중 뜨끈할 때 맛을 보라며 찐빵 하나를 건넨다.
워낙 맛있게 보이던 터라 염치불구하고 냉큼 받아들었다. 한 입 베어 먹으니 부드러우면서 쫀득한 찐빵피와 입안에서 살살 녹는 달콤한 단팥소 맛에 “맛있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5분여가 지나니 찐빵을 배달할 자원봉사자가 도착했다. 서구노인회 회원들에게 전달할 빵이라며 차에 실어주곤 그제야 의자에 앉았다.
몇 시부터 찐빵을 만들었는지 먼저 물었다. 새벽 3시 부터 시작해 3시간여 동안 밀가루를 반죽하고 찐빵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그에게선 피곤한 기색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오히려 활짝 웃는 얼굴엔 에너지가 넘친다.
‘찐빵할아버지’라고 불리는 강봉섭씨는 10여 년 전부터 어렵고 소외된 이웃, 노인, 어린이, 환자들에게 찐빵을 나누어 주고 있다. 나누어 준 찐빵만도 70만개가 넘는다.
왜 찐빵 나누는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
그는 10여년 전 교회 봉사자들과 한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했다. 그 때 노환과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또 다른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과거 어렵던 시절 즐겨먹던 찐빵을 나누면 어떨까 생각했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좋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하지만 찐빵을 만드는 것이 문제였다. 찐빵이라곤 맛있게 먹기만 했지 한 번도 만들어 본적도 없는 그에겐 난감한 일이었다.
무작정 중앙시장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찐빵집을 찾아가 사정 이야기를 하며 만드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취지를 듣고 난 찐빵집 주인은 흔쾌히 제조법을 전수해 주었다.
2001년 한 병원 옥상을 빌려 찐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찐빵 비용은 그가 철거지역에서 문짝, 고철 등 재활용품을 수거하며 모은 돈과 교회에서 마련해 준 보조금으로 마련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만든 찐빵을 가지고 병원을 찾아갔다. ‘맛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환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우려와는 달리 여기저기서 ‘맛있다’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말을 듣고 용기를 얻은 그는 매일 찐빵을 만들어 병원 소년소녀가장 사회복지시설 장애인학교 경로당 등을 찾아다니며 나누어주었다. 그뿐 아니라 서울지역 노숙자,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던 태안, 방화로 불타버린 숭례문 복구현장을 찾아다니며 찐빵을 전달했다.
지금도 그는 하루에 적게는 200~300개, 많게는 800여개를 만든다. 많든 적든 모두 그의 손을 거친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친다. 도리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보람 있다”고 말한다.
그는 찐빵을 받아들며 활짝 웃는 아이들, 그 옛날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며 눈물짓는 할머니, 끼니가 없어 찐빵 하나로 점심을 때우는 노숙자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찐빵을 만든다.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 같아 ‘찐빵 나누는 일을 정말 잘 시작했구나’ 생각하고 있다.
그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찐빵을 받아드는 손과 얼굴이 생각날 때가 많다”며 “그 손에 항상 따끈따끈한 찐빵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진숙 리포터 kjs997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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