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여성회관 한글수업 강사 홍일태씨

지역내일 2011-04-18

“문맹 아니구요~ 비문해인입니다”


 만화가 강풀 원작의 영화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애틋한 러브스토리를 그려 내었던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며 대책 없이 눈물, 콧물을 훌쩍거렸던 리포터. 영화를 보는 내내 인상 깊은 장면이 많았지만 그중 이순재 할아버지가 글을 모르는 할머니를 위해 그림편지를 전해주었던 장면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할아버지의 배려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었다.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던 우리네 어르신 중에는 글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 채 평생을 살고 계신 분들이 적지 않다.
본인 이름 석자는 고사하고 종이와 펜이 주는 두려움에 매순간 어려운 고비를 통감하며 살아오신 분들. 이런 분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밝은 세상으로 안내하는 한글 수업 강사 홍일태(56ㆍ상현동)강사가 오늘 만나볼 주인공이다.


비문해인으로 겪는 어려움
지난 2006년 6월부터 용인여성회관 한글교실을 맡고 있는 홍일태씨. 그이가 운영하는 수업에는 40~80대까지의 수강생 40여명이 글을 배우며 조금씩 알을 깨고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도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통계에 의하면 국민 14.5%가 비문해인에 속한다고 한다.
의무교육이 실시되기 이전에는 전쟁, 가난뿐 아니라 여자라는 이유로, 가정해체와 질병 등 학교에 다니지 못하거나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연들이 많았다는 것.
중학교 윤리교사를 하면서 가졌던 경험을 살려 처음엔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로  이일을 시작했다는 홍씨.
“우리가 흔히 ‘문맹’이라고 말하는데  그 표현 속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있어요. 그래서 글을 읽고, 쓰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객관적 표현인 ‘비문해인’라는 명칭으로 불러야 합니다. 그런데 주변엔 생각보다 비문해인들이 많으세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지점이지요.”
글을 모르고 산다는 것이 어떤 모습일지 생각만 해도 답답할 것 같다는 리포터의 말에 수강생들의 인생은 소설 한 두 권으로 담아내기 어려울 만큼 눈물겨운 스토리가 대부분이란다.
“우리는 처음 가는 길도 무심코 가는데 이분들은 머리에 두지 않으면 모르니까 강박 관념같이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많으세요. 길을 잃지 않으려고요. 또 대부분 자기주장을 펼치지 못하고 상대방 말에 무조건 수긍하며 살아오셨대요. 혹시나 서류에 적어야 할 일이 있을까 아이들 학교에 갈 엄두는 한 번도 내지 못하시고요. 은행이나 공공기관에 혼자서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시죠.”


글을 알아가며 독립적인 생활과 행복감 얻어
이야기를 듣다보니 비문해인으로 겪어야 할 고통(?)이 조금은 아프게 전달된다.
평생 옆에서 도움이 되던 남편과 사별하거나 자녀가 커서 출가를 하면 당장 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 자녀에게 무시당할까 글을 가르쳐 달라는 말도 못하고 용기를 내서 한글 교실을 방문했다는 수강생까지. 들어보면 삶의 무게에 얹힌 무학(?)의 설움이 구구절절 들어와 박힌다.글을 읽고 쓰고 이해하는 문해력은 비단 한글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초적인 한자에 영어를 포함, 초등학교 6학년까지의 과정을 이수해야 비로소 비문해인의 딱지를 벗어날 수 있단다.
교과부에 지정된 초급과 중급과정을 거쳐 고급과정이 끝나는 시점은 3년, 교육 시수를 이수해야 초등 졸업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분들에게 학력인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몰랐던 글을 알아가고 못 읽었던 간판을 읽게 되고, 은행에 가서 혼자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을만한 광명의 기쁨이다.
“수강생 중에는 16살에 시집와 19살에 남편이 행방불명되고 행상으로 딸 하나를 키우며 살았던 분이 계세요. 글을 모르니 계산도 힘들어 10개가 넘어가면 그냥 손님이 계산해 주는 대로 받았대요. 그런 분이 지금은 얼마나 행복하신지 늘 웃고 사신답니다.”


인생을 함께 나누는 행복한 한글교실
홍일태 강사는 우리나라의 비문해인 교육에 좀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문해라는 것이 결코 이분들 잘못이 아니잖아요. 힘들지만 꿋꿋하게 땀 흘려 일하고 자녀들 훌륭하게 길러내신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 살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 부끄러워 마시고 당당하게 드러내고 배우시라 말씀드리죠. 처음엔 자존감이 낮았던 수강생들도 글을 배우며 조금씩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시죠. 그리고 서로 인생이야기, 격려가 되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분들의 삶에서 배우는 것이 참 많아요.”
그렇게 6년을 수강생들과 공거동락 하면서 가정 내 어려운 일도 상의하고 속상한 일들이 있으면 의논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공부만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서로간의 신뢰죠. 그렇지 않으면 오래 유지하기 힘들어요.” 홍일태 강사가 수강생들과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믿음과 정을 나누는 이유다. 수강생들이 가져온 개떡하나, 사탕 한 봉지라도 나눠먹는 정이 새록새록 쌓인 교실은 늘 행복하다.
“제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 정말 감사하죠. 집에 가면 아이들도 저를 이만큼 반겨주지 않거든요. 웃음. 할 수만 있다면 이일을 계속 하면서 보람과 기쁨을 얻고 싶습니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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