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 부부왈츠 동호회

지역내일 2011-04-11 (수정 2011-04-11 오전 11:44:28)
손을 잡은 그대여, 함께 춤추지 않으시렵니까?




화려한 조명과 빠른 템포, 매혹적인 음악이 깔린 무대바닥을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시선을 잡아끄는 댄서들…
지난 3월의 마지막 금요일, 시니어 복합주거단지 헤리티지에서 펼쳐진 ‘봄맞이 댄스페스티벌’은 여느 공연장의 열기를 능가하며 이목을 끌고 있었다.
헤리티지 문화 홀에서 펼쳐진 공연은 500여명의 시니어 입주회원들과 가족들, 그리고 헤리티지 직원들이 참석한 자체 행사로 다양한 문화를 즐기기 위해 기획된 페스티벌이었다.
그래서일까? 턱시도와 드레스로 한껏 멋을 낸 시니어 입주회원들의 모습은 마치 외국영화에서나 봄직한 모습을 연출하며 축제 분위기를 더욱 빛내주었다.
국내 유명한 댄서들이 초대돼 오프닝 무대를 열었고 이어진 비보이의 공연, 그리고 시니어 입주회원들의 댄스공연이 이어지며 무대는 열기를 더해갔다.
특히 이날 축제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시니어 부부왈츠 팀은 관람객들의 열띤 박수세례를 받으며 멋진 피날레를 장식해주었다.

춤이 만들어주는 부부 하모니
프로댄서들의 범접할 수 없는 현란한 춤의 마력에 빠져 넋이 혼미해지던 순간이 지나고, 우아하게 차려입은 드레스 자락이 발에 밟히고 반짝이는 구두 발에 스텝이 엉키는 실수(?)를 연발해도 관람객의 뜨거운 환호성을 받았던 팀. 그렇게 부부 왈츠 팀은 무대에 오른 이유만으로 뜨거운 찬사를 받고 있었다. 
아직 초보 딱지도 떼지 못한 어설픈 춤이지만 오랜 세월 옆자리를 지켜준 짝꿍들과 함께 이날의 주인공이 되었던 부부 왈츠동호회원들.
연습보다 실력발휘를 못했다며 내내 아쉬움을 보이던 회원들은 작년 10월 헤리티지 댄스 커뮤니티에서 첫 강습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2번, 화요일과 목요일 밤마다 6명의 부부가 모여 춤을 배워왔던 것.
“해외에 근무할 때 댄스문화가 활발한 것 보고 부러웠습니다. VIP를 초청한 자리에서도 춤은 분위기를 띄워주는 윤활제 역할을 하고요.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도 유독 한국 사람들만 꿔다놓은 보리 짝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거예요. 이제는 우리도 세계시민으로 살아야 하는데 말이에요.”
커플왈츠 동호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는 이형택(65)씨의 동기다.
그런가 하면 막춤은 자신이 있는데 정식으로 모양새를 갖춘 춤을 추려니 다리가 후들거려 망설였다는 나영환(62)씨. 남편과 함께 춤을 추는 게 소원이라는 아내 장안나(64)씨의 권유로 어렵게 커플댄스를 시작한 경우다.
“막상 시작하고 나니 좋습디다. 집사람이랑 손도 잡고 춤도 춰야하니 관계가 좋아지고 어쩌다 싸우기라도 하면 그날은 춤이 안돼요. 눈을 마주보고 춤을 추는데 감정이 남아 있으니 되겠어요? 그래서 춤 핑계로 가급적 안 싸워요. 이놈의 춤이 다툼 억제제라니까요. 하하하”

우리는 나이 60에 춤을 발견했다
장안나씨 역시 왈츠의 세계로 남편을 끌어들이길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다.
“왈츠를 추는 커플이 그렇게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남편이랑 같이 하고 싶어 막무가내로 졸랐어요. 그런데 지금은 저보다 더 좋아 한다니까요.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취미활동이 많지 않은데 춤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도 춤을 추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60년 세월을 뛰어 넘어 춤을 추게 만든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나이를 먹을수록 남은 바람은 부부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거예요. 우리네는 안하던 거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잖아요. 그래도 용기를 내봤죠. 그리고 이왕 하는 거 잘했으면 좋겠는데 늘그막에 시작하니 몸도 굳어지고 허리도 뻣뻣하고 영 잘 안돼서 고민이죠.” 황한성(68)씨의 소회에 6명 부부회원들은 다들 공감하는 눈치다.
동호회를 만들어 왈츠를 추기 시작한지 6개월, 오늘의 봄맞이 댄스페스티벌을 위해 한 달 간은 맹연습을 해왔단다.
“헤리티지 회원들이 모두 가족 같아서 박수를 보내줬지만 실수를 너무 많이 해서 조금은 기운이 빠졌어요.” 프로는 아니지만 멋지게 실력 발휘를 하고 싶었다는 김영숙(63)씨. 오늘 의 공연이 내심 아쉽기만 하다.

머리 허연 노부부의 쉘 위 댄스
하지만 부부 회원들은 가을에 있을 또 한 번의 댄스 페스티벌을 재기의 기회로 삼을 작정이다.
“무식이 용감하다고 오늘 못 추는 춤을 애교로 봐준 가족 같은 입주회원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가을에는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줘야죠.” (황한성)
“아직은 발 밟고 스텝 틀리면 니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서로 눈도 흘기고 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재미있어요. 다들 도토리 키 재기만한 실력들이다보니 이해해가며 즐기는 거죠.” (안희석ㆍ60)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댄스페스티벌, 가족들의 참여도 많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무대에 나오니 반가워하고요. 특히나 오랜 친구들이 보고는 깜짝 놀라지요. 우리 딸은 엄마 ,아빠가 같이 춤추는 거 보고 감동했다고 하더라고요.” (이형택)
“머리가 허연 부부가 손을 잡고 여유롭게 춤추는 모습은 저의 로망이었어요. 그 희망사항이 제대로 발휘되도록 애를 써 볼랍니다.”(안희석)
아직 채 열기가 가시지 않은 듯, 봄날 춤에 얽힌 스토리는 그렇게 오래 오래 이어지고 있었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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