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서천군에게 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나서환(51) 작가. 어릴 적 그가 본 지승(紙繩)공예는 하나의 작품인 동시에 생활용품들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집에서 필요한 것들을 직접 만들어 쓰셨고, 아버지 역시 할아버지의 기술을 이어받아 지승공예를 생활 속에서 이어갔다. 자연스럽게 지승공예를 보고 자란 나 작가 역시 시나브로 우리 전통의 뛰어남을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그 전통을 이어받았다. 어릴 때 그의 추억은 지금 현실에도 녹아있다. 그의 전시회와 카페(http://cafe.daum.net/seohwanna) 이름인 ‘재빼기’는 서천에서의 아름다운 기억인 동시에 그가 도달하고 싶은 예술의 가장 높고 깊은 정점을 내표한다. 재빼기는 ‘잿나루’ ‘재 너머의 가장 꼭대기’를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다.
지승공예, 생활과 작품 사이
지승공예의 시작은 한지를 좁고 길게 자르는 것부터 시작한다. 자른 종이를 손으로 일일이 꼬아 노끈처럼 만든 후 그것을 다시 엮어서 여러 가지 기물을 만드는데, 짜는 기법에 따라 여러 가지 무늬와 형태가 만들어진다.
옛날 선비가 책 가장자리를 가지런히 하면서 잘라낸 쪼가리나 붓글씨 연습 후 버린 한지를 꼬아서 그릇 등을 만드는 데에서 비롯됐다. 콩기름이나 옻칠을 하면 견고하기도 해 예전에는 이 지승공예품들이 실제로 생활에서 사용하는 생활용품들이었다. 대야, 씨앗통, 요로(새색시가 가마 속에서 소변을 볼 때 사용), 다기주전자, 찻잔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공예품들을 봐 온 나 작가가 지승공예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결혼 후 아이들이 크면서부터다.
“제가 어릴 때는 전통공예품들을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하며 사용하기도 했었는데 그 전통이 우리 아이들 세대에 사라져가는 것이 참 아쉬웠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전통을 가르쳐주고도 싶고, 또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지승공예에 몸담게 됐죠.”
한국인만 할 수 있는 공예, 그래서 더 소중해
지승공예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그의 뛰어난 실력은 많은 곳에서 인정받아 다양한 수상에까지 이어졌다. 1994년 전승공예 대전 특별상을 시작으로 다수의 전승공예 대전에서 수상했고 96년에는 전주 한지공예대전에 입선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지며 그에게 지승공예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직접 그를 찾아오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지승공예를 배웠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이가 있을 터. 나 작가는 주저 없이 모국을 찾아 지승공예를 배운 미국교포 학생을 떠올렸다.
“여학생이 찾아왔는데 정말 열심히 배웠어요. 하루에 6시간을 꼬박 앉아 작품을 만드는데 제가 두 손을 다 들었다니까요. 그렇게 열심히 배우더니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열심히 공예활동을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직접 한지를 뜬다고 닥나무 재배하는 터까지 만들어놨다고 하더라고요.”
여러 사람을 접하며 그가 알게 된 것은 지승공예는 우리 민족만 할 수 있는 ‘한국인의 공예’라는 것이다.
“외국 사람들, 한지를 꼬기는커녕 양반다리로 앉아있지도 못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초등학생들도 조금만 익히면 곧잘 하죠. 희한하죠? 그래서 저는 이 지승공예는 우리나라 사람들만 살 수 있는 전통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더 잘 지키고 보존해야 하고요.”
미국에서 태어나고 미국에서 자란 그 교포학생 역시 한국인의 피는 못 속이더라고.
다양한 활동으로 전통 알리고파
요즘 그는 일주일에 한번 원주를 찾는다. 원주한지테마파크에서 강의 때문이다. 오고가고 강의하면 하루가 꼬박 걸리는 일이지만 한 번도 그 하루를 허투루 보낸 적이 없다. 지승공예에 관심을 가진 수강생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일본에서의 강의 요청도 있었다. 일본 동북부 대형지진으로 강의초청이 연기되기도 했지만 일본에서의 초빙은 또 다른 감회가 있었다고. 또, 오는 6월 이탈리아 로마 전시회 개최로 현재 로마 관계자들과 협의 중에 있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특별한 일도 경험했다. 얼마 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에 직접 출연하게 된 것이다. 영화 관계자들이 전통방식을 이어가는 지승공예가를 찾아 1여년을 수소문했다고 한다.
“영화 출연이요? 딱 한 가지 이유에서 출연했습니다. 지승공예를 알리고 싶어서죠. 개인적으로 지승공예는 한지공예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승공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우리 전통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식 같은 작품들, 박물관에 모았으면
그의 손은 거칠다. 마디마디마다 굳은살이 박였고 손가락 끝 또한 상처투성이다. 하루 10시간 이상을 작품 활동에 보내는 날도 허다하다. 이렇게 만든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그에게는 자식 같다. 그래서 그는 아무리 비싼 값을 쳐 준다 해도 작품을 쉽게 팔지 않는다. 수차례 전시회를 거쳤지만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이렇게 하나둘 거둔 작품이 150여점. 이 작품들을 언젠가 한 자리에 모아 전시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나라에서 우리 전통의 우수함과 중요성을 알고 국가차원에서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게 제 바람입니다. 누군가 개인적으로 하지 않으면 언젠가 사라져버리고 그 맥이 끊겨버리겠죠. 미약하나마 제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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