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만난 사람

“다 버리니까 진짜 사랑이 오더라”

기타 치는 치과의사 서성원

지역내일 2011-04-03

 고3 여름방학. 서울토박이로 5남매 중 막내였던 서성원은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자신이 못마땅해 무전여행을 감행한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무작정 부산으로 달렸다. 돈 한 푼 없이 집을 나선 그는 거의 굶다시피 노숙하며 페달을 밟았다. 무장공비로 몰려 경찰서 신세도 졌고 도로 위에서 탈진해 쓰러지기도 했다. 10일간의 지독한 자전거여행은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산감’을 얻었다. 대신 폐결핵에 걸려 몇 달간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성공가도를 달리다 브레이크를 밟다
“19세 때 60살까지 인생 플랜을 짰어요. 몇 살에 학위 따고 결혼은 언제할지, 자녀 계획과 재산 정도까지 1년 단위로 꼼꼼하게.” 그리고 줄곧 그 인생계획서 대로 살았다. 돈 많이 버는 의사가 되고 싶어 독하게 공부해 치대에 진학했다. 밤잠 줄여가며 진료와 학업을 병행해 박사학위도 땄다. 실력 있고 친절한 의사란 소문이 나면서 환자들이 줄을 이었고 금세 재력가가 되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죠. 한 15년을 그렇게 살았어요.”
  40대 초.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사춘기였던 중1 아들이 반기를 들었다. “느닷없이 돈, 공부, 명예... 아빠와 관련된 모든 것이 다 싫다며 자기 인생에 절대 관여하지 말라며 폭탄선언을 하더군요.” 그리고 이어지는 아들의 일탈행위.
 나름 성공가도만 달였던 그에게 쓰라린 좌절의 시간이었다. 자식에게 부정당하는 아버지라는 자괴감이 찬찬히 과거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교만하고 건방진 인간 서성원의 실체가 보이더군요. 그동안 나 때문에 속앓이 하던 아내와 자식들의 상처가 ‘빵’ 터진 거죠.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정신이 번쩍 났어요.” 인생궤도를 대폭 수정했다. “돈이 나를 변질 시켰더군요. 당장 80평 아파트에서 네 식구가 살만한 최소한의 공간으로 이사했고 재산 상당부분도 손해를 감수하고 정리했죠. 돈이나 명예보다 가족이 훨씬 소중하다는 걸 아들한테 보여주고 싶었어요.” 40대 잘나가던 의사란 직업도 내던지고 미국으로 건너가 도 닦듯 살았다. “그때까지도 아들은 나한테 입을 열지 않았어요. 상처가 그만큼 깊었던 거죠.” 미국의 좁은 원룸에서 네 식구가 부대끼며 살면서 서서히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음악감독으로 성장한 25살 아들은 이제 아버지에게 늘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단다.    


 ‘아픈 이’를 음악으로 치료하다
 음악과 봉사. 서 원장 인생의 중심축이다. “까까머리 중학교 때 대학생이던 큰형님이 턴테이블을 선물해 줬어요. 클래식음악을 끼고 살며 마냥 행복했지요.” 독학으로 클래식 기타를 마스터했고 하모니카와 피아노 등 악기를 하나씩 배워나갔다. 음악에 대한 갈망은 치대 진학 후에도 이어졌다. 그룹사운드를 결성해 다양한 무대를 두루 섭렵했다. “대학가요제 출전 제의도 받았죠. 한때 ‘음악인’으로 진로를 바꿀 지도 고민했지만 결국 본업인 치과의사에 충실한 ‘음악 애호가’로 남았죠(웃음).”
 하지만 음악을 향한 서 원장의 짝사랑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포이동 근처에 음악실을 마련해 틈나는 대로 대학시절 친구들과 연습하며 구민회관이나 대학로 소극장 무대든지 기회 있을 때마다 연주한다. 열혈 팬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오케스트라단도 여러 군데 있다.
 방이역 부근 그가 운영하는 <닥터서 치과>에는 진료실 한 켠에  피아노와 기타가 있는 세평 남짓한 음악실이 있다 “원장님께 한곡 부탁했더니 흔쾌히 기타반주를 해주셨어요. 치과에서 여럿이 어울려서 7080 노래를 불렀는데 참 근사했어요.” 치과를 찾은 윤영애 씨가 이색경험담을 들려준다.  
 
 봉사 통해 사랑에너지를 얻다
 고교시절 시작한 자원봉사가 벌써 삼십년 째다. 치과의사와 기공사, 치위생사로 구성된 <녹야회>를 통해 가평 꽃동네 의료봉사도 꾸준히 한다. 올 6월에는 린나이팝스오케스트라단을 초청해 음악회를 열 계획이다. “음악은 말이 필요 없고 그냥 느끼면 되요. 짧은 순간이지만 독거노인과 장애인들이 음악과 교감하며 행복하길 바라요.” 경기도 송추의 광명 보육원은 가족과 함께 서 원장이 오랜 세월 인연을 맺은 곳이다. “젊은 시절 나에게 봉사는 ‘just do it’이었죠. 그러다 아들 때문에 좌절하면서 이젠 사랑의 에너지를 얻는 원천이 되었죠.”
 서 원장은 목요일에는 진료를 하지 않는다. 그가 좋아하는 봉사와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인터뷰 내내 그는 ‘잘나갔던 과거 시절의 성공담’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가족에게 인정받으며 자신이 가진 의학지식과 음악적 재능을 여럿이 함께 나눌 수 있고 현재가 너무 소중하다고 말한다. “돈은 ‘무서운 포장지’예요. 그걸 깨닫고 나니 집착하지 않게 되요. 결과보다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고 인생 최고의 가치는 ‘사랑’입니다.” 서성원 원장은 참 행복해 보였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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