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현악기 만드는 일, 30여 년 동안 한 번도 후회한 적도 또 손에서 놓아 본적도 없어요.”
대전·충남권에서 유일하게 전통 현악기의 맥을 잇고 있는 장인이자 대전시 무형문화제 18호로 지정된 현악기장 표태선(51)씨.
그는 가야금은 물론 거문고, 아쟁, 해금, 양금, 철가야금 등 모든 현악기를 만든다. 또 지금은 연주되지 않는 와공후, 소공후 등도 재현해 놓았다.
남들은 쉽게 가려고 하지 않는 길, 그는 어떻게 걸어가게 됐을까.
그가 전통 현악기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된 건 19살 즈음이다. 친척 형을 따라 동경하던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그에겐 숙식과 일자리가 필요했다. 때 마침 먼 친척으로부터 악기 공방에서 일손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끌리듯 찾아갔다. 그렇게 전통 현악기 만드는 일과 인연을 맺었다.
숙식제공과 한 달 1만5000원(현재 3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으며 일을 시작했다. 말이 숙식제공이지 밥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고, 방은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겨울이면 슬레트 얹은 천정에 서리가 끼어 있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또 공방일은 해 뜨면 시작해 컴컴한 밤이 다 되서야 일손을 놓을 수 있을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천직을 만난 느낌이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전통 현악기 만드는 일이 좋았다. 가끔씩 스승님이 던지는 ‘손재주 있다’는 칭찬은 악기 만드는 일에 더욱 몰두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힘들고 때론 보람 있었던 15년여의 수련을 마치고 대전으로 내려와 공방을 열었다.
전국의 연주자들 즐겨 찾아
보문산 자락에 위치한 그의 공방을 찾았다. 그는 양금채로 양금(우리나라 전통 현악기 중의 하나)의 소리를 고르고 있었다. 소리를 고르는 그의 손을 바라보니 곳곳이 상처다. 칼에 베여 꿰매고 줄에 패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의 녹록치 않았던 30여년 세월이 손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모든 고통을 감내하며 쌓은 실력은 누구나 알아보는 법이다. 그의 작품은 대전·충남 뿐 아니라 전국의 연주가들이 즐겨 찾는다.
김종기류 가야금 산조를 연주한 김진애 가야금 연주가는 “표태선 악기장이 만든 가야금은 소리가 한결같고 특히 아랫소리(낮은 음)가 좋아 찾게 된다”면서 “디자인도 은은함과 화려함이 공존해 싫증나지 않고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애착이 가는 악기”라고 말했다.
악기가 한결같은 소리를 내는 이유는 나무 구입, 관리, 제작까지 중요한 과정은 모두 그의 손을 거치기 때문이다.
악기가 틀어짐이 없고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나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문에 그는 판으로 사용할 나무를 관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공방 앞마당에는 나무판자가 가득하다. 대개 오동나무와 밤나무들이다. 방치한 듯 버려둔 듯 하지만 눈·비를 맞춰가며 나무의 섬유질을 삭히는 중이다. 3년여 동안 삭힌 후, 습이 없는 날 실내에 들여 놓고 오랜 시간 숙성 과정을 거쳐 비로소 악기판으로 사용한다. 또한 제작과정에서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는 꼼꼼한 성격도 좋은 악기를 만드는 데 큰 몫을 차지한다.
그는 “좋은 나무를 고르는 것 못지않게 최고의 소리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수십 년을 사용해도 모양과 소리가 한결같다는 칭찬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힘들고 고된 길이기에 누구도 쉽게 가려하지 않는 길이지만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해 묵묵히 외길을 걸어가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문의 : 042)581-6364
김진숙 리포터 kjs9976@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대전·충남권에서 유일하게 전통 현악기의 맥을 잇고 있는 장인이자 대전시 무형문화제 18호로 지정된 현악기장 표태선(51)씨.
그는 가야금은 물론 거문고, 아쟁, 해금, 양금, 철가야금 등 모든 현악기를 만든다. 또 지금은 연주되지 않는 와공후, 소공후 등도 재현해 놓았다.
남들은 쉽게 가려고 하지 않는 길, 그는 어떻게 걸어가게 됐을까.
그가 전통 현악기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된 건 19살 즈음이다. 친척 형을 따라 동경하던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그에겐 숙식과 일자리가 필요했다. 때 마침 먼 친척으로부터 악기 공방에서 일손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끌리듯 찾아갔다. 그렇게 전통 현악기 만드는 일과 인연을 맺었다.
숙식제공과 한 달 1만5000원(현재 3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으며 일을 시작했다. 말이 숙식제공이지 밥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고, 방은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겨울이면 슬레트 얹은 천정에 서리가 끼어 있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또 공방일은 해 뜨면 시작해 컴컴한 밤이 다 되서야 일손을 놓을 수 있을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천직을 만난 느낌이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전통 현악기 만드는 일이 좋았다. 가끔씩 스승님이 던지는 ‘손재주 있다’는 칭찬은 악기 만드는 일에 더욱 몰두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힘들고 때론 보람 있었던 15년여의 수련을 마치고 대전으로 내려와 공방을 열었다.
전국의 연주자들 즐겨 찾아
보문산 자락에 위치한 그의 공방을 찾았다. 그는 양금채로 양금(우리나라 전통 현악기 중의 하나)의 소리를 고르고 있었다. 소리를 고르는 그의 손을 바라보니 곳곳이 상처다. 칼에 베여 꿰매고 줄에 패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의 녹록치 않았던 30여년 세월이 손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모든 고통을 감내하며 쌓은 실력은 누구나 알아보는 법이다. 그의 작품은 대전·충남 뿐 아니라 전국의 연주가들이 즐겨 찾는다.
김종기류 가야금 산조를 연주한 김진애 가야금 연주가는 “표태선 악기장이 만든 가야금은 소리가 한결같고 특히 아랫소리(낮은 음)가 좋아 찾게 된다”면서 “디자인도 은은함과 화려함이 공존해 싫증나지 않고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애착이 가는 악기”라고 말했다.
악기가 한결같은 소리를 내는 이유는 나무 구입, 관리, 제작까지 중요한 과정은 모두 그의 손을 거치기 때문이다.
악기가 틀어짐이 없고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나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문에 그는 판으로 사용할 나무를 관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공방 앞마당에는 나무판자가 가득하다. 대개 오동나무와 밤나무들이다. 방치한 듯 버려둔 듯 하지만 눈·비를 맞춰가며 나무의 섬유질을 삭히는 중이다. 3년여 동안 삭힌 후, 습이 없는 날 실내에 들여 놓고 오랜 시간 숙성 과정을 거쳐 비로소 악기판으로 사용한다. 또한 제작과정에서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는 꼼꼼한 성격도 좋은 악기를 만드는 데 큰 몫을 차지한다.
그는 “좋은 나무를 고르는 것 못지않게 최고의 소리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수십 년을 사용해도 모양과 소리가 한결같다는 칭찬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힘들고 고된 길이기에 누구도 쉽게 가려하지 않는 길이지만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해 묵묵히 외길을 걸어가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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