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자연 생명을 그리는 따뜻한 그림쟁이
꾸밈없고 정 많아 보이는 이태수 별명은 곰이다. 90년대 초반 《달팽이 과학동화》를 시작으로 《심심해서 그랬어》,《우리끼리 가자》,《세밀화로 그린 어린이 동물도감》,《개구리가 알을 낳았어》 들에 수많은 자연 그림을 그렸다. 최근《숲 속 그늘자리》에 이르기까지 이십여 년 동안 우리나라에 사는 자연 생명을 우직하게 그렸다. ‘자연은 편애할 수 없다’ 는 그의 중심 생각이 우리나라 대표 생태세밀화가로 살아가게 한다.
이태수 그림은 따뜻하다
생태세밀화를 그리는 사람이 여럿 있지만 이태수 그림은 따뜻한데 왜 그런가, 를 물었다.
“사람이 좀 어리숙해서 그렇기도 하고. (웃음) 문제는 마음인 것 같아요. 꽃잎이 두툼한지 얇은지, 솜털이 있는지 반들반들한지. 여러 가지 느낌을 마음으로 전달하는 거죠.”
생태세밀화는 자연을 자세하게 묘사한 그림이다. 자세히 그린 그림이라고 털의 개수를 세어 그리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연물을 바라보는 화가의 느낌이다. 사물을 바라본 화가의 마음이 화폭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그는 세밀화를 배우는 후배들에게 첫날 과제로 ‘거울을 보면서 얼굴의 털 방향이 어떻게 바뀌는지 관찰하기’를 내 준다. 털은 근육 방향과 관계있는데 이것을 잘 잡아내지 못하면 이상한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생쥐가 왜 불쌍해 보일까요? 자기가 갖고 있는 털 방향을 잃어버린 거예요. 빗질한 것처럼 털 방향을 잃어버리면 생기가 없죠.”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그린 올무에 걸렸다 풀려난 너구리 그림을 보았다. 너구리는 슬픈 눈빛을 하고 있었다. 어떤 길을 걸어왔기에 동물의 마음에 가 닿아 그릴 수 있을까.
민통선 작은 마을에서 자란 아이가 그림쟁이가 되다
이태수 고향은 경기도 연천군 백학이다. 일산에서 차로 한 시간 쯤 달려 임진강 비룡대교를 건너면 예전 민통선 안에 있던 마을이다.
초등학교 때는 연필 글씨와 붓글씨로 군 대회 상을 두 차례 받았다.
“글자 쓰는 것만 했어요. 혼자 책 사다가 한자를 베끼는 거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거의 붓글씨에 빠져 살았죠.”
초등학교 5학년 때 혼자 서울로 유학을 왔고, 중학교 2학년 때 가족 모두 서울로 이사했다.
“그림을 보고 싶어 주말마다 청계천 헌책방, 인사동 화랑을 찾아다녔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교내 미술대회가 있었는데 대상을 주더라고요. 배워본 적도 없는데. 그림은 그때 시작하게 됐죠.”
집안은 넉넉지 않았다. 신림동 난곡 옆 동네에서 구멍가게를 하며 겨우 살았다.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을 꺼냈을 때, 아버지는 “돈 버는 일을 해야지, 무슨 그림쟁이가 되려고 하느냐”고 반대했다.
“학교에서 어버이날 편지 쓰라는데, 대학은 다른 데를 가더라도 그림은 그리겠다, 고 협박처럼 썼어요.”
일 년 동안 반대했던 아버지가 허락했다. 합격하기 위해 죽어라고 그림을 그렸다. 그래도 석고소묘는 혼자 해볼 도리가 없었다. 물어물어 간 화실에서는 “여기는 비싸니 저쪽 싼 곳으로 가라”는 말에 찾아간 곳이 ‘논꼴’ 화실이었다. 약속 시간에 일 분만 늦어도 전화를 거는 원칙주의자 스승에게 ‘그림쟁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다. 80년에 홍익대 서양화과를 다니며 미술학원 아르바이트를 비롯해 ‘선생 노릇’을 꽤 했다.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서 선배들도 찾아갔지만 인연이 아니었는지 기회가 닿지 않았다.
뒤를 모르면 앞을 못 그린다
1991년에 첫아이가 태어났다.
“첫 아이를 낳고 아버지가 뭘 하는 사람이어야 부끄럽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다시 어린이 책 그림을 해보자 마음먹었죠.”
처음부터 생태세밀화를 그리려는 것은 아니었다. 시작해 보니 자연책이 아예 없더란다. 우리나라 무 배추를 제대로 그린 것이 없으니 그것부터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단다.
스승을 닮은 것일까. 그도 철저한 답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다.
“《지렁이가 흙 똥을 누었어요》를 그릴 때, 밑그림을 그리고 석 장쯤 색칠한 상태에서 작업실을 백학으로 옮겼어요. 거기서 내가 얼마나 작은 부분만 보는가를 깨달았어요.”
작업실 마당 텃밭에서 지켜보니까 지렁이 똥이 그렇게 다양할 수가 없더란다. 비가 오면 설사처럼, 마른 날에는 뭉친 똥을 누는 것을 보고 거의 다시 그렸다.
“늘 앞을 그리는데 뒤가 궁금해요. 사초과 풀은 줄기가 삼각형이에요. 한쪽만 보면 정사각형으로 그릴 수 있잖아요. 뒤를 알아야 제대로 그릴 수 있어요.”
생명, 먼데서 찾지 마라
이태수에게 생태세밀화는 그냥 ‘잘 보고 그린 그림’이 아니다. 오랜 관찰, 생명에 대한 경외와 애정이 없다면 하기 힘든 작업이다. 도감이나 자연그림책 들도 모두 그렇게 태어났다.
“어느 날 작업실 뒷마당 무궁화나무 이파리에 무당벌레애벌레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예요. 한 달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들러붙어서 봤죠. 나중에 보니까 등살이 타서 다 벗겨져 있더라고요.”
1997년부터 나온 ‘도토리 계절그림책’ 네 권만 해도 제천, 청송, 삼척, 북한산과 안양 청계산 일대를 오랜 기간 취재해 그렸다. 자연과 사람, 동물이 어우러진 풍경이 따뜻하게 펼쳐진다.
2000년대에 그린 《가로수 밑에 꽃다지가 피었어요》, 《늦어도 괜찮아 막내 황조롱이야》에 이르면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을 보듬는 마음이 느껴진다. 자연의 감수성을 아이들에게 전해 주기 위해 생태세밀화를 그리지만, 억지로 아이들을 자연 캠프에 보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한다.
“갯벌 생태체험 한다고 무더기로 가서 갯벌을 짓밟아 놓아요. 아파트 주변에도 냉이, 꽃다지, 진달래가 피어 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얼마든지 많은 생명을 볼 수 있어요.” 그림 교육도 마찬가지로 가까운 곳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찾아보라고 조언한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기술을 지도 받은 아이들은 자라서 그 틀을 깨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태수는 소수가 누리는 미술관 그림 대신 모든 아이들과 함께 보는 그림책을 선택했다. 꽃다지의 여린 솜털 하나, 바위 위에 앉은 다람쥐의 동그랗고 반짝이는 눈동자를 그려내는 생태세밀화가의 길로 말이다. 이 땅의 아이들은 고집스런 ‘그림쟁이’의 손끝에서 피어난 작은 들꽃이랑 얘기 나누며 자연을 품고 자라날 테다.
‘잠시 숨을 돌리고 쉬는데 도롱뇽 한 마리가 돌 틈으로 꼬물꼬물 기어간다. 꼬리치레도롱뇽이다. 가슴이 뭉클하고 벅차올랐다. (중략) 작은 생명이 살아야 우리도 살 수 있다. 얼마나 더 편해져야 사람 욕심이 멈출 수 있을까.’ - 2005년 작성한 작업일지 가운데서.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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