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인사동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에서 목공예가 진홍범의 첫 전시회가 열렸다. 테이블과 의자, 월넛 장의자, 서랍장 등 선보인 작품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지만 “나무를 진정 이해하고 사랑하는” 진홍범 作의 진정성을 알아본 몇몇의 마니아를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 후 1년 남짓, 여전히 파주시 교하읍 동패리에 위치한 빨간지붕 목공소에서 목가구 작업에 몰두해 온 그는 4월 6일~12일까지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2번째 목가구전시회를 갖는다. 타이틀은 ‘빛을 담은 나무’.
여전히 힘들지만, 묵묵히 천천히 나의 길을 가고 싶다
진홍범 작가(41세)가 목가구에 입문한 지는 이제 5년 남짓. 대학에서 건축도시공학을 전공한 그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일산 분당 등 1기 신도시를 비롯해 여타 신도시 개발현장의 도시기획관련 일을 해왔다. 나무를 뽑고 밀어내야만 하는 자연 파괴(?) 현장의 중심에 서 있었던 그가 ‘나무’를 다듬고 매만지는 직업을 갖게 된 까닭이 궁금했다. “상반되는 일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도시개발이나 목가구 디자인이나 美學을 추구한다는 것에서는 마찬가지”라는 작가. 개발현장 야산 등지에서 뿌리가 뽑힌 나무둥지나 가지에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재미있는 형상을 발견하는 미적 감각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단다. 그렇게 길에서 주운 나뭇가지들은 그에게로 와서 사슴이 되고 새가 되곤 했다.
손재주 좋고 미적 감각이 있었지만, 잘 나가던 직장을 박차고 나와 하고 싶은 小木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터. 미술이나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해오던 일과 무관한 일에 도전하기엔 서른 후반의 나이도 걸렸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파주 교하읍 동패리 지금의 자리에 ‘빨간 지붕 목공소’를 열었지만 막상 목공소의 문을 열고 보니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요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화이트톤 가구도 아니고, 전통 짜맞춤 가구를 고집하는 의지나 테이블은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 힘들었다. 목공소라고 이름을 걸었더니, 어쩌다 오는 손님도 액자를 고쳐달라거나 부러진 테이블 다리를 보수해달라는 것이었다고. 목공소 문을 열면서부터 어머니와 아내의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이어올 수 없었지만 요즘 그는 작은 희망이 생겨 행복하다. 첫 번째 전시회를 연 이후 소수지만 ‘진홍범’이 만든 가구를 알아주는 고객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윌리암 모리스와 구스타브 스티를리 가구에서 한국의 전통 목가구 디자인을 생각하다
“가구는 생활 속에 들어온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가구작업 화두는 ‘디자인’이다. 그가 처음 가구를 만들 때 디자인을 생각한 것은 윌리암 모리스와 구스타브 스티클리의 가구에서였다. 현대 목가구 디자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트앤 크래프트 운동(Art&Craft movement)과 모리스에서 스티클리로 이어지는 가구의 역사는 정체된 한국의 전통 목가구 디자인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러 올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가구디자인은 한국의 창살 등 전통적인 것에서 영감을 얻지만 그렇다고 정통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이런 생각을 담아낸 주먹장 손잡이, 의자 허리받이, 참죽나무와 황토 미닫이 사방탁자 등은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다. 장식성 강한 가구에 익숙한 눈엔 얼핏 밋밋할 수 있지만, 진홍범 가구는 들여다볼수록 “아하!!”하는 감탄이 나온다. 앞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사다리꼴 의자는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면 슬그머니 한 쪽 다리를 의자 위에 올리고 앉거나 양반다리를 하고 앉는” 생활습관을 배려한 디자인이다.
의자 등받이 또한 다르지 않다. 고객이 “허리가 좀 불편한데 좀 더 허리를 잘 받쳐주었으면...”하는 한 마디 고객의 요청도 허투루 듣지 않고 몇 백번 다시 앉아보고 가장 편하고 아름다운 받침대를 가진 의자를 만들어낸다.
질 좋은 나무로 定石대로 만든 가구,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小木이 되고 싶어
그는 定石대로 가구를 만든다. 원목을 판재로 잘라 재대로 잘 말린 다음 가구를 짠다. “전통가구에서 주로 오동나무를 사용했지만 오동나무가 튼튼해서라기보다 우리 토양에 알맞은 수종이고 그만큼 흔했기 때문”이라는 그는 단단한 오크나무를 주로 사용한다. 또 일일이 손으로 대패질하고 짜 맞춰 만드는 작업은 의자 하나 만드는 데 며칠이 걸릴 만큼 더디다. 더딘 만큼 진홍범 가구는 대를 물려 쓸 만큼 튼튼하고 아름답다.
단순한 가구의 線이 만드는 아름다움, 여기에 인체공학적 기능을 고려한 그의 가구는 목공소를 열고 3년 여 만에 은인(?)과 같은 고객을 만난다. 우연한 기회에 강남에서 온 한 고객이 그의 가구를 눈 여겨 보고 의자 하나를 주문한 것. 그렇게 인연을 맺은 고객이 또 다른 고객을 소개해주면서 목공소 문을 닫을 위기를 넘겼다. 나무를 사기 위해 선불을 요구하는 무리한 요청에 “한번 믿어보자”고 선뜻 입금을 시켜준 첫 고객은 지금은 그에게 디자인 아이디어을 제공하는 단골고객이 됐다. 스스로 인복이 많다고 말하는 작가는 소목을 하면서 소중한 멘토들을 많아 만난 것도 행운이라고 한다. 헤이리 유리재 조규식, 조규선 작가는 유리라는 소재를 나무와 접목하는 작업 기회를 주었으며, 강주엽 작가, 이진옥 조각가 등은 그에게 디자인에 대한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2번 째 전시회에 낼 Lee-Chair는 디자인의 핵심인 선(line)을 생각하며 만든 작품들로 직선과 곡선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이를 ‘안으로부터의 디자인’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한다.
“한국의 전통가옥은 사랑방에서 밖을 바라볼 때 더욱 멋스럽다. 진홍범 목가구의 디자인 철학은 이를 바탕으로 충실하게 발전해나갈 것이다.” 하나를 만들어도 당당히 ‘진홍범’이란 이름을 내건 명품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꿈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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