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사랑으로 이루어진 관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랑의 의미는 퇴색하기 마련이다. 결혼 횟수가 거듭되면서 ‘사랑’보다는 ‘정’이라는 감정에 마음 가는 것이 당연한 순서다. 한 집에 살지만 각자의 역할과 구역을 정해 따로 사는 쇼윈도 부부들도 있고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들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부부의 모습을 진단하고 그에 맞는 처방을 해주는 부부 상담소가 주변에 많이 있다.
결혼과 가족관계연구소 김덕일 소장(36)도 부부 문제를 코칭해주는 전문 상담가다. 잠실복지관 가정폭력상담소 운영위원으로 건강한 부부역할에 대해 교육하고 건양대학교에서 심리상담치료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오는 4월에는 잠실복지관에서 마련한 부부대화학교의 지도자로 관계 개선을 원하는 부부를 위한 프로그램을 이끌 예정이다.
국내 1호 부부상담 전문가
국내에서는 부부치료나 가족 상담이 알려지지 않았던 2003년, 김 소장은 부부와 가족의 문제를 전문 코칭해주는 ‘결혼과 가족 관계 연구소 MnF’를 문 열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 임상심리대학원에서 ‘결혼과 가족 치료’ 석사와 임상 수련 과정을 마친 후, 그곳에서 부부들을 상담해오다 국내에 돌아와서 뜻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귀국 직후, 부부나 가족 문제를 상담해주는 센터를 열겠다는 그의 계획에 많은 지인들이 말렸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그런 센터가 없지만 국내에서는 1호로 차린다 해도 찾아오는 이들이 없어서 망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는 의견이었다. 김 소장은 “한국에서도 가족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었고 건강한 사회를 위해 선구자 역할을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벌였다”면서 “가족치료, 부부치료가 왜 필요한지를 부지런히 알리고 돌아다녔는데도 첫 해 1년간 번 돈이 800만 원이였을 정도로 힘들긴 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무렵, 김 소장은 존 그레이 박사의 ‘화성 남자 금성 여자’ 공식 워크숍 인도자이자 공식 관계 코치1호 인증을 받았다. 국내 이혼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었고 부부치료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자 그때부터 언론들은 그에게 관심을 보였고, 부부 상담/가족 상담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백 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본래 그의 꿈은 목사였다. 그래서 철학과에 진학했고 대학을 졸업하면 신학대학원에 가야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1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힘들게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어린 마음에 엄마, 아빠가 다 있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었고 그 때부터 어른이 되면 모자가정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목사가 되면 힘든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성인이 되면서 힘든 가정을 표면적으로 돕는 것보다 마음이 병든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치료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가족치료에 관심을 가졌고 미국에 가면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대학 3학년 때 미국행을 선택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1살. 사랑하는 여자를 놓치기 싫어서 이른 나이지만 결혼까지 했다. 김 소장은 “아내는 나보다 6살이 많은데 여느 부부들처럼 처음에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부부치료, 상담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이론적으로 아내를 가르치려고 하다 보니 싸움의 원인이 되곤 했다”면서 “실제 부부싸움을 경험하면서 해결방법이나 적용법 등을 많이 배웠다고 할 수 있다”고 웃음 지었다.
때문에 부부/가족 상담가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늘 당부한다. 이론에 입각해 배우자를 가르치려 하지 말고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라고. 배우자를 변화시키는 제일 좋은 방법은 삶을 통해서 알려주는 것이 특효약이다.
현명한 부부 생활을 위한 제안
그를 찾아오는 부부의 연령이나 사례는 무척 다양하다. 다행스럽게도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이혼을 염두에 두고 김 소장을 찾아오는 많은 부부 중에서 90%는 상담과 치료를 통해 관계 개선이 된다.
결혼과 가족관계 연구소를 열었던 초창기만 해도 부부 문제를 남에게 상담 받는다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분위기였지만 요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부부 문제를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이 자주 등장하면서 일반인들의 인식이 많이 변화됐다. 하지만 부부문제를 예능으로 접근해서 단편적인 것만 보여주는 방송의 모습에 심기가 불편하기도 하다.
“방송에서 부부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뒷감당을 안 하는 것은 문제라고 봐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개그맨 양원경 씨 부부죠. 부부캠프나 토크를 통해 서로가 받은 상처나 문제점을 터트렸으면 그것을 후속관리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적어도 3~6개월 정도 전문가가 개입해서 뒷수습을 해줘야 했는데 많이 안타까워요.”
방송국에 건의도 여러 번 했다. 그는 “심각한 부부 문제도 상담을 받으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방송을 통해 보여주는 것 같지만 결론적으로 이것저것 해봐야 어차피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을 시청자들에게 심어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면서 “마음을 건드리는 것도 생명을 건드리는 것과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소장은 현명한 결혼생활을 위한 방법을 제안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칭찬하고 격려하고 인정하는 말을 평소보다 5배 이상 많이 하는 것. 남편은 혼자 생각해서 결정하지 말고 아내와 함께 상의하는 것이다. “부부끼리 매일 눈을 마주보면서 15분씩 대화해보세요. 이 방법 하나면 결혼생활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을 겁니다.”
김소정 리포터 bee4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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