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TV 뉴스를 보다가 귀가 솔깃했습니다. 사교육비가 줄어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자세히 들었습니다. 총 사교육비가 20조 9000억 원 줄어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4만원. 전년에 비해 2000원 감소했다고 합니다.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그래도 2000년대 사교육비 증감 조사가 본격화된 이후 총액이 줄어든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교육비가 줄어들었다니 그게 어디인가 싶기도 합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이에 대해 “고교입시제도가 개선되고 학원의 투명성 강화, 학원 교습시간 단축, 사교육 없는 학교 사업 등이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교육비가 줄어들기는 했는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평균 사교육비가 24만원이라는 부분에서 학부모들은 “그것은 평균이 아니라 최소한의 비용일 것”이라는 의견을 보입니다. 그래서 한 번 물어봤습니다. “그 집은 도대체 교육비 얼마나 쓰시나요?”
김나영 리포터 naymoon@hanmail.net
3월. 학교는 분주하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새 학교, 새 학년에 적응하느라,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아이 실력을 위해 짜인 학원 동선을 점검하느라 바쁘다. 엄마들 사이의 모임도 많아진다. 모임에서 아이들 교육정보가 오간다. 천안시의 학원 밀집 지역인 쌍용동 한 커피전문점에 모인 엄마들 사이에서도 아이들 교육이 주제다.
이 자리에서 만난 이선영(가명·42·천안시 서북구 쌍용동)씨. 교육비가 감소되었음을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4학년 자녀를 둔 이씨는 “지난 겨울방학을 전후해서 학원비 오른 곳이 상당한데 교육비가 준다니 말이 안 된다”며 “학원을 줄이지 않는 한 교육비가 감소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중학교 입학 후 보는 진단평가에서 이미 중학교 과정이 출제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학교마저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분위기에서 학원을 어떻게 줄이느냐”라고 토로했다. 이선영씨는 한 달에 교육비로 120만 원 정도를 지출한다. 동시에 주변 엄마들에 비해 교육비를 많이 쓰는 편이 아님을 알렸다.
자녀 교육비로 120만원 지출, “아이가 먼저 원해”
천안 지역에서 교육열이 높기로 소문난 쌍용동, 불당동의 한 달 사교육비는 자녀 1인당 50~100만 원 정도다. 정부에서 이야기한 24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교육비는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100만원 넘는 교육비를 쓰는 곳이 더 눈에 띄었다. 윤정미(가명·37·천안시 서북구 불당동)씨는 한 달에 250만원 정도를 사교육비로 쓰고 있다.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것은 초등학교 4학년인 큰 아이 교육비용. 영어학원 33만원, 수학·과학 학원 35만원(교재비 포함), 방과후수업 3만원, 학습지 12만5000원, 바이올린 15만원, 두뇌학습 20만원이 내역이다. 7세인 둘째에게는 영어유치원 75만원과 미술학원 10만원, 4세인 셋째에게는 셋째 출산 지원을 받게 되어 어린이집 비용으로 18만원이 든다.
교육비는 전체 수입의 20% 정도. 아직은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다. 전문가들 역시 “교육비는 월수입의 20% 정도가 적당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셋째도 영어유치원에 보낼 생각이어서 내년부터는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윤씨는 “큰아이는 학습에 욕심이 있는 편이어서 수학의 경우 자기 진도에 맞춰 혼자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이야기해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수입의 20%를 넘는 교육비 지출 많아
윤씨의 경우는 수입이 받쳐주기 때문에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 비교적 적은 편. 하지만 대부분 교육비가 벅차다. 이정은(가명·39·천안시 서북구 불당동)씨는 초등학교 4학년, 1학년 자녀를 두고 있다. 교육비로 한 아이 당 60만 원 정도를 지출한다.
이정은씨는 “큰 아이는 피아노, 검도, 과학학원을, 작은 아이는 피아노, 미술, 발레, 사고력수학을 보낸다”며 “영어, 수학은 학습지로, 나머지는 문제집을 사다 직접 가르치고 있어 교육비를 이 정도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맞벌이라 그나마 감당할 수 있다”며 “외벌이의 경우 교육비를 충당하기 벅찰 것”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실제로 김은미(가명·40·천안시 서북구 쌍용동)씨는 교육비 때문에 막막하다.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을 두고 있는 김씨는 큰 아이에게 70만원. 작은 아이에게 50만원의 교육비를 지출한다. 필수적인 생계비 외에는 거의 다 자녀 교육비로 들어가는 셈. 수입의 30%를 넘는다. 알뜰하게 살림을 하지만 저축이나 노후 대비는 꿈도 꾸지 못한다.
대학생 자녀가 있을 경우 더욱 심각하다. 전영문(천안시 서북구 쌍용3동)씨는 대학생과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작은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수학 20만원, 영어 40만원, 학습지 6만 2000원의 교육비를 지출해 부담이 커졌다. 전씨는 “대학생의 경우 등록금, 하숙비, 교재비가 몫돈으로 들어간다”며 “방학 때 영어학원이라도 다니려고 하면 적어도 40~50만원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유치원 사교육비가 더 들어
정부에서는 중고등학교 사교육비 줄이는 것을 과제로 여긴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는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의 사교육비가 오히려 더 부담이라는 것.
이경재(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씨는 “중학생 큰 아이의 경우 종합학원을 보내는데 24만원의 교육비가 드는 반면 초등학생인 작은 아이에게는 피아노 10만원, 검도 10만원, 학습지 월 13만원, 방과후수업 2과목 6만원으로 40만원의 교육비가 든다”며 “초등학생의 경우 예체능을 시키기 때문에 그로 인해 학원비 지출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그나마 초등학생은 교육비가 부담일 경우 눈 딱 감고 안 시킬 수 있다. 하지만 유치원의 경우는 다르다. 요즘은 빠르면 36개월. 적어도 6세에는 유치원을 보낸다. 그런데 이 비용이 상당하다.
심원경(천안시 서북구 백석동)씨는 현재 한 달에 50만원 정도의 교육비를 쓴다. 31개월 된 큰아이의 어린이집 비용으로 38만원, 책 구매로 5만원, 아이챌린지 3만원, 각종 스티커북 및 교재로 1~2만원 정도를 지출한다. 심씨는 “지금은 큰 아이 교육비만 나가고 있어 그리 부담스럽지 않지만 지금 두 살인 둘째까지 함께 유치원에 보낼 때가 되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강의 방과후수업으로 대안 찾기도
이 가운데 부담스러운 교육비에서 탈출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고민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EBS 청취와 인터넷 강의. 이미영(천안시 서북구 성정동)씨는 인터넷 강의를 활용한다. 중2 큰아이에게 겨울방학 단기 선행으로 인터넷강의를 듣게 했다. 교육비는 75일에 11만원. 학원 수강 없이도 성적은 상위권이다. 1학년 때는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도 했다. 이씨는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의 경우 피아노 학원과 한자 학습지, 방과후교실 컴퓨터로 17만원. 영어 유료 동화 사이트로 3개월에 5만원을 지출한다”며 “책을 많이 읽게 하는데 사교육비 줄이는 비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방과후수업도 대안으로 떠오른다. 정부에서도 방과후수업을 강화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방과후수업이 더 내용 있고 강화되면 학원의 대안으로 고민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한 학부모도 많다.
하지만 실제로 방과후학교가 사교육비를 줄이는데 큰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학부모 3316명을 대상으로 ‘방과후학교 참여를 통한 사교육비 지출 수준’을 조사해 지난달 21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방과후학교에 참여한 뒤 사교육비가 줄었다’고 답한 학부모는 25.9%에 그쳤다. 반면 학부모의 64.3%는 ‘사교육비 지출에 변화가 없다’고 답했고 9.8%는 ‘사교육비가 늘었다’고 답했다. 이경재(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씨도 초등학생 아이에게 방과후수업 두 과목을 수강하게 했다. 하지만 “과목수와 예체능 부분이 다양하지 않아 지금은 다시 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사교육비, 과연 잡힐까
“우리 집은 주변 다른 집보다 교육을 많이 시키는 편이 아니다.”
이야기를 나눈 학부모들은 대부분 다른 가정보다 사교육을 적게 시킨다고 입을 모았다. 여건만 된다면 교육을 더 시키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다. 동시에 교육비가 부담스러움을 토로했다.
그렇다면 사교육비를 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박철신(천안시 서북구 성정2동)씨는 “기초과목을 전문화해서 공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서열화를 없애고 등급제로 전환해 대입에서 사교육을 덜 받은 사람(사교육비 지출이 적은사람)을 우선 합격시키면 사교육 문제는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공교육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사교육비를 줄이겠느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영미(40.천안시 서북구 불당동)씨는 “아이가 뛰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학원을 보내는 것 아니냐”며 “공교육이 제대로 자리 잡는다고 해도 엄마들 욕심에 학원 수강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정부에서는 지난달 사교육비가 줄어들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실제 돌아본 현실은 달랐다. 대부분 가정에서 교육비는 지출 1순위다. 게다가 서울대 진학률 상위에 특목고, 외고, 자율고의 이름부터 보인다. 이런 현실에서 시키자니 부담스럽고 안 시키자니 불안한 가시방석은 계속이다. 학부모가 여간 독하게 교육관을 고집하지 않는 한, 가계부의 교육비는 오늘도 상한가다.
■ 리포터의 시선 - 엄두호(47·불당동)씨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이 확실한 현재의 행복을 대신할 수 있나요?
교육비에 관한 답변 중 유독 눈에 띄는 내용이 있었다. “아이에게 별다른 사교육을 시키고 있지 않아 답변해줄 내용이 없다“는 내용. 지금의 시대에 사교육 없이 아이를 키우는 게 가능할까. 그래서 오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의 결론은 “교육을 학습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아갈 미래를 위한 바탕으로 삼으라”는 것. 주인공은 엄두호씨. 엄씨는 “사교육비에 지출할 돈으로 매해 아이들과 세계 곳곳에 여행을 다닌다”고 말했다.
- 아이들에게 지금까지 전혀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나?
큰 아이가 지금 중학교 2학년,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다. 그동안 유치원도 보냈고 학원에 보낸 적도 있다. 단, 성적을 올려보겠다는 부모의 의지가 아니라 아이가 관심을 보이고 가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보냈다. 그런데 대부분 1개월을 못 넘기더라. 작은 아이의 경우 지금 주2회 나사렛대학교 어학원에 다니고 학교 방과후 바이올린 수업을 듣고 있다.
- 아이 교육에 있어 뚜렷한 생각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건가.
아이 교육이기에 아이의 행복을 우선하는 거다. 학원을 전전하고 늦은 시간까지 학원 수업을 통해 성적을 올리면 아이들이 진정 행복할까. 그에 대한 확신이 없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교육이라면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큰 아이는 기숙형 대안학교를 다닌다. 한 번은 외부 특별강사가 1주일 동안 새벽 1시까지 공부해야 할 분량의 숙제를 매일 내준 적이 있다. 아이들은 1주일 동안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착실히 한 후 그 다음 주 월요일엔 선생님과 숙제분량의 합당성에 대해 논의를 했다. “우리에겐 공부만이 아니라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여유와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중요하다”며 “지금 우리 성적이 그렇게 걱정되신다면 저녁 11시까지만 공부해도 성적이 향상될 수 있는 질적인 숙제를 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에 선생님도 자신이 부과한 숙제의 질적 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했다고 한다. 교육이란 자신에게 다가온 현실문제, 즉 변화에 있어서 ‘누구를 위한 변화인가’ ‘무엇을 위해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 학원을 안 보내면서 불안한 마음은 없었나
솔직히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특히 큰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후 불안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학원을 다니며 기계처럼 공부해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일류 대학에서 학위를 받아 보수가 많은 직장에 취직했다고 해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적은 보수에 각광받지 않는 일을 한다 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큰아이가 대안학교 1년을 보내고 난 뒤 자기 진로에 대해 밑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싹 사라졌다.
- 아이들이 하루에 2, 3곳씩은 학원에 다니는 현실이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공부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아이들이 행복한 미래를 스스로 찾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잠깐 멈춰서 생각해보자.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확실한 현재의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옳을까. 더욱이 아이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행복을 보류하는 건 비이성적이다. 아이가 매일매일 행복을 경험하며 행복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아 간다면 어떤 일을 하든지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갖고 자기 삶을 행복하게 수놓아 갈 것이다. 그것을 믿는다. 그 기회를 아이들에게 줬으면 한다.
김나영 리포터 naym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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