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하여 /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
솔로몬 왕의 사랑노래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울타리를 치고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나 봅니다. 한데 하잘것없는 여우가 포도원을 헤집으며 속을 썩였나봅니다. 온갖 호사를 누렸다는, 지혜의 왕이라던 이의 시(詩)치고는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생각에 잠겨보면, 결단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이나 우정에 금이 가는 것은 지극히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일들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싸움만 해도 그렇습니다. 경천동지할 만한 사건으로 다투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더없이 미미한 일, 이를 테면 아내가 미장원에서 머리손질을 하고 돌아왔는데 남편이 일언반구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친구나 직장동료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화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이를 간파한 솔로몬의 지혜와 솔직함이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까?
치질 중 치열이란 병이 바로 작은 여우에 해당합니다. 치열은 말 그대로 항문이 찢어지는 병을 일컫는데, 병변이 작고 보잘것없음에도 엄청난 고통을 초래합니다.
치열환자의 경우 화장실 가기란 며느리가 시댁 가는 것만큼이나 꺼려지는 일입니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자면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합니다. 이렇듯 화장실 가기를 내켜하지 않다보니 변비가 초래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변비에 걸리면 통증은 더욱 심해지는 것이고.악순환도 이런 악순환이 없습니다. 결국 지극히 하찮은 병변은 쓰나미 처럼 사람의 일상을 송두리째 삼켜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치열, 작은 여우, 물리치자면 한주먹거리도 안됩니다. 워낙 작다보니 싸움은 지극히 시시하기만 합니다. 워낙 수월한 싸움이다 보니 치열수술을 수술이라 불러야 할 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하지만 작다고 해서 방치할 경우 결국엔 포도원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고 한 솔로몬의 경고를 귀넘어듣지는 마십시오.
살아가면서 수많은 시련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인 듯합니다. 하지만 되짚어 생각해보면 그 중 대부분이 작은 여우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당시에는 힘들고 버거웠지만 말입니다. 우리네 삶을 향해 덤벼드는 수많은 작은 여우들, 그 중 하나가 치열이란 병입니다.
예일병원
남호탁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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