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 -영통 페르마학원 박종섭 원장
그의 자서전 217쪽 “페르마와 함께 행복하다”
영통 페르마학원 박종섭 원장
1992년, 서울 강남의 어느 독서실. 고3 남학생이 독서실 실장이었던 20대 청년에게 수학 문제를 물어보고 있다. 새벽 2시, 독서실 문을 닫을 때까지 두 사람의 학구열은 식지 않았다. 묻고 풀고, 풀고 묻기를 여러 차례, 그것도 마음에 차지 않았던 모양인지 집으로 돌아간 후에는 독서실의 팩스로도 질문이 오갔다. 청년은 아이들과 대화하고, 해결하고, 답을 찾는 그 시간이 좋았다. 1995년부터 12년간 경기도 일산에서 종합학원으로 명성을 떨쳤고, 지금까지 특목고 진학 현장에서 최적의 결과를 얻어내는 사람, 영통페르마학원 박종섭 원장의 이야기다.
독서실의 수학 멘토, 스타 강사 되다
부모님에 손을 벌리기 부끄러워 시작한 독서실 아르바이트. 독서실 실장이 수학문제를 잘 풀어준다는 입소문에 원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독서실 사건(?)을 계기로 박 원장은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듬해, 박 원장은 강남에서 학원을 하던 친구의 제의를 받아들여 스타강사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대졸 초임이 70만원선이던 1995년, 주2회 수업으로 1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직업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학원 수업이냐, 학원 경영이냐 사이에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결국 강남에서의 경험을 살려 일산에서 종합학원으로 첫 출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학부모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아이들도 열심히 따라주었다
영리만을 추구했다면 오늘의 영통페르마는 없었다. 일산 시절, 어느 여학생의 부모님이 붕어빵 장사를 해서 학원 보내는 걸 알고는 졸업할 때까지 학원비를 받지 않은 일화는 꽤 유명하다. 평균 85점으로 찾아온 그 여학생이 중3때까지 평균 10점을 올려, 고양외고에 입학했을 때는 박 원장도 입학식에 참석했다. 영락없는 교육자이고 틀림없는 경영자이다. 강의실 대신 원장실을 택한 결정에는 지금도 후회가 없다.
박카스 한 병에 담긴 진심, “요즘, 학교 생활 어때?”
우후죽순으로 학원이 생겼다가, 다시 없어지고 생기기를 반복하는 영통지역. 페르마학원이 6년간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 비결이 궁금했다.
“결국은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죠. 부모님들이 간과하고 있는 건, 아이들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공부방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깨 한번 툭 치면서 세게 나가면 분발해서 더 좋은 성적이 나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따뜻하게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면 더 잘 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스타일을 인정해주고 믿어줄 때, 숨어있던 저력과 목표가 드러난다고 믿습니다.”
올해만 해도 68명의 특목고, 명문고 합격생을 배출한 영통 페르마의 힘. 그것은 영통 페르마 학원만의 ‘이심전심형 교육’에 있었다. 강사들의 실력이 우수하고, 수업내용이 좋다하더라도 아이와 맞지 않으면 소용없는 법. 아이의 공부습관에 맞게 학업의 틀을 짜고, 포트폴리오를 꾸려가고, 면접을 도와준다. 무조건 공부, 공부만을 외치지 않는 때문일까. 박카스 두 병을 들고 “원장님, 시간 있으세요?”라며 슬그머니 원장실로 들어오는 아이들도 많다. 피로회복제 한 병씩을 나눠 마시면서 성적이야기, 친구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스트레스도 덜고, 진로도 의논한다. 특목고에 합격한 제자들도 가끔씩 학원을 찾아온다. 이들이 후배들에게 특목고 합격기 같은 실감나는 경험담을 들려줄 수 있는 것도 이처럼 끈끈한 정이 이루어낸 결과다. 먼훗날, 언젠가는 ‘영통 페르마 동창생’이라는 인터넷카페가 생길 지도 모를 일이다.
굴곡 없는 성공 없고 노력 없는 결과 없다
박 원장이라고 어찌 부침(浮沈)이 없었으랴. 트렌드를 타는 학원가의 특성을 간파하지 못해, 실패를 맛본 적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딛고 새로운 발판을 마련했다는 데에 있다. 교육도, 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보면 박 원장은 타고난 친화력의 소유자로 보인다. 아이들과 공부하는 것이 좋고, 사람을 대하는 시간이 즐겁다.
최근에는 영통 페르마를 법인으로 전환했다. 강사들에게 중장기적인 수익을 보장하고 함께 페르마를 일구어 가자는 파트너십의 의미이다. 영통 페르마는 교육 사업을 넘어 새로운 비전, 그 너머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듯하다.
인터뷰가 끝나고 취재수첩을 덮을 무렵, 어느 특목고 면접의 질문 내용이 떠올랐다. “당신이 300쪽짜리 자서전을 쓰고 있다면, 217쪽은 무엇입니까”
그쯤이라면 마흔을 넘어 인생의 중반전을 달리고 있을 무렵일 터. 박종섭 원장의 자서전217쪽 첫줄은 이런 내용이 아닐까. “영통 페르마와 함께, 나는 행복하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 나온 박 원장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권일지 리포터 gen10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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