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도 필요한 영어가 있다

지역내일 2011-02-22

 
 문단열
 - 약력
 연세대학교 신학과 졸
 현)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EBS English Cate 진행
 SBS 생방송 투데이
 헬로우 키즈짱 등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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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치가 사람마다 다 나이에 들어맞는 말과 행동을 요구하듯 아이에게도 나름의 필요한 언어가 있다. 무릇 언어란 것이 나에게 필요한 언어일 때는 기쁨을 주지만, 억지주입이나 강제적인 이해를 요구
할 때에는 고통만을 안기는 법이다. 만약 무슬림이 설법을 듣는다면 어떠할까? 대가람의 주지스님이 아무리 훌륭한 설법을 펼친들 이 사람에게 영혼의 양식이 될까. 그저 지루한 말 잔치일 뿐이다. 하물며 아이에게 인지발달상 이해할 수도 없는 추상 언어를 가르치려 들면 처음 대하는 신기한 영어의 세계가 고통으로 얼룩질 따름이다. 바로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언어는 무엇일까? 영어유치원에서 시도하는 감각단어 교육에 대한 사례를 보자. 영어유치원의 단어교육은 대개 실험과 놀이가 병행되는 방식들이다. 

 먼저 바삭한 과자를 예를 들어보자. 아이들이 과자를 손에 들고 부수며 ‘crush, crush, crush''를 외친다. 보지 않아도 교실은 이미 환호와 열광의 도가니일 것이다. 아이들은 과자를 직접 손에 쥐고 놀이를 함으로써 그 단어 습득의 재미를 느낄 이다. 또 한가지의 예로, 토마토를 들어보자. 토마토를 손에 꽉 쥐면 으깨지면서 즙이 주르르 흐른다. ''squash, squash, squash!'' 아이들이 이 말을 이해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0초, 넉넉잡아 30초면 외우고도 남는 시간이다. 방울토마토를 손에 쥐고 ‘squash’를 말하면 ‘squash’라는 소리와 으깨지는 방울토마토의 모양, 그 순간 손의 느낌 등 모든 상황이 입체적으로 쏙 들어온다. 직접 식탁에서 엄마와 한 번 해보시라. 

 ‘crush’ ‘squash’ ‘mash’ 등 이 친구들의 공통점은 전부가 다 오감으로 확 들어오는 단어들이라는 점이다. 아이들이 이 단어들을 외워서 말할 수 있기까지는 1분이 채 안 걸리는 시간이지만 공교롭게도 어른들에게는 다소 낯선 언어가 아닐 수 없다. 영문학과의 교재나 시 속에서나 발견함직한 어휘일까? 그러나 사실 이런 감각적인 단어들이 모든 언어의 밑바탕에 있는 기본 단어들이다. 조금 더 예를 들어보자.
‘shatter’ ‘smash’ ‘slam’의 경우, 우선 ‘shatter’는 산산조각이 난다는 말이다. 폭탄이 터지면서 건물의 유리창이 박살나는 경우를 떠올려보시라. 다음 ''''smash''''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공통점은 어떠한 타격을 가해 후려치는 것이다. 테니스 경기에서 라켓으로 후려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slam''''은 사전적으로 ‘강한 힘으로 물체를 이동시키는 동작’이다. ‘She slammed the door.''''는 ‘그녀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는 말이다. 농구 경기에서 그 유명한 덩크 슛도 공중에 떠서 내려 꽂히는 것을 slam dunk라 하지 않던가. 

 말로 하는 설명은 이렇게 길고 어렵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slam''''의 설명은 단 한번의 덩크 슛 시범으로 해결된다. 이처럼 행동 한 번이면 끝나는 혹은 장면 그림 하나에 그 의미가 다 표현되는 게 이 단어들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이 단어들의 의미상 공통점은 무엇인가? 문제에 대한 힌트를 드리자면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원래의 모습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정답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break''''다.
당신에겐 ‘break''''가 쉬운가? 아니면 ‘crush''''나 ''''squash'''' ''''mash'''' ‘shatter'''' ''''smash'''' ''''slam''''이 익숙한가? 대부분의 엄마들로서는 당연히 ‘break''''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break''''는 반추상적 단어다. 아이들에게 ‘break''''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마도 우리는 아이들의 이해를 위해서 삶은 감자를 으깨고, 과자를 부스럭거리고, 유리창도 한 번 깨보고..... 이런 것들을 계속적으로 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뭔가를 느끼는 것이다. 아, 이게 뭔가 부서뜨리는 건가보구나. 

 그러니 ‘break''''를 가르치는 것이 쉬운가? ‘crush''''를 가르치는 것이 쉬울까? ‘break''''는 눈에 안 보이는 무엇인가의 의미를 잡아내야 하는 작업이다. 이 ‘break''''가 고도 추상으로 가면 그나마 언뜻 동작이나 그림이 느껴지는 ‘break''''에 비해 더 추상성이 심화된 ''''destroy'''', 그리고 건물폭파나 해체를 의미하는 ‘demolish''''가 된다. 영화 의 바로 그 단어다. break도 이해가 어려운 아이들에게 destroy와 demolish를 인지시키려면 갖은 지식과 화려한 언변을 다 동원해도 가능할지 나는 엄두가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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