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엔 구제역, 서쪽엔 AI, 한반도에 가축 대재앙 오나, 살아있는 가축 대규모 매몰...’
연일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먹을거리의 경고가 무섭다. 과연 한끼의 밥상에 오르는 식재료들이 어디에서 재배되고 키워지는지, 어떻게 유통되고 조리된 것인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채소도 다르지 않다. 몸에 좋다는 채식을 즐겨왔지만, 막상 ‘재료가 유기농인가’인가에 대한 확신은 내리기 어렵다. 그랬다면 물음표 투성이던 지금까지의 채식밥상은 잊어라. 얼마 전 새단장을 마친 채식전문 한식당 동탄 요산재(樂山齋)에서 채식의 역사가 새로 쓰여 지고 있다. 우리 땅에서 난 유기농채소에 환경과 생태, 생명, 건강한 생각까지 담았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요산요수’를 닮은 자연 밥상과 우리네 풍경
우선 녹차와 국화로 우려낸 차가 입안을 향기롭게 채워준다. 보랏빛 블루베리 소스가 달콤 상큼한 샐러드, 연꽃씨로 만들었다는 고소한 연자죽, 동글동글 빚은 완자에 튀긴 단 호박 장식..., 뛰어난 색감과 데커레이션이 시선을 압도하는 가운데, 대접받는 듯 정중하고 절도 있는 서빙이 기분까지 행복하게 만든다. 꾸미지 않은 정직한 맛의 향연 속에 생선 없는 초밥이 눈길을 끈다. 철판에 구워낸 가지, 곤약, 새송이버섯, 그리고 콩으로 만들었다는 고기가 초밥의 재료로 변신, 또 하나의 걸작품을 그려낸다. 마치 쇠고기나 닭고기 같은 부드럽고 담백한 콩고기의 맛은 새로운 경험이다.
“요산재의 식탁에 올라오는 모든 요리엔 일체의 우유, 계란, 화학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요. 멸치육수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김치도 젓갈 없이 고춧가루와 소금으로만 맛을 냅니다.” 이영주 대표의 말대로 채소와 자연재료만으로 빚은 채식밥상은 충분히 반할만했다.
‘요산요수(樂山樂水)’에서 따온 말이 요산재라고 했던가, 자연밥상과 더불어 산과 물의 자연을 즐기고 좋아했던 선비의 풍류 또한 눈앞에서 펼쳐진다. 9층에서 내려다보이는 동탄 시내의 탁 트인 전망과 자연을 테마로 한 한지등이 요산재의 운치를 더해준다. 천정 위에 동으로 만든 감나무 모양의 등이 울창하게 뻗어있는가 하면 커다란 연꽃이 활짝 피어있기도 하고, 꽈리등이 키재기하듯 대롱대롱 매달려있기도 하다.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이대표의 각별한 애정은 요산재 구석구석에 잘 담겨있었다.
채식과 유기농과 우리 농산물-요산재의 철학, 요산재만의 히스토리
#1. “생각 없이 그냥 먹고, 즐기는 속에서 어느 날 문득 우리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채식도 마찬가지에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연스럽게 외국의 것에 길들여가죠.” 음식이 그 민족문화의 뿌리이자 정체성이라면 채식도 미국, 대만식이 아닌 우리식 채식이 필요하다는 게 이대표의 생각이다. 우리 땅에서 난 우리 것으로, 다소 거칠더라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차려낸 밥상은 요산재의 기본가치인 환경, 생태, 생명, 나눔과도 통한다. 단순히 몸에 좋다는 차원을 넘어 그는 채식에 건강과 환경이란 진정한 가치까지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믿을만한 여러 유기농단체와 귀농자들의 땀으로 기른 유기농산물만이 식탁에 오른다. 덜 남더라도 보다 많은 사람들과 좋은 음식을 함께 나누고 싶을 뿐이다.
#2. 요산재는 우리식 채식을 표방하며 2001년 초, 안산을 시작으로 포항, 일산, 동탄에 속속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얼마 전 동탄점만 유일하게 채식한정식으로 새 옷을 갈아입었다. “고객에게 요산재만의 각별한 서비스를 전해드리고 싶었다”는 이대표는 “사실 뷔페도 알고 보면 우리식은 아니지 않은가, 신선한 요리들이 계속 외부에 노출되어 있고, 또 채식의 맛과 멋을 즐기기에 뷔페는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과거 분점 형태이던 동탄 요산재를 본사직영 운영체계로 바꾸고 고객관리와 채식 식단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각오다.
이렇게 해서 요산재와 연을 맺은 고객은 멀리서도 잊지 않고 이곳을 찾아온다. 일단 그의 변치 않는 철학을 믿고, 그 철학만큼이나 정직한 유기농 밥상의 행복을 맛봤기 때문이다.
요산재의 미래, 바른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
정갈한 나물과 맛과 향이 뛰어난 채식추어탕(요산재가 자랑하는 미꾸라지 없는 추어탕)을 끝으로 후식을 마주하고 앉았다. 우리밀과 흑미로 만든 빵에 유기농 딸기잼, 껍질째 먹는 사과, 오랜 시간 우려낸 깊고 진한 대추차. 우유와 계란을 넣지 않고도 이런 풍미와 질감을 전해줄 수 있다니 흑미빵의 쫄깃함에 배부름도 잠시 잊었다.
“그동안 뷔페로만 운영하던 요산재가 주문식 한정식으로 바뀐 만큼 앞으론 다양한 고객의 취향에 따라 우유와 계란을 사용할까 해요. 물론 GMO(유전자조작)가 아닌 유기사료만을 먹고 자란 소와 닭에게서 난 것으로 만요.” 2011년 요산재의 또 다른 고객맞춤형 주문식단에는 유기축산 약선돼지고기찜과 유기축산 갈비찜 코스도 포함되어 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이 특별한 코스도 바른 먹을거리에 대한 그의 철학이 빚어낸 신통방통한 맛이 아닐까.
가만 보니, 냅킨도 참 편안하게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요산재’라는 문구조차 새겨 넣지 않은 생김새 그대로의 냅킨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얹혀졌다. 멋을 낸 것도 아니지만, 은은한 깊이가 전해지는 게, 요산재가 진정한 의미의 채식한정식 전문점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충분히 알만했다.
오세중 리포터 sejoong71@hanmail.net
∞樂山齋(요산재)의 또다른 의미...
‘산을 즐긴다’는 뜻의 요산재는 현대사연구로 큰 업적을 남긴 故 임종국 선생의 당호이기도 하다. 동탄 요산재에 들어서면 ‘樂山齋’ 로고가 크게 보이는데, 한글 서체의 대가인 신영복 선생이 직접 쓴 한자체라는 점에서 감상의 의미가 크다. 포항의 요산재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근의 명소로 꼽힐 정도다. 1만8000원~6만5000원까지 다양한 채식코스 요리에 요산재 구석구석 대표의 철학을 느낄 수 있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동탄신도시 중심상가 거산프라자 9층에 자리잡고 있으며, 주변으로는 동탄복합문화센터, 토지공사 화성지사 등이 이웃해있다. 031-8015-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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