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현장감 있는 이 일이 좋아요”지난 8일 오전8시, 집배원 정은숙(40)씨가 부천우체국에 출근해서 등기와 택배 물품을 분리하고 있다. 그 날 하루 동안 송내동 구역 3000여 세대에 전달할 우편물이다. 물량이 많은 날이면 오토바이 한 대로는 턱도 없다. 자기 구역 세 군데 거점에 물품을 맡겨둔 뒤 출발하면 오전 9시30분, 오늘 그녀는 6시간 동안 송내동 전역을 돌며 고객들에게 우편물과 택배물품을 배달해야 한다.
167명 중 1인(人)
15년 전업주부였던 은숙 씨는 2008년 12월 집배원 일을 시작했다. “단순하게, 운동 좀 하려고 우체국에 이력서를 냈어요. 아파트에 편지만 넣는 단순 작업인 재택아르바이트가 첫 일이었죠.” 그 때는 자기 분량인 2000여 세대를 소화하면 됐다. 얼마 안 있어 재택 집배원 일이 시작됐다. 일반편지와 택배, 등기 업무를 담당하는 일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3시까지 집집마다 찾아다니기가 수월치 않았지만 맡겨진 일에 충실했다. “멋모르고 시작했어요. 저렇게 힘든 데 배겨날까, 하는 남자동료들의 눈길에서 벗어나려고 죽어라고 버텼지요.” 당시 은숙 씨에겐 우체국 내근 업무의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라 늦은 시간까지의 내근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1년 7개월이 흘렀다. 올 8월 은숙 씨는 하늘에서 별따기라는 부천우체국 상시 집배원으로 발령 받았다. 상시란 정식 사원이 되기 전의 대기 집배원을 말한다. 그녀는 정식 직원 137명과 상시 직원 30명인 167명의 부천우체국 집배원 기능직 공무원 안으로 당당하게 입성했다.
전쟁 나간 군인으로 살았다
요즘 은숙 씨는 오전8시에 출근한다. 퇴근시간은 오후9시, 10시로 대중없다. 다음 날 배송할 우편물을 정리해야하니 그럴 수밖에. “아침에 정리하려고 하면 시간이 부족하고 마음도 급해져서 전 날 미리 정리하고 퇴근하는 편이죠.” 편지를 각 세대에 돌리다보면 퇴근시간은 남은 편지 통수로 가늠된다. 하루 평균 1500여 통에서 3000여 통의 우편물을 날라야 해서 오후6시 퇴근은 다섯 손가락 안이다. “솔직히 일이 고되고 힘든 건 사실입니다. 지난 5개월 동안은 전쟁 나간 군인으로 지냈어요. 저보다 먼저 일하신 선배들처럼 프로 수준은 아니지만 그동안 많은 경험을 통해 성장했지요.”
그녀가 하는 일은 아이러니하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성품이라서 일에 대한 재미가 있는 반면 사람들과의 접촉으로 생긴 민원은 즐거움을 삭감시킨다. “집에 있으면서도 문 안 여는 고객, 정식으로 확인했는데 올라오는 콜민원, 확인 서명해달라는 말에 기분 나빴다는 민원 등 다양해요. 고객님들, 집배원들은 그 날 일을 그 날 마쳐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바빠요. 조금만 이해하시면 될 일이니 적극적으로 배려해주세요.”
자빠지고 깨져도 인정받고 싶다
“남자들 세계에서 인정받고 싶어요. 그건 제 자신과의 싸움을 말하죠. 20년 넘게 일하고 계신 선배 여성 집배원을 본받고 싶은 마음도 많고요. 자빠지고 깨지고 멍이 들어도 이 일을 계속하려고 해요. 왜? 현장감 있는 일이 좋으니까요.” 그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겁다. 육체노동은 참아도 정신노동은 잘 못한다는 그녀의 체질에 딱 맞는 일인 것이다. 일 년 되던 명절, 배송량이 많아서 그만두려고 했던 기억도 이젠 잊었다. 현재는 우체국에서 내 준 오토바이를 타고 일한다. 5개월 만에 오토바이가 나온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성실하게 일한 결과물이다. 자기 몸의 몇 배가 되는 오토바이로 우편물을 나르는 그녀에게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인데 잘 한다’, ‘멋지다’, ‘수고한다’고 말해주는 고객의 한 마디는 든든한 힘이 된다. “때론 저도 웃어드릴 걸, 하는 아쉬움이 남을 때도 있어서 그 다음엔 활짝 웃어요. 민원에 노출돼 무방비로 스트레스만 받지 않는다면 고객과의 소통은 원활해질 거예요. 앞으로 빠른 시일 안에 우체국 정식 직원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조직에 들어가면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게 제 성격이거든요.”
임옥경 리포터 jayu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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