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미치다’ 어린이도서관 프런티어

내일이 만난 사람_ 최진봉 송파어린이도서관 관장

지역내일 2011-01-23

 잠실에 위치한 송파어린이도서관. 방학을 맞은 도서관은 어린이들로 연일 만원사례다. 마룻바닥에 뒹굴며 책 보는 아이, 푹신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 엄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꼬맹이. 아이들은 저마다 자유로운 포즈로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다. 도서관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최진봉 관장(49)의 손길, 발길이 덩달아 분주해 진다.
 2009년 4월 개관한 송파어린이도서관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를 목표로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 최전선에 최진봉 관장이 있다.


 제천 기적의도서관에서 다 함께 만든 ‘기적’
 경기도 화성의 바닷가가 고향인 최 관장은 8남매 중 여섯째로 북적거리는 대가족 속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선원들과 잘 어울렸어요. 이곳저곳 배 타고 다니며 보고 들은 뱃사람들의 이야기에 흠뻑 빠졌지요.”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은 어린 최진봉을 자연스럽게 문학의 길로 이끌었고 훗날 구비문학을 전공한 문학박사가 되었다. 아내의 고향인 제천과 서울을 오가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그에게 친구인 판화가 이철수 화백이 제천 기적의 도서관을 맡아보라고 러브콜을 보냈다.
 “20년 공부한 문학을 접기가 쉽지 않아 고민을 많이 했지요. 아이들을 좋아하는 ‘천성’과 ‘진짜 도서관’을 만들어 보자는 욕심이 더해져 도전장을 던졌지요.” 충북 제천에서 도서관 관장으로 폭풍 같은 5년을 보냈다. “도서관은 책보고 공부만하는 곳이 아니에요. 책에서 읽은 내용을 다양하게 체험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문화 놀이터’가 되어야 해요.” 최 관장의 소신이다. 고교시절 그림을 그렸고 대학 때는 합창단원으로 무대에 섰고 여럿이 어울려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던 예체능에 재주 많은 최 관장의 ‘숨은 끼’가 진가를 발휘했다.   도서관 앞마당에 원두막 지어 옛날이야기 듣기, 냇물에서 송사리 잡기, 공터에 씨 뿌려 보리타작하기, 연극공연 등 100여개 프로그램이 쉴 새 없이 펼쳐졌다. 최 관장을 비롯해 도서관 직원들이 ‘죽을 만큼’ 열심히 일하자 지역 주민들이 팔을 걷고 나섰다. “삼월 삼짇날 세시풍속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데 예산은 찹쌀가루 마련할 정도 밖에 없어요. 그러면 주부들은 집에서 요리도구를 가져와 아이들과 함께 전을 부쳐 먹고 노인봉사자들은 버들피리 재료를 준비해 와요. 자연스럽게 500여명이 어우러지는 동네잔치가 벌어지는 셈이죠.” 이런 식으로 도서관 식구들과 주민들이 똘똘 뭉쳐 도서관 기적을 하나씩 만들어 나갔다.


 ‘문화놀이터 도서관'' 만들기에 올인
 최 관장과 송파구와의 인연이 궁금했다. “제천 기적의 도서관 소문을 듣고 김영순 전 구청장이 찾아왔어요. 송파에 어린이도서관의 새로운 롤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확고한 분이었지요.” 삼고초려 끝에 최 관장은 송파어린이도서관과 인연을 맺게 된다. 도서관 설계 단계부터 관여하며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쏟아 부었다. 마룻바닥에는 온돌을 깔아 제 집처럼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산뜻한 인테리어, 자신만의 아지트를 좋아하는 아이들 특성을 고려해 도서관 곳곳에 책 읽기 좋은 비밀 공간을 배치했다. 보유중인 장서는 4만4000여권, 신간 서적들은 출간 즉시  바로 비치해놓는다.
 일을 벌이는 데 겁이 없는 최 관장의 장점은 송파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인기 동화작가 채인선, 고전평론가 고미숙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을 초청해 독자와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 어린이 큐레이터 교실을 열고나서는 초등학생들이 직접 큐레이터가 되어 미술전시회를 열어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도서관에서 1박2일간 먹고 자며 복불복 게임, 귀신놀이를 하며 아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하기도 했다. 수수깡 같은 자연물을 이용한 만들기 교실도 연령대별로 열고 있다. “도시에서는 ‘오리지널 수수깡’을 만져본 아이가 거의 없지요. 여기저기 수소문해 시골 가서 직접 수숫대를 구해왔지요.” 최 관장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때문에 도서관 프로그램은 인터넷 접수 2~3분 만에 마감될 만큼 마니아층이 두텁게 형성되었다.
 이제 송파어린이도서관은 새로운 롤 모델로 자리 잡았다. 전국 각지에서 연간 1백여 차례 넘게 벤치마킹하러 이곳을 찾는다. “공부에 지친 아이들에게 도서관은 맘 편하게 놀면서 뭔가를 얻어갈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해요. ‘책을 통한 또 다른 공부방’이나 ‘저렴한 사교육기관’으로 전락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때문에 최 관장은 그동안 쌓아온 운영 노하우를 모두 공개하고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최근엔 어린이도서관 운영에 관한 책도 집필중이다.
 
 도서관에 인생을 걸다
 아들만 둘이라는 그의 가정사가 궁금했다. ‘이야기 꾼’ 아버지를 둔 덕인지 큰아들은 올 입시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합격했다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아내와 둘째아들은 제천에서 생활해 주말부부 생활을 2년 가까이 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중2인 아들이 공부에 찌들지 않고 자연과 벗하며 순박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가 홀아비 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이유다. 매주 제천과 서울을 오간다는 최 관장은 “가족과 함께 철새와 야생화 보러 돌아다니는 게 제 취미이고 가장 소중한 시간이에요.” 때문에 최 관장은 매주 제천과 서울을 오간다.
 앞으로의 꿈을 물었더니 “백발노인이 되어서도 꼬맹이들 무릎에 앉혀 놓고 옛날이야기 들려주는 자원봉사자로 끝까지 도서관 인생을 살고 싶어요.” 도서관에 미친 최 관장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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