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때의 일이다. 가수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이 히트를 치던 그 시절,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시월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기 위해 고 3의 신분을 망각하고 의자를 교탁 쪽으로 밀어 붙이고 교실 뒤켠에 너른 자리를 마련해 촛불로 분위기를 한껏 내고는 각자의 진로와 사는 이야기를 하던, 꿈이 풍선처럼 부풀었던 그 시간. 누군가 툭 던진 말 “이해와 오해는 글자 한 자 차이지만 결과는 너무나 달라, 오해할 상황이라도 이해하면서 살아야 될 것 같애”라는 말이 가슴 깊이 파고 들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집중과 중독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집중과 중독’은 글자 한자 차이지만 그 결과가 너무 다름이 ‘이해와 오해’에 버금가는 것 같다. 많은 어머니들이 집중과 중독을 혼돈한다. “우리 애가 공부는 안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볼 때는 서너시간도 보고 게임을 할 때는 몇 시간이라도 하는데 왜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다. 이런 의문이 생기는 이유는 집중과 중독의 구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집중과 중독은 엄연히 다르고 그 결과도 참혹하게 다르기 때문에 둘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게 아이를 잘 키우는데 보약이 될 것 같아 몇 자 적어 보려고 한다.
집중력이 없어도 좋아하는 책이나, 환타지 소설, 만화책 등은 몇 시간이라도 볼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는 힘든 것을 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술을 좋아하는 분 중 위장이나 간이 안 좋아도 개의치 않고 술을 즐길 경우 주위 사람들은 속이 타들어간다. 마찬가지로 시지각적 문제로 읽기가 힘들고 집중력이 부족해도 좋아하는 책은 힘든 것을 참아가며 몇 시간이라도 읽을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공부는 몇 분도 못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게임이나 만화책과 환타지 소설은 재미있기 때문에 두뇌에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 공부란 항상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에 두뇌의 입장에서는 스트레스이다. 그 스트레스를 이기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으면 집중력이 있는 것이고 새롭고 어려운 것을 학습할 수 있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면 집중력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읽고 있는 내용의 난이도와 그때 활성화되는 두뇌 부위와 소모되는 정신적 에너지에 따라 집중과 중독은 나누어진다.
밥도 안 먹고 게임을 할 때 두뇌의 상태를 보면 흥분과 긴장 상태에서 나타나는 하이베타파가 활성화 된다. 하이베타파는 집중을 방해하는 뇌파다. 시험 칠 때 적절한 긴장은 성적에 도움이 되지만 지나친 긴장은 시험을 망치게 되는데 그 때의 뇌파 상태를 보면 하이베타파가 평소보다 월등히 상승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하이베타파의 상승은 업무와 학습 등 정상적인 정신활동을 방해하게 된다.
공부를 할 때는 하이베타(High-Beta)파와 졸리운 상태에서 기성을 부리는 세타(Theta)파는 줄어들고 12~15Hz의 SMR(Sensory-Motor Rhythem)파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인터넷 게임에 몰입한 상태에서는 하이베타파만 활성화되기 때문에 ‘집중력있게 게임을 한다고 하지 않고 게임에 중독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집중 상태와 중독 상태에서 활성화 되는 뇌파는 서로 다르다.
또한 주로 사용하는 두뇌 부위도 차별화된다. 집중을 할 때는 앞쪽 머리인 전두엽이 활성화되지만 게임을 할 때는 시각적 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과 뇌의 피질 아래 부분에 있는 중독 중추가 활성화된다.
그리고 두뇌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은 의식적인 노력없이 자동으로 처리해버린다. 이 기전이 두뇌가 새로운 정보를 끝없이 습득할 수 있는 이유이다. 공부란 두뇌의 입장에서 봤을 때 매 순간 새롭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되고 주어진 새로운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 두뇌는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다. 어려운 내용의 교과서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과정은 정신적 에너지가 막대하게 소비되고 이때 두뇌신경세포의 정보전달 과정은 겨울 나무에 불붙듯 활발하게 일어난다. 만화 내용은 대체로 흥미 위주여서 읽으면 바로 이해되기 때문에 두뇌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 재미있는 만화책을 읽을 때 우리의 두뇌 속을 상상해보라. 정보처리를 하기 위한 분주함이 없다. 그저 잔잔할 뿐. 만화책과 환타지 소설을 몇 시간씩 읽는다고 해서 집중력이 있다고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중력이란 새로운 정보를 이해하기 위해 두뇌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그 활동이 어느 정도 지속될 수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므로 이해가 쉬운 과제를 잘 하는 것은 집중력과 크게 상관없다고 보면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두뇌 상태가 될까? 참으로 인생이 걸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두뇌의 상태는 뇌파로 보여지고 뇌파의 상태에 따라 정신상태가 달라진다. 5분도 집중을 못하고 목마르다 냉장고 문 열고, 화장실 들락거리고, 거실에 나와 가족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잡다한 책을 쓸데없이 뒤적이고 필통 정리를 하느라 정작 공부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집중력이 부족한 경우 뇌파상태를 보면 공부를 하려고 집중하면 할수록 졸리운 뇌파가 점점 활성화됨을 볼 수 있다. 뇌파치료란 이렇게 졸리운 상태의 뇌파인 세타파의 상승을 가라앉혀주는데 훈련의 결과가 두뇌의 장기기억에 입력되면 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공부할 수 있는 상태, 즉 세타파가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세타파가 얌전히 있는 상태가 된다.
혈당 수치는 먹는 것과 운동량으로 조절할 수 있다. 혈압도 바이오피드백에 의해 조절되고 뇌파도 두뇌 바이오피드백인 뉴로피드백에 의해 조절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흔히 고기를 잡아주기 보다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라고 한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공부에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은 공부를 가르치기 보다 공부할 수 있는 뇌파상태를 만들어 주는 것임을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분들에게 알려드리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글 : HB두뇌학습클리닉 노원센터 이명란소장
문의 : 932-7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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